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골든타임 놓친 정부, 대응책 마련에 부심

양주시 거점통제초소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역대 최악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이하 AI)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지난 11월 16일 전남 해남 농가와 충북 음성에서 최초 신고 접수가 된 이후 한 달여 만에 2000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지난 2014~2015년 669일 동안 1937만 마리를 살처분 한 기록을 넘어 섰다. 범정부 관계 장관 대책회의는 AI 발생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열렸다. 국정 공백으로 인한 방역대책 실패가 피해를 더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AI 유입 차단을 위해 내려진 이동 중지 명령을 어기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달걀 대란으로 인해 소비자·유통업계 타격

무분별한 살처분으로 농장주들 눈물

정부는 지난 16일 AI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끌어올렸다. 2003년 국내에서 AI가 발생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으로 높였다는 것은 AI가 국가적 재앙이 됐다는 의미다. 문제는 국내에서 AI는 수년째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하는데,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이 허둥대다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점이다.

강원 원주경찰서는 지난 21일 AI 유입 차단을 위해 내려진 이동 중지 명령을 어긴 혐의(가축전염병예방법 위반)로 수의사 윤모(46)씨와 사료배달업자 안모(54)씨를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윤 씨는 이동 중지 명령 기간인 11월 26일 진료 목적으로 원주 실림면 가금류 농가를 방문한 혐의를 받았다. 또 안 씨는 같은 날 오후 2시 경 사료배달을 하기 위해 원주시 호저면의 한 가금류 농장을 찾은 혐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1월 25일 자정부터 같은 달 27일 자정까지 48시간 동안 일시이동중지명령을 발령했으나 이들은 명령을 어겨 입건됐다. AI의 심각성을 각성하지 못한 시민의식이 문제였다.

현재 각 시에서는 AI 유입차단을 위해 거점 소독장소를 설치한 후 전체 가금 농가에 소독시설·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또 입·출구 지역에 방역을 실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관군 합동 초소 운영

효과는 과연?

실제 기자는 AI 발생지인 양주·포천 등을 다니며 당국의 방역 현장을 살펴봤다.

먼저 양주시 삼육사로를 통해 시내의 농장가와 도로 등을 다니며 시내 상황을 살펴본 결과 AI 이동통제초소에서 방역을 실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방역자가 복장을 갖추고 초소 밖으로 나와 ‘차량 전체’를 직접 분사로 방역하는 방식이 아닌 차량이 바닥에서 올라오는 물줄기를 지나는 방식으로 방역이 진행됐으며 초소 내에는 공무원·경찰·군인간부·병사 등 총 4명이 상주하는 상태였다. 이는 결코 적은 숫자도 아니었다.

양주시 상황실 관계자는 “현재 거점통제초소와 이동통제초소를 병행 운영 중이다. 거점통제초소는 축사차량 대상으로 방역을 실시하며 U자 형태의 소독시설을 갖춰 차량전체에 분사할 수 있는 구조를 이룬다. 부족하면 방역자가 직접 소독약을 분사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이동통제초소는 도로를 거쳐 가는 일반인들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차량 전체에 분사할 경우 운전자들의 저항이 크다. 결국 바닥에서 위로 분사하는 형태로 간단하게 방역이 진행된다. 타이어와 차량 밑 부분에 방역을 실시해 확산을 막는 형식이다”라고 말했다. 또 관계자는 “현재 개선할 예정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일반인들의 차량으로 인해 AI가 확산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뉴시스>

부재료인 달걀

손님상에 내놓기 힘들어

AI 확산으로 인한 피해는 농가뿐이 아니다. 닭·오리고기, 달걀 등의 공급 하락으로 연말 성수기를 맞은 백화점·대형마트, 제과·제빵업계 등까지 비상이 걸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2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특란(중품) 30개 한판 가격이 AI 발생일인 지난 11월 16일 5678원에서 이달 19일 6605원으로 22.1%나 뛴 것으로 드러났다.

롯데마트는 20일 전 점포에서 계란을 ‘1인 1판’으로 구매 제한에 나섰다. 이마트도 22일부로 계란 판매가격을 평균 6% 추가 인상했다.

제과·제빵업계 상황도 마찬가지다. 연말 시즌을 앞두고 계란 사용량이 많은 케이크·쿠키 등 생산에 차질이 염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제빵업계의 경우 계란이 주원료 중 하나인데, 1일 유통 물량 기준으로 60~70톤 가량이 사용될 정도로 물량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형 제빵업체 직원들이 각자 계란을 사서 모으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계란 대란’이 현실화되자 정부에서는 항공기로 신선란을 직접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장 수급에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한 지 2주 만에 뒤집은 것이다.

정부는 미국, 캐나다, 스페인, 호주, 뉴질랜드 등 5개 AI 청정국에서 신선란을 직접 들여오는 방안을 추진하고, 항공운송비 지원이나 일시적인 관세 인하 혜택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고비용 항공운임과 계란 소비량 등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계란 가격에 비해 항공운임이 비싸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호프집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56·남)씨는 “현재 달걀이 포함된 모든 안주 메뉴로 판매 중지한 상태다. 이상하게도 금년도는 AI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손님들이 닭고기나 달걀을 많이 찾는 편이다. 아마도 공급량이 줄고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 ‘비싼 재료’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구입처에 따라 다르겠지만 30알 기준 한판에 6000원 이상씩 하는 달걀을 손님상에 내놓기는 매우 어렵다. 달걀은 주재료보단 부재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재료에 대한 엄청난 가격 인상은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신속한 대처

한국은 우왕좌왕

현재 한국은 충북 음성과 전남 해남에서 첫 AI가 발생해 첫 확진이 있은 후 한 달여 만에 전국적으로 2000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동일 바이러스인 H5N6형 AI가 아오모리시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일본은 발생 당일 아베 총리 관저에 위기관리센터를 가동하고 다음 날 오전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했다. 한국은 AI 발생 이틀 뒤 김재수 농림부 장관이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고 26일이 지나서야 황교안 총리가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또 일본은 AI 관련 상황이 감지되면 환경성에 즉시 보고하고 중앙 정부차원에서 전면적으로 방역을 실시한다. 하지만 한국은 AI 발생 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책본부가 방역과 살처분, 이동통제, 소독시설 운영을 한다. 지자체가 주축이 되기 때문에 중앙 정부차원의 방역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일본은 신속한 초동대처로, 확진 12시간 만에 자위대 3000명 살처분 투입, AI 양성반응이 난 해당 농가에 대해서만 살처분 조치를 취한 결과 살처분 가금류는 100만 마리에 그쳤다.

하지만 한국은 시간에 관계없이 감염 농가 반경 500m 이내 가금류를 의무적으로 살처분해 일본과 AI 발생 후 조치 기준, 방식자체에도 큰 차이를 보였다. AI 대처방안에 대해 선진국 사례를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살처분 정책만으로

AI 막을 수 없다

지난 12월 19일 충남대 수의학과 서상희 교수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 방역 당국에 대한 지적을 했다.

그는 “AI는 국내에서 2003년부터 13년 동안 매년 발생하는 수준이다. 국민들이 청정지역에 대한 당국의 입장과 언론을 통해 들으며 살처분을 승인해왔다. 하지만 알다시피 피해 상황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2014년 H5N8가 발생해서 2년 만에 2000만 마리 가량정도 살처분을 진행했는데 현 상황(2000만 마리 살처분)은 한 달 만에 벌어졌다. 과연 살처분 정책만으로 우리나라의 방역시스템에서 AI를 막을 수 있는가? 아니라고 본다”라며 “방역과 살처분을 실시했음에도 이미 국내 피해는 심각하다. 이는 정책을 변경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철새는 AI의 확산에 주된 원인이 아닐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철새로 인한 AI 피해 사고로 확인된 것은 23건 뿐이다. 사실 농장에서 수천 건, 수십만 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지는데 언론이 발표를 안 하다 보니 마치 철새가 주요 원인처럼 부풀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AI 백신

“치료제 아닌 예방책”

서 씨와의 인터뷰 중 진행자가 “그렇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백신밖에 없냐?”라는 질문에 그는 “백신은 최후의 수단이 아니다. 백신은 최선의 정책이고 AI 백신에 대해 쉽게 얘기하면 2009년 신종플루를 생각해봐라. 미국에서 2009년 4월에 발생하고 그 다음 한국이 같은 여름이 지나면서 가을에 바이러스가 국내에 많이 확산됐다”라며 “국내에 백신이 없으니 질병관리본부장이 다국적 기업에 가서 소위 말하면 ‘(백신을) 어떻게든 구하려고’ 했고, 이후 국내 제약회사가 생산했다. 두 달 만에 바로 국민에게 접종했으며 부작용은 조금 있었으나 문제없이 신종플루를 막아낼 수 있었다. 백신은 치료제가 아닌 예방책이다”고 말했다.

또 서 씨는 “현재 농림부장관도 백신이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하는데 AI가 더욱 확산 될 경우 백신으로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된다. 왜냐하면 이미 많이 확산돼 있는 경우에 백신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2주가량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현 상황처럼 급격한 확산에서 백신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효과는 거의 반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비관적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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