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박지성? 이청용이 더 낫다”


차범근, 박지성으로 이어진 대한민국 축구영웅 계보가 이청용(21·볼턴 원더러스)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달 25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0라운드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작렬하며 팀의 3:2 승리를 이끈 이청용은 영국 스카이스포츠가 꼽은 주간 평점 top 3에 이름을 올렸다. 잉글랜드 무대에 진출한 지 불과 석 달 만에 4개의 공격 포인트(2골 2도움)를 기록, 폭발적인 기량을 선보인 이청용. 그는 최근 미국 최대 스포츠전문채널 ESPN의 집중조명을 받으며 월드스타로 발돋움 했다. ‘허정무호 캡틴’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침체 국면을 맞고 있어 이청용의 활약상은 더욱 눈에 띤다. 설기현, 이영표, 이동국 등 앞서 영국무대에 진출했던 쟁쟁한 선배들을 확연히 뛰어넘은 이청용의 비상. 그 비밀은 무엇일까.

이청용은 지난달 29일 런던 스탬포드브리지에서 벌어진 첼시와의 칼링컵 16강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리그 1위를 사수한 강팀과의 일전이라는 점에서 이청용의 결장은 국내 축구팬의 실망을 사기 충분했다. 더구나 소속팀 볼턴은 0대4로 대패했다.

그러나 이는 리그경기에 집중하기 위한 게리 멕슨 감독의 지략이었음이 알려졌다. 전반에만 두 골을 허용해 굳이 이청용 등 주요 공격자원을 풀가동할 필요가 없었던 것. 평소 후반 30분 이후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이청용을 위한 감독의 배려로 볼 수 있다.


英·美 “원더풀! 블루 드래곤”

첼시라는 대어를 잡지는 못했지만 이청용의 주가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美 ESPN 스타닷컴(www.espnstar.com)은 지난달 29일(한국시간) 금주 아시안 포커스(Asian Focus)로 이청용을 집중 조명했다. ESPN은 선제골로 소속팀에 홈경기 리그 첫 승을 선물한 25일 에버턴 전에서의 활약을 비중 있게 다뤘다. EPL 데뷔 석 달 만에 2골 2도움을 기록한 가공할 적응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이다.

ESPN은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몸무게 70kg도 안 나가는(대한축구협회 프로필 69kg) 가벼운 체격이지만 측면에서의 과감한 움직임은 영국 본토의 ‘해비웨이트’(Heavy weight) 선수 이상의 파괴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 것.

국내에서도 수비수 한, 두 명은 가볍게 제칠 만큼 발재간이 좋았던 이청용의 기량도 높은 점수를 얻었다. ESPN은 골과 어시스트 등 통계상 기여 뿐 아니라 정규리그 6경기 출전 만에 톱 레벨 무대에 편안히 적응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220만 파운드(약 43억원)의 이적료로 이청용을 영입한 볼턴은 ‘횡재’나 다름없다는 게 현지 언론의 평가다. ESPN은 ‘이청용은 젊고 A매치 경험도 풍부하다. 볼턴에서도 자신감이 넘치며, 앞으로도 좋은 경기가 기대된다’고 극찬했다.

EPL에서 한국 선수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박지성과 비교해도 그의 상품가치는 뒤지지 않는다. ESPN은 ‘이청용이 넥스트 박지성이 될 잠재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엄청난 히트 상품’이라고 치켜세웠다.

영국 스포츠 전문매체 ‘스카이스포츠’도 이청용을 주간 평점 톱3에 올리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스카이스포츠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0라운드 결과를 정리하며 이청용을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 우고 로다예가(위건)와 함께 톱3에 올렸다. 이청용은 스카이스포츠 자체 평점 8점, 독자 평점 9.1을 받았다. 특히 현지 팬들이 높은 점수를 준 것이 눈에 띈다.


청용이 지성보다 나은 이유

반면 태극호 주장 박지성은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세네갈과의 A매치 경기 이후 무릎 부상을 입은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이면엔 복잡한 속사정이 있다.

맨유의 주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로 둥지를 옮긴 뒤 공격력에 큰 구멍이 생겼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박지성 보다 공격력이 좋은 나니, 발렌시아 등이 중용되고 있는 것.

호날두와 공수양면에서 환상의 조합을 이뤘던 박지성은 그의 이적으로 짝 잃은 외기러기 신세가 된 셈이다. 골이 필요한 팀에 ‘수비능력이 뛰어난 윙어’는 상대적으로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프리미어리그 빅4 가운데 한 팀인 맨유는 박지성이 빠져도 충분히 자유자재로 팀을 운용할 수 있을 만큼 스쿼드가 두텁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 카드를 굳이 꺼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박지성이 한숨 돌리고 있는 사이 이청용은 볼턴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둥이 됐다. 영국에 입국한지 사흘 만에 데뷔전을 소화한 이청용은 측면 공격이 약한 볼턴에 구세주 같은 존재다. 특히 일찍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이 약이 됐다. 앞서 이동국, 설기현, 김두현 등이 입단 초 활약하지 못해 결국 방출된 것과는 사뭇 다른 점이다.

일찌감치 프로에 뛰어들어 ‘파이터’로 조련됐다는 것 역시 이청용이 박지성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이유다. 이청용은 도봉중학교를 중퇴하고 곧장 FC서울에 입단했다. 동년배들이 흙바닥을 뒹굴며 학원축구에 찌들 때 그는 푹신한 천연 잔디 위에서 프로근성을 배웠다.

반면 박지성은 왜소한 체격 탓에 고교 때까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명지대 재학 시절 허정무 감독의 눈에 들어 올림픽 대표로 선발된 그는 대학을 마치기 전 일본 J리그 도쿄 퍼플상가에 입단해 프로에 발을 들였다.

날카로운 눈매의 이청용은 국내에서도 ‘악동’으로 소문난 선수였다. 대선배에게도 거친 파울을 일삼았고 심판과 욕설 시비가 붙어 다투기까지 했다. 좋은 의미로 엄청난 승부욕이다. 학교생활을 포기한 대신 거친 해외무대에서 살아남을 ‘강단’을 지녔다는 얘기다.

15살 때부터 프로구단 물을 먹은 이청용이 거친 프로의 세계에 좀 더 익숙하다는 게 현재까지 박지성보다 나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원동력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의 활약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지 여부다.


신문선 “앞으로 5경기가 중요”

이청용이 박지성을 능가하는 월드스타가 되려면 어떤 점이 보완돼야 할까. 문제는 체력과 경험이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첫 해외진출을 한 선수에게 있어 초반 5~10경기가 아주 중요한데 이청용은 초반 고비를 잘 넘었다”며 “앞으로는 체력적인 면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 후반에 지구력에 페이스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더 나이를 먹고 출전 기회가 늘면 나아질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이청용의 주무기는 스피드와 경험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플레이를 자랑하는 EPL에서 그는 비교적 쉽게 적응했다. 또 어린 나이에 K리그에 입문한 이청용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기량이 좋은 선수들과 오랫동안 경쟁을 벌여왔다. 최근 국가대표팀에 승선해 A매치 경력을 쌓은 것도 플러스요소다.

신 교수는 “이청용이 지금까지 넣은 골은 모두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득점이었다. 초반에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나이에 비해 풍부한 경험을 쌓은 덕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면서 “상대도 이청용을 집중적으로 막을 것이다. 앞으로 5~10경기 동안 이 기세를 이어나가는 게 관건이다”고 덧붙였다.


#이청용, 신종플루를 피해라

이청용의 소속팀 볼턴에 신종플루가 상륙했다. 최고의 활약으로 상종가를 치고 있는 이청용의 건강과 진로에 먹구름이 될지 모를 노릇이다. 지난달 28일 AP 등 주요외신 보도에 따르면 볼턴 소속 선수 4명과 구단 직원 1명이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다. 감염된 선수들의 신상은 극비에 부쳐졌다.

EPL에서 선수가 신종플루에 감염된 것은 지난달 26일 블랙번 선수 한 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데 이어 두 번째다. 영국 언론들은 신종플루 확산을 막기 위해 당장 해당 팀 경기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게리 멕슨 볼턴 감독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볼턴 구단 관계자 5명이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31일 예정된 첼시와의 경기를 연기하지는 않고 그대로 런던 원정에 나설 것”이라고 버텼다.

국내 팬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물론 이청용의 안전이다. 바로 전 경기에서 선제골을 터트리는 등 절정의 감각을 뽐낸 요즘 이청용이 신종플루 악재에 발목을 잡힌다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원정 허정무호 ‘타미플루 확보해!’

신종플루가 대유행 조짐을 보임에 따라 국내 축구계도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특히 유럽에서 뛰는 대표 선수들에 대한 집중관리 필요성도 화두에 올랐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달로 예정된 허정무호의 유럽원정(덴마크, 영국)을 앞두고 바짝 긴장한 상태다.

이미 EPL에서 5명의 선수가 확진 환자로 판정된 가운데 이청용, 박지성, 조원희, 설기현 등 해외파 선수들이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별도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협회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숙소인 파주 NFC에 손세정제를 비치하고, 이틀에 한 번 선수단 숙소를 집중 소독했는데, 이번에는 해외 원정이라 타미플루(항바이러스제)와 마스크를 확보하고 매일 오전 선수단 전원의 체온을 잴 계획”이라고 말했다.

6강 플레이오프를 목전에 둔 K리그도 신종플루 경계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연맹 의무분과위원회는 이미 지난 8월에 신종플루 관련 안전지침을 각 구단에 전달했다. 선수단의 경우 1일 1회 발열체크 후 주 1회 연맹에 관련 리스트를 제출하고 전담 병원을 지정해야 한다. 또 선수들과 구단 프런트를 대상으로 팀 닥터가 예방 교육을 실시하며 1일 1회 클럽하우스 소독, 환자 발생시 7일 이상 격리 조치를 의무화 했다.

이와 별개로 연맹은 이달 21일부터 시작될 6강 플레이오프 때 발열 체크기를 해당 경기장에 배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청용 프로필

▶직업 : 프로축구선수
▶출생 : 1988년 7월 2일 서울 출생
▶신체 : 180cm, 69kg
▶소속 : 잉글랜드 볼턴 원더러스 FC
(2009년 7월 입단)
▶포지션 : MF (미드필더)
▶프로데뷔 : 2004년 FC 서울 입단

수상 :
▶ 2008년 삼성 하우젠 K리그
대상 미드필더부문 베스트11
▶2007년 삼성 하우젠컵 도움왕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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