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엄경영 소장

숨은 표 논란은 2002년 12월 제16대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무소속 정몽준 후보 지지율 합계는 40-45% 사이를 오갔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30%대 중후반에 머물렀다. 누가 봐도 이 후보의 명백한 열세였다. 그럼에도 이 후보 캠프는 승리를 자신했다. 11월25일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진 다음에도 승리에 대한 확신은 바뀌지 않았다. 10% 내외의 숨은 표가 있다는 주장이 근거였다. 숨은 표를 두고 숱한 논란을 겪었다. 숨은 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입증할 수 없었다. 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해 6월 치러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호남 3곳과 충남을 제외하고 전국의 광역단체장을 석권했다. 여론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접전을 펼칠 것으로 보았다. 개표 과정에서 숨은 표가 대거 쏟아져 나왔다. 숨은 표의 강렬한 기억 탓에 이 후보 캠프는 여론조사의 열세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개표 결과 이 후보는 2.3%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숨은 표 때문인지 이 후보의 득표율은 여론조사 지지율보다 높아졌지만 전세 역전은 없었다.

숨은표가 2002년 세상에 나온 이래로 선거 때마다 논란은 되풀이되고 있다.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열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크게 승리했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 속에 치러진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불리한 전세를 뒤집고 야당과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의 일방적 승리가 예상됐지만 결과는 달랐다. 천안함 폭침으로 안보정국이 조성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선거 전 전쟁기념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층이 대거 투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한나라당은 크게 졌다.

숨은표 영향력이 미미한 경우도 있다. 진영 간 대립이 격화하거나 일대일 구도로 치러지는 경우가 그렇다. 대선은 총선, 지방선거와 다르다. 대선은 보수, 진보, 지역, 세대가 총동원된 진영 대립으로 치닫기 일쑤다. 투표율도 70% 전후로 총선, 지방선거보다 20% 정도 높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선은 숨은표가 끼어들 틈새가 크지 않다. 과거 대선은 공식선거운동 이전 여론조사와 최종 결과가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살펴본 2002년 대선, 2007년 대선, 2012년 대선에서도 숨은표는 나타나지 않았다.

통합당은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에도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황교안 대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과반의석을 확신하고 있다. 박형준 선대위원장도 10%포인트 정도 뒤지는 지역구는 대부분 경합이라고 말했다. 즉 10% 내외의 숨은표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통합당은 지역구에서 130석 내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한국당 의석까지 합치면 원내 1당도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숨은표는 실제 숨어 있는 표는 아니다. 숨은표는 범보수 성향 중고령 유권자의 높은 투표율과 범진보 성향 젊은층의 낮은 투표율 편차에서 발생한다. 60대 이상은 통합당 지지 성향을 보인다. 이들은 전체 유권자의 27.3%를 차지한다. 어느 때보다 많은 규모다.

문제는 50대다. 전체 유권자의 20%에 달하는 50대는 과거 범보수 지지 성향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지금은 범진보 성향이 더 강해졌다. 50대는 386세대 유입으로 젊어졌다. 촛불을 거치면서 진보색도 짙어졌다. 50대가 대거 통합당 지지로 선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 이번 총선은 진영간 대립과 민주당 대 통합당 일대일 구도 치러지고 있다. 50대가 빠진 숨은표 위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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