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리기’ 기대감에 연착륙


지금까지 정치권에 경제인들이 진입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들어가는 문도 좁을 뿐더러 안팎의 시선도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CEO출신 대통령이 배출되고 경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경제 대통령’을 탄생시킨 민심이 ‘경제인 국회의원’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이번 18대 총선만 해도 그렇다. 지난 9일 치러진 총선의 최대 이슈는 단연 경제계 인사들의 맹활약이었다. 이번에 당선된 경제계 인사들은 비례대표를 포함해 모두 16명. 예상보다는 저조(?)한 성적이지만 17대 총선(5명)보다 세 배 가까이 늘었다. 경제관료 · 기업인 출신 18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알아봤다.

예상대로 이번 총선에서 경제관료·최고경영자 출신 국회의원이 대거 탄생했다.

이른바 거물 경제인 출신으로는 문국현(서울 은평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을 꼽을 수 있다.

창조한국당 후보로 초지일관 ‘대운하 망국론’을 외친 그는 결국 여당 실세인 이재오 의원을 밀어내고 당당히 금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CEO 출신 문국현·이용경

문 당선자는 당초 ‘정치 1번지’란 상징성을 지닌 종로에 출마할 것을 제의 받았다.

하지만 그는 “대운하 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며 연고도 없는 은평을에 출사표를 냈다.

그의 원칙은 빛을 발했다. 일부 방송사 출구조사에서 이재오 의원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왔던 문 당선자는 막상 개표 결과 10% 격차로 이 의원을 따돌렸다.

지역구가 넓기로 유명한 영양·영덕·봉화·울진 선거구에 출마한 한나라당 강석호 후보는 대통령 비서실장과 3선 의원을 지낸 무소속 김중권 후보를 꺾었다. 삼일그룹 회장 출신인 강 후보는 자신이 소유한 지분 등을 포함해 재산 185억3500만원을 신고한 바 있다.

삼원토건 회장 출신인 김성회 한나라당 후보는 경기도 화성갑에서 승리했다. 김 당선자는 송옥주 통합민주당 후보를 여유롭게 따돌리며 ‘CEO 출신의원’ 행렬에 동참했다.

김세연 전 동일고무벨트 대표는 36세 나이로 ‘부산의 반란’ 선봉에 섰다. 김진재 전 의원의 아들이자 한승수 국무총리 사위인 김 당선자는 ‘친박 무소속연대’ 명패를 달고 박승환 한나라당 후보를 무너뜨렸다.

부산진을에 출마했던 이종혁 세계나무교육 대표(한나라당)도 5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여유롭게 금배지를 달았다.

이용경 전 KT사장의 금배지도 돋보인다. 그는 창조한국당 비례대표 1번으로 무난히 여의도에 입성했다.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6번 순위를 받은 정국교 H&T대표도 당당히 금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선거 초반부터 2위 후보와 큰 격차를 보이며 금배지를 예약했던 이용섭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무난히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치열한 민주당 공천경쟁을 뚫고 민주당 텃밭인 광주에 출마한 이 당선자는 오랜 국정 경험을 인정받아 유권자들에게 신뢰를 얻었다는 분석이다. 그는 참여정부에서 국세청장, 행자부 장관, 건교부 장관 등을 지냈다.

한나라당이 대구·경북지역에 전략공천한 경제관료 출신 배영식 후보도 금배지를 달았다. 배 당선자는 재경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

낙하산 공천 논란으로 한때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배 당선자는 ‘대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경제전문가’를 강조한 선거 운동이 주요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광림 전 재정경제부 차관은 허용범 한나라당 후보와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박빙 승부를 겨루다 당선된 케이스다.

참여정부 시절 경제관료를 지낸 그는 당적도 없이 한나라당 텃밭에 나서 오직 민심을 붙잡는 전략으로 승리를 일궈냈다.

이번 총선에서 김 전 차관은 안동 지역 최대 성씨인 안동 김씨 문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허범도 전 산업자원부 차관보도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허 당선자는 친박연대 유재명 후보와 친노 성향의 무소속 송인배 후보 추격을 가볍게 따돌리며 여의도행에 합류했다.


경제관료 출신 이용섭·허범도

한편 이명박 대통령 측근인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예상과 달리 선전했으나 이시종 통합민주당 후보에게 2% 차이로 아깝게 고배를 들었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출신으로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바꿔 출마한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당적 변경에 따른 반감 때문인지 김낙성 자유선진당 후보에게 큰 차이로 패했다.

경제 관료 출신과 CEO 출신 간 대결로 주목을 받았던 인천 부평을 지역에서는 기업인 출신 구본철(한나라당) 후보가 힘겹게 여의도행 티켓을 따냈다. 선거 초반부터 재경부 출신인 홍영표 후보(민주당)와 경합을 벌였던 구 당선자는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한편 대기업 오너 출신으로 큰 관심을 끌었던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현역인 박상돈 자유선진당 후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여의도행에 합류하지 못했다. 일진금속공업 대표이사 출신인 강기윤 후보도 권영길 민노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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