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전쟁’ 시작됐다 [1]


[이진우 기자] 글로벌 금융시장이 혼란스럽다. 지난주에도 미국의 더블딥(경기회복 후 마이너스 성장) 우려와 신용등급 강등, 유럽 재정위기의 확산이 심화되면서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각국 증시는 패닉 상태의 폭락을 거듭했다. 외환시장도 요동쳤다. 따라서 과거 금융위기 때마다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았던 외채문제가 자연스럽게 수면위로 떠올랐다. 게다가 지난 9일(현지시각)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끝난 뒤 “최소한 2013년 중반(2년 간)까지는 0~0.25%의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값싼 달러 캐리를 통한 외국인 자금의 과도한 유출입으로 인해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져 원화가치나 환율정책 및 물가에 영향을 주는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미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했고 그 아픔을 아직 잊지 않았다. 이에 [일요서울]은 또 다시 외환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 현 상황을 짚어봤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외채무가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3963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7월 말 총 외채 규모는 정부가 심리적 저항선으로 잡고 있는 4000억 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제 규모가 커지면 외채가 늘어나는 건 자연스럽다”며 “다만 4000억 달러를 초과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총 외채 4000억 달러 기준으로 연 4%의 금리를 가정하면 매년 이자만 160억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만약 경상수지 흑자가 감소하거나 적자로 되면 우리 경제에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 될 수 있다.

정부는 7월 말 기준으로 311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이 충분하고 경상수지가 여전히 흑자 기조를 유지하는 한, 외화 유동성 위기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자신감을 표출했다.

총 외채 3963억 달러 중 1512억 달러(38.2%)가 단기외채다. 단기외채 비중이 2008년 말 47.2%, 2009년 말 43.2%, 2010년 말 37.5%로 점차 감소하는 등 외채 구조가 개선되고 있는 것도 자신만만해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내 금융시장이 완전히 개방돼 있으며, 수출입 비중이 GDP의 80%에 이르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특성 때문에 외부변수의 충격이 가해지면 외환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또한 정부는 1997년, 2008년에도 항상 “이번만큼은 과거와는 다르다”고 했으나, 결국은 외화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1997년에는 IMF 구제 금융을 받아서, 2008년에는 미국과 달러-원화를 맞교환하는 ‘한·미 통화스와프’ 약정을 체결해 겨우 위기를 벗어났다.


외화 유동성 위기 대응 비용 증가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칠 때마다 외환시장이 요동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금융시장의 주도권을 외국인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내외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빠른 속도로 자금을 이동시킨다. 이 때문에 규모가 작은 우리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것이다.

최근 들어 경기침체 우려와 외국인의 국내 증시 이탈이 본격화하며 환율이 상승하고 있다. 환율 상승은 외국인에게는 환차손이 발생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더욱 더 국내 금융시장 이탈을 가속화하게 하며, 이로 인해 환율은 더욱 상승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지난 11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2008년의 경험에서 보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는 단기외채가 많고 많은 양의 자금 유출입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라며 “여전히 이런 리스크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거시건전성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달 들어 외국인의 매도공세로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매도 주체세력은 유럽 자금으로 밝혀졌다. 이는 유럽의 재정위기 확산과 무관치 않다고 보여진다. 유럽의 재정위기 우려가 계속된다면, 외국인의 증시 이탈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311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이 적정한지에 논란이 새롭게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에 대해 목표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내부적으로는 3000억 달러 이상을 적정 수준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환보유액의 적정성 논란이 제기됐었다”며 “이는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로서 치러야 할 비용이며 구제금융을 받은 전력을 감안하면 더욱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단기외채 증가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단기외채의 증가는 과도하게 개방돼 있는 우리 경제 체질상 언제라도 옷 안의 송곳과 같이 위기를 재연할 수 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외환위기를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개방 전처럼 자본통제의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다”며 “그러나 이제는 우리 금융권도 실력을 키워 해외 진출을 확대하고, 외국인이 우리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데 대한 견제 역할을 적절히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개방된 경제 구조를 원래대로 돌리기는 쉽지 않으나,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는 엄격한 외채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31면에…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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