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휴대폰 국내시장에 발 못 들이는 이유

한 중소기업에서 만든 수출용 저가폰은 통화와 문자메시지, 전화번호 기억, 벨소리다운로드 등 꼭 필요한 기능이 있지만 가격은 30달러(원화 약 3만원)도 안 된다. 국내에서는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이동통신사들이 판매를 꺼리고 있어 구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WCDMA(HSDPA)방식 3.5세대(3G)에 많은 투자를 한 이동통신사 입장에서 음성 통화 위주인 저가 휴대 전화가 그리 달가울 리 없다. 정통부의 휴대 전화 보조금제도 때문에 심지어 공짜로 첨단 휴대전화를 살 수 있는 시장구조도 저가전화의 보급을 막는 요소다. 국내 휴대폰 기능은 뛰어나지만, 가격이 다소 비싼 측면이 있다. 신흥국가들이 저가휴대폰을 선호함에도 불구하고 고가에만 매달리는 것이 세계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한 이유이기도 하다. 1인1가입자 시대에 인구분포로 본다면 통화만 잘 되면 된다는 중장년층의 소비자가 분명 존재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기능이 너무 많고 복잡해 다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일부 계층에서 저가폰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보조금을 한번 지급 받고 잃어버리거나 파손되면 고가의 핸드폰을 고액을 들여 살 수 밖에 없다.


서울에 거주하는 박 모 씨는 얼마 전 구입한지 얼마 안 된 휴대폰을 떨어뜨려 망가지는 바람에 휴대폰을 구입하기 위해 집 근처의 이동통신 대리점을 찾았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이유는 보조금이 없을 경우 지나치게 휴대폰이 비쌌기 때문이다. 최신형 휴대폰의 경우 60만 원을 넘는 고가이고, 20~30만 원 대의 저가형 휴대폰은 나온 지 오래돼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처럼 최신형 휴대폰의 가격이 비싼 이유는 다양한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600만 화소 이상의 카메라와 MP3플레이어 기능은 기본이며, 영상통화와 DMB 수신이 가능한 휴대폰도 출시돼 있다.

물론 휴대폰의 기술 발전에 따라 다양한 기능이 첨가된 제품이 출시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기업들의 지나친 과열경쟁 속에서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하고 외면한다는 것이 중장년층 소비자들의 의견이다.

사실 요즘 웬만한 소비자는 MP3플레이어나 디지털카메라 하나 정도는 갖고 있다. 따라서 휴대폰의 순수한 기능인 전화통화와 문자메시지 기능만 원하는 소비자도 상당수다. 중장년층 소비자의 대부분이 기능의 일부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실제로 거리에서 중장년층 시민 20여명에게 문의한 결과 이중 절반이 넘는 수의 시민들이 카메라와 MP3플레이어 기능을 쓸 줄 몰랐다. 겨우 5~6명 정도가 문자를 보낼 줄 아는 수준이었다.

만약 기업들이 최신 기술이 접목된 휴대폰을 생산함과 동시에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 저가형 휴대폰을 내놓는다면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제조사·이동통신사는 서로에게 책임전가

출고가 10만원 이하 휴대폰이 국내에는 안 나오는 이유가 뭘까.

국내 주요 휴대폰 업체들이 30만원대 중저가 제품들은 경쟁적으로 시장에 내놓고 있다.

LG전자는 올 들어 선보인 신제품 절반 이상이 출고가 30만원대이다. 그런데 실제 소비자가 원하는 초저가폰이라고 할 수 있는 출고가 10만원 이하 신제품은 없다.

국내 대기업들이 생산한 제품은 30만원의 출고가가 사실상 최저 가격인 셈이다. 물론 소비자들은 구형 제품이나 보조금 혜택 등을 통해 이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제품을 구입 할 수는 있다.

왜 국내 제조업체들은 저가형 제조 인프라가 구축돼 있어 해외시장에는 초저가 60~120달러 제품을 공급하면서도 유독 국내 시장에 내놓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이동통신업체와 제조사간에도 이해타산이 맞물려 상반된 입장차를 보인다.


제조사 “채산성 맞지 않고 수요 없다”

휴대폰 제조사들은 무엇보다 최소한의 기능인 카메라와 MP3의 기능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소 출시가가 30만원은 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같은 기능이 없는 제품은 이미 눈높이가 높아진 국내 소비자들에게 먹혀들지 않아 굳이 유통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요조사 자료는 밝힐 수 없고 팔고 안 팔고는 제조사의 자유니 당연히 팔지 않는 것이라고 논리를 펼친다.

제조사 한 관계자는 “이미 부도난 중소업체인 VK가 선보인 20만원대 제품들이 외면당한 것을 보면 안다 ”며 “최소한 카메라와 MP3 기능 정도는 있어야 높아진 국내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저가의 제품은 품질 보장 뿐 아니라 채산성을 맞추기도 힘들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이미 가입자는 포화상태에 이르러 새로운 수익구조상 고가폰을 만들어야 마진이 많이 남고 이동통신사와의 이해관계 속에 고가폰을 팔아야 이통사도 영상통화, 인터넷 부가서비스(게임, 오락, 성인물 다운로드) 등으로 인한 이통사의 수익 모델도 창출된다고 이통사와 제조사간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져 상당한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국시장은 유독 세계 1위 제조사인 노키아도 이통사가 구매하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는 구조가 형성돼 있는 세계 유일한 시장”이라고 주장했다.

제조사의 프리미엄 전략 때문에 싼 가격의 제품을 통해 가입자를 유치하려는 이통사들은 국내 휴대폰 가격이 비싸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특히 이통사들이 보조금을 경쟁적으로 과도하게 주다보니 오히려 초저가폰 출시를 가로 막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통사 한 관계자는 “외국 제조사들은 싼 제품들도 많이 내놓지만 국내 업체들은 프리미엄 전략이라는 명분아래 싼 제품을 잘 만들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며 “보조금이 최대 3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이하 가격의 제품은 생산하지 않으려는 배경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핸드폰 사용자 모임인 ‘세티즌’의 정석희 팀장은 “이동통신사와 제조사 양자 모두 매출을 기대하기 힘든 저가폰에 관심이 없다” 며 “저가형은 출시하면 소비자는 통화밖에 안할 것이고 이통사는 네트워크에서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데 생산을 기피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팀장은 또 “이들은 계속해서 정책을 고수하는 것이 고수익을 창출하는 배경이기에 보조금을 내세워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고 강조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첫 출고가 30만원 초반대면 보조금, 부가서비스 옵션 등을 합쳐 실제 소비자들은 시장에서 10만원도 안 되는 금액에 살 수 있어 국내 시장에서는 중저가폰으로 취급된다.

특히 이동통신 업체들은 가입자 확보를 위해 최대 30만원까지 보조금을 지급. 사실상‘공짜폰’이라는 공식이 시장에 형성돼 있다.

제조사의 한 관계자는 “이통사와 제조사간 협의를 통해 결정되는 휴대폰의 가격에는 일종의 최저 가격대의 저항성이 있다”며 “수요가 별로 없는 초고가의 가격대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반면 보조금 지급 관행과 맞물려 보급형 제품의 최저 가격 상품은 아예 30만원으로 굳혀져 암암리에 움직이지 않는 마지노선이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동통신사 “제조사가 만들면 팔수도 있다”

이동통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통사가 기획제품을 주문해서 팔리지 않을 경우 고스란히 제고 부담으로 떠안게 된다” 며 “중소기업제품은 애프터서비스가 잘 이뤄지지 않으며 혹 판매 후 부도가 나면 서비스 리스크도 그대로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 관계자는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서비스는 대기업 기존 서비스망에 대금을 지불하는 식의 위탁을 실시할 수도 있고 실제로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며 “부도는 대기업도 날 수 있는데 그런 문제까지 걱정해서 힘들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외국 이동통신 정책은?
규제나 압박 위주 보조금 정책 없어


현재 전세계 이동통신 가입자수는 약 28억 5천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33억5000명에 이르러 전세계 인구대비 50%이상의 이동통신 보급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계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업체들의 단말기 출하대수도 2006년 3·4분기 5130만대, 2006년 4분기 9000만대, 2007년 1·4분기 2억 5740만대 등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자율적 가입기간 위약금 설정

미국의 이동통신 보급률은 2006년 말 77%로, 지난 2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13.1%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은 정부차원에서의 단말기 계약 및 보조금과 관련된 별도의 규제는 없으며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Sim Lock 해제여부 및 조건, 가입기간, 위약금을 설정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이동통신사인 Sprint Nextel, Cingular Wireless, T-Mobile은 약 150~200달러 정도의 보조금을 지급해 주는 대신 일정기간동안 서비스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이 기간 내에 해지코자 할 경우 일정 금액의 위약금을 요구한다.

이들 이동통신사는 계약기간을 12, 18, 24개월로 제공하고 있으며, 단말기 구입 시 받은 보조금이 클수록 의무적인 가입기간도 길게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부여된 계약기간 이내에 타 사업자로의 이동 등의 이유로 해지 하고자 할 경우 통신사별로 획일적인 위약금을 요구하고 있는데, Sprint Nextel과 T-Mobile은 200달러, Cingular Wireless는 175달러를 계약 위약금으로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3사 모두 서비스 개시 이후 14일 혹은 서비스 미개통 시 동향 단말기 구입시점을 기준으로 30일 이내의 반납기간(return period) 동안 해약을 요구할 시에는 위약금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본, 무료폰 · 1원짜리 휴대폰도 있어

일본은 2005년 말 기준 100명당 71명꼴로 이동통신에 가입되어 있으며, 단말기 보조금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없고, 단말기 보조금으로 인한 0엔폰 또는 1엔폰이 시중에 많이 시판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2년부터 SIM Lock 해제 및 단말기 보조금 정책 조정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본 이동통신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 환경의 구축을 도모하기 위한 ‘오픈형 모바일 비즈니스 환경’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 이동통신 서비스 및 단말기 계약행태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시 단말기에 대한 보조금이 지급되는데, 이 때 지출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통신사업자들은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높은 통화료를 부과함으로써 그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경우처럼 계약기간의 단위에 대한 제한은 없으나, 대체적으로 장기 가입계약을 체결할 경우 서비스 이용실적 등에 따라 통신요금을 대폭 할인해 주는 방식을 통해 이용자들이 장기 가입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기간이 연장될수록 통신요금에 대한 할인폭도 커진다.

NTT DoCoMo도 위의 경우와 유사한 할인요금제를 제공하고 있는데, (신)일년할인요금제에 가입시 1년 단위로 계약기간이 연장되며, 계약 위약금은 3000엔이다.

예전의 Vodafone은 연간할인(1년단위로 계약, 위약금 4000엔)이라는 요금제를 제공했으며, 2006년 4월 Vodafone을 인수한 소프트 뱅크는 자기할인요금제(2년 단위로 계약, 위약금 9500엔)와 연간할인(1년 단위 계약, 위약금 3000엔) 요금제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일본 정부의 SIM Lock 해제 가능성에 대한 서비스 사업자들의 대응책으로 단말기 할부판매 상품을 제시하고 있는데, 소프트 뱅크의 ‘신수퍼 보너스 특별 할인’계약시 고가의 단말기를 12~24개월로 분할 납부하고 매월 지불해야 하는 이용자의 통신요금의 사용실적에 따라 할인액의 규모도 매월 변동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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