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수가 역도선수로 변신했다. 지난 7월 1일 개봉된 ‘킹콩을 들다’에서 비운의 동메달리스트이자 시골학교의 코치인 이지붕 역을 맡아 열연을 보여줬다. 매 작품마다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이범수로부터 그의 연기관에 대해 들어본다.

SBS TV 드라마 ‘온에어’에서 마른 근육의 ‘몸짱’으로 수많은 여성들을 열광하게 했던 이범수(40)가 1년 만에 울퉁불퉁한 역도선수로 스크린에 등장했다.

7월1일 개봉된 ‘킹콩을 들다’(감독 박건용·제작 RG엔터웍스 CL엔터테인먼트)를 통해서다. 역도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비운의 동메달리스트이자 시골학교의 코치인 ‘이지봉’역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원태연 시인의 데뷔작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이후 4개월 만이다. 당시 그의 출연은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시인이 감독으로 첫 나들이한 작품인데다 시기적으로도 낯설었다. 가을에나 나올법한 비극적인 멜로드라마가 풋풋한 봄날인 3월에 개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주환’이라는 인물의 순애보를 진솔하게 표현했다.

‘킹콩을 들다’에서의 도전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됐다. 박건용 감독의 데뷔작인 ‘킹콩을 들다’는 역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박영자’ 역의 조안을 제외하곤 신인이라는 점에서도 그는 적잖은 부담이 있었을 법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 만큼 실존 인물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는 부분도 큰 숙제거리였다.

그는 보란 듯이 이 모든 과제들을 풀어냈다. 신인감독인데다 생소하기까지 한 소재에 전작과 180도 다른 캐릭터가 의도된 선택이었을까. 그는 “감독과 시나리오에 대한 믿음”이라고 답했다. “흥행을 보장하는 감독, 흥행배우, 이런 것들은 주가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박 감독이 직접 집필한 시나리오여서 누구보다 잘 만들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며 “감독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서 시작된 도전”이라고 강조한다. “처음 시도되는 소재라는 점에서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소재인 만큼 도전하고 싶었다.”

이범수는 도전하고 싶은 역할, 표현하고 싶은 인물에 빠져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마치 극중 이지봉이 “역도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는 가슴절절한 말처럼.

역도라는 소재를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인생사다. “이지봉은 역도 밖에 모르는 인물인데 역도하지 못하는 힘든 시기를 보낸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그런 힘든 시기가 있다. 누구나 경험해봄직한 이야기”라고 분석한다. 익숙하지 않는 소재지만 100%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선배로서 신인들을 이끌어줘야 했던 그는 그들의 열정을 보고 자신의 신인시절이 새록새록 떠올랐다며 환하게 웃는다. “열정을 거울삼았던 시절을 뒤돌아보게 되고 배우로 신인으로 임했던 초심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이지봉이라는 캐릭터를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감정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은 인물이다 보니 벅찼다. 그런 상황에서 후배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있다. 감독이 작품 전반에 대해 이끄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작품과 함께 연기한 후배들을 통해 배우로 최선을 다한다는 게 어떤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실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명목은 없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이 작품에 대해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반문을 하게 됐다”며 “결국 작품에선 이지봉이라는 역할을 넘어 내 나름대로의 노력과 후배들에 대한 배려, 조언, 이러한 것들이 생겨났다”고 풀었다.

박건영 감독은 이범수의 리더십을 극찬했다. 그러나 이범수는 자신이 월권을 할까 조심스럽다며 감독이 해야 할 몫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며 말을 아꼈다.

영화의 도입부이자 크랭크인 이후 첫 촬영 신이었던 88올림픽 당시 시합장면을 위해 특수 제작된 50~60㎏짜리 역기를 수백 번이나 들었다. 두 달 가량 한국체육대학교와 태능선수촌에서 하루 8시간씩 운동을 했다.

그 결과 국가대표 코치가 “어떻게 한 달 만에 이런 자세가 나올 수 있냐”며 놀라기도 했다. 연습 과정에서 그는 4번 요추를 다쳐 고생하기도 했지만 촬영을 강행했다. “주연이다 보니 내가 부상당했다고 촬영 일정을 미룬다면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킹콩을 들다’의 개봉일자는 7월 2일. 이날 개봉된 ‘트랜스포머2’와 맞붙었다.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건 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컴퓨터그래픽(CG)의 화려함은 있겠지만 인간이 전해주는 웃음과 감동은 다른 것”이라며 자신만만해 한다. “‘킹콩을 들다’는 CG에서는 표현하기 부족한 우리나라만의 정서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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