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널리 확산되어 갔던 전염병은 2만 년 전에도 있었다는 설이 있다. 한반도에서의 최초 전염병 기록은 기원전(B.C) 15년 백제 온조왕 4년이었다고 한다. 가장 무서웠던 전염병으로는 14세기 유럽과 일부 아시아를 휩쓸고 간 흑사병(페스트:Pest)이었다. 이 흑사병은 중국에서 최초 발원했다는 설도 있고 유럽 무역선 선원들에 의해 흑해 연안을 거쳐 이집트·그리스·이탈리아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20년 내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고 한다. 독일 지역에서는 마을 전체가 사라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페스트로 죽어가던 일부 사람들은 신의 노여움으로 죄를 받는 것이라며 자포자기했다. 그러나 일부는 유태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어 발생했다며 그들을 학살했다. 1348년 스트라스브르스에서는 900명에 달하는 유태인들을 불 속에 던져 죽이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전염병)은 멈추지 않았다. 가장 비참했던 팬데믹은 1918년 ‘스페인 독감’이었다. 이 독감으로 2000만명 내지 5000만 명이 병사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스페인 독감으로 67만5000명이 사망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사망자 62만 명보다 많았고 미국의 세계 1차대전·2차대전·베트남 전쟁 전사자 숫자를 능가했다. 스페인 독감이 절정에 이를 때엔 필라델피아에서 단지 6주 사이 1만2000명이 사망했다. 한 간호사 수련생은 병원에 출근하면서 감기 기운을 느끼더니 병세가 악화돼 그날 밤 사망했다.

미국 필라델피아 병원들은 스페인 독감 환자로 넘쳐났고 다급한 환자들은 입원키 위해 병원 측에 엄청난 뇌물을 건네기도 했다. 경찰들은 마스크를 쓰고 죽은 시체들을 집에서 옮겼고 그들 중 33명이 감염돼 목숨을 잃었다. 아리조나의 프레스코트에서는 악수를 불법으로 금지시켰다. 사망자들이 급증하는 바람에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옮기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집 현관에 주름 잡힌 종이를 걸어놓음으로써 집안에 시신이 있다는 걸 표시했다.

필라델피아 가톨릭교회는 급증하는 환자들로 간호사 부족사태가 발생하자 수녀들을 간호사로 투입시켰다. 수녀 간호사들은 하루 12시간 근무에 들어갔다. 병원근무 수녀 간호사들은 환각에 빠진 환자들이 창문으로 기어오르는 것을 막기도 했고 자신들에게 물 컵을 던지는 폭행도 당해야 했다. 가정을 방문하던 수녀 간호사는 부모 둘이 침대 위에서 죽은 채 누어 있었고 옆방에서는 어린 자녀들이 배고프다고 울고 있었던 처참한 현장도 목격했다. 스페인 독감이 끝날 때 감염된 수녀 간호사들 중 23명이 사망했다.

미국의 어윈 레들리너 콜럼비아 대학 ‘재앙대비 연구소’ 소장은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확산에 “우리들은 놀라울 정도로 대비하지 못했다”고 경고했다. 실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설치되어있었던 팬데믹 관리팀을 해체해 버렸다. 그때 전문가들은 근시안적 조치라며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2015년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무능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다”며 철저히 대처하지 못한 걸 비판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 후 문 대통령 자신도 코로나19 폭발에 미리 대비하거나 초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무능하고 부실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한국도 놀라울 정도로 준비되지 못했다.

무서운 팬데믹은 2만년 동안 반복되었고 5년 전에도 메르스로 재발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 잊어버리고 또 참혹하게 당하고 만다. 팬데믹은 언제 갑자기 들이닥칠지 모른다. 우리 정부는 물론 전 세계 지도자들은 앞으로 팬데믹을 국제적 주요 의제로 삼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역사를 잊어버린 자는 역사의 보복을 받는다”는 명구를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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