조니 뎁의 표정·목소리 통해 존 윌모트 삶에 입체감 더해

조니 뎁의 팬이라면, 혹은 딱히 팬이 아니더라도 그의 푹 파인 두 눈과 날 선 콧날, 그리고 그보다 더 짜릿한 목소리에 아찔해진 적이 있다면 <리버틴>은 놓칠 수 없는 영화다. 17세기 왕정복고 시기의 영국. 방탕한 자유주의자의 상징 로체스터 백작(조니 뎁)은 국왕을 모욕한 죄로 추방령이 내려져 영국 외곽에 머물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로체스터 백작의 천재성을 극진히 아끼는 찰스 2세(존 말코비치)는 그를 다시 불러와 의회에서 자신을 위한 연설을 해줄 것과 왕의 업적을 기리는 연극을 만들 것을 부탁한다.

한편 재능 없는 여배우 엘리자베스 배리(사만다 모튼)를 눈여겨 본 로체스터 백작은 연기수업을 통해 그녀의 숨겨진 끼와 능력을 끄집어내는데, 이 와중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랑의 감정을 겪게 된다. 마침내 왕을 위한 연극이 상연되는 날. 프랑스 대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난잡한 성생활과 저속한 농담, 노골적인 풍자와 왕에 대한 모욕으로 점철된 연극이 펼쳐지고, 찰스 2세는 크게 격분한다.

<리버틴>의 압권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도 지나치지 않은 조니 뎁의 연기다. 단순히 천재 난봉꾼으로 알려졌던 존 윌모트의 삶은 조니 뎁의 더 없이 탁월한 표정과 목소리를 통해 입체감을 찾는다. <리버틴>은 이야기나 대사를 통해 윌모트의 내면세계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가늠해낼 수 있는 건 오로지 윌모트를 연기하는 조니 뎁의 몸짓과 표정을 통해서뿐이다.

그의 보이지 않는 좌절감이 관객의 마음을 엄습하는 순간, 우리는 모든 걸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어둠 속으로 희미하게 빨려 들어가며 “나를 좋아하게 됐나요, 이제는?”이라고 묻는 조니 뎁의 표정, 그 애매한 일그러짐을 결코 놓치지 말라. <리버틴>의 방점은 바로 그 위에 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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