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계곡 별장에서의 하룻밤은 두 쌍의 부부에게 아주 오붓하고 재미있었다. 백길도 씨와 노순홍 여사 부부,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생인 신호윤 씨와 조민자 여사 부부, 이 네 사람은 철이 바뀔 때면 가끔 이렇게 모여서 며칠씩 여행을 다니곤 했다.

동창생이기는 하지만 백길도 씨는 준재벌집 사위로 돈에 구애받지 않는 풍족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신호윤 씨 부부는 조그만 화랑을 하면서 어렵게 사는 처지였다. 그래서 늘 백길도 부부의 신세를 지는 편이었다.

그런데 무주 별장에서 이틀째 되는 낮 오후에 문제가 발생했다.
오후 2시 조금 넘어 백길도씨의 아내 노순홍씨가 별장 2층 침대에서 시체로 발견되어 남은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했다.

곧 경찰에 신고되고 관할 경찰서의 수사반이 도착했다. 노순홍 여사는 눈처럼 흰 잠옷 바람으로 잠든 듯이 침대 위에서 죽어 있었다. 30대 초반으로 보기에는 훨씬 젊어 보였다.

“반장님 목이 졸려 질식사한 흔적이 뚜렷합니다. 살인 사건입니다.”
강 형사의 보고를 받은 추 경감은 노순홍 여사가 자기들 침실이 아닌 신호윤 부부의 침실에서 죽어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이 별장은 아래층에 거실과 조그만 방이 두 개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노순홍 씨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누구지요?”
추 경감이 조민자 씨를 보고 물었다.
“우리 네 사람은 아래층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각각 헤어졌어요. 우리는 어젯밤 고스톱 치느라 새벽....”

그때 신호윤 씨가 눈을 흘기자, 조민자 씨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괜찮아요.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이야기를 계속해 봐요.”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래층 저 방에서 맥주 한잔 하고 있었고요. 백 선생님은 아래층 저쪽 방에 계셨구요.”

“저쪽 방?”
추 경감이 그 방으로 들어갔다. 조그만 탁자 위에 서류 장부가 놓여 있고, 마시다 둔 것 같은 설록 찻잔이 놓여 있었다. 추 경감이 찻잔을 만져보았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밤중 공부할 때 잘 끓여다 주던 설록차였다. “백 선생은 여기서 무얼 했소?”

“전 점심 먹고 여기 들어와 이 회사 장부 좀 맞춰보려다가 골치가 아파 산에 갔다 왔죠. 제가 들어오니까 그 사람이 죽었다고....”
“그럼 산에 갔다 온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한두 시간 걸렸을 것입니다.”

백길도씨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노순홍 여사가 죽은 시간은 오후 2시께라고 검사반이 이야기했으니까 백길도씨의 알리바이는 성립된다.
추 경감은 신호윤 씨 부부의 알리바이를 더 캐보았다. 그들은 점심 먹고 그 방에 들어간 뒤 가끔 화장실에 다녀왔을 뿐 오후 2시가 넘도록 맥주를 마셨다고 한다.

“반장님, 저 신호윤이란 자가 아주 음흉합니다. 저자가 아래층에서 슬그머니 나와 노순홍을 자기 침실로 불러들인 겁니다. 그리고 좀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영 말을 듣지 않자...”

“백길도가 등산했다는 것을 목격한 사람 좀 알아봐.”
강 형사의 추리를 들은 척도 않고 반장이 말했다.
“2시 좀 넘어 그가 별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그땐 노순홍이 죽은 뒤입니다. 그보다 저 친구, 아주 운이 틘 사나이입니다. 백수건달이 처가 덕에 귀공자가 되어 거들먹...”

“쓸데없이 남의 집 걱정 말고 이 집에 드나든 사람 목격자나 찾아봐.”
추 경감이 핀잔을 주자 그는 뒤통수를 끓으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곧 다시 들어와 목격자는 아무도 못 찾았다고 했다.
“그러면 범인은 이 별장에 있던 세 사람 중 하나야.”

추 경감이 단정적으로 말하며 백길도, 신윤호, 조민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야 뻔하조. 왜 시체가 그 방에 있었겠습니까? 평소에도 신호윤 씨는 노순홍에게 관심이 많았고...”
“생사람 잡지 마시오!”
신호윤이 소리를 꽥 질렀다.

“범인은 바로 남편 백길도야. 강 형사. 서로 모시고 가.”
추 경감이 뜻밖의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해서 백길도는 경찰서로 연행되고, 그는 범행을 모두 자백했다.

“내가 죽일 놈이지요. 하지만 엄처시하에 안 살아본 사람은 모릅니다. 나한테 관리를 맡겨놓은 기업체 몇 개 털어먹었다고 남편을 쇠고랑 채우겠다는 여편네를 어떻게 믿고...”
그가 울면서 하소연했다. “그런데 노순홍 씨의 시체가 왜 신 씨네 방에 있었어요?”

“혐의를 그쪽으로 돌리려고...” “쯧쯧쯧”
추 경감이 혀를 차며 백길도의 이마에 꿀밤을 주었다.


Q. 추 경감은 백길도가 범인인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백길도가 2시간 동안 밖에 나갔다 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가 마시던 설록차가 따뜻할 리가 없다. 거짓말이 들통 난 것이다. [당신의 추리능력은 초단입니다]

 

작가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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