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엄경영 소장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들어선 지 꼬박 한 달이 흘렀다. 당초 김 비대위 체제는 임기, 권한을 놓고 상당한 이견이 있었다. 보수 재건에 대한 절박감, 대안 부재 탓에 내년 4월 재보궐까지 임기로 출범했다. 김 비대위 체제는 출범 후 기본소득 이슈화, 약자 동행론 등 과감한 좌클릭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또 김 위원장은 당내 대선주자들을 평가절하하고 외부수혈을 거론하는 등 당내 경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김 비대위 체제 출발은 그다지 산뜻하지 못하다. 6월 4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통합당 지지율은 20%를 나타냈다(자체, 23~25일 1001명 대상,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p, 자세한 개요는 한국갤럽·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전주보다 1%p 올랐지만 총선 수준(4월 3주 25%)에는 상당히 미치지 못했다. 또 민주당 지지율의 절반에 그쳤다.

민주당 지지율은 각종 악재 속에서도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6월 4주 한국갤럽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전주보다 2%p 하락한 41%이다. 이는 총선 수준(4월 3주 41%)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코로나19 재확산·정의연 논란·북한 남북연락사무소 폭파·국회 파행… 최근 민주당 쪽으로 온갖 악재가 이어졌다. 민주당 악재는 통합당엔 곧 호재나 다름없다. 민주당은 겹 악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반면 통합당은 반사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한 것이다.

과거 보수정당(통합당 전신)은 능력 있는 세력으로 인식됐다. 도덕성, 청렴도에선 다소 박한 평가를 받았지만 경제, 외교, 애국 등 국정운영 면에선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범 진보정당(민주당 전신)은 무능한 정치 세력으로 여겨지곤 했다. 도덕성, 청렴도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능력 부족이란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보수정당이 주류를 상징했다면 범 진보정당은 늘 비주류 취급을 받았다.

지금 통합당은 능력이 있는 주류인가? 이런 질문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보다는 통합당은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사람, 그들의 언어, 이미지, 정책에서 꼰대를 생각나게 한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젊고 역동적이다. 도덕성에선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그들 스스로 주류를 만들어가고 있다. 통합당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미래지향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 변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 가치, 철학, 세계관이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시대는 빠르게 변한다. 2,30년 전에 진보적이던 젊은 층은 이제 4,50대 중년이 됐다. 지금의 2030도 60대 이상 고령층보다 4050에 더 친화적이다. 통합당은 정책 좌클릭 이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 한쪽에선 기본소득을 얘기하지만 또 한쪽에선 국회를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다. 청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2,30대와 소통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김 비대위 체제는 시간도 촉박하다. 내년 4월 초까지 남은 기간은 9개월이다. 그러나 실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이보다 훨씬 짧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7∼8월은 일종의 휴식기간이다. 9월부터는 정기국회가 개막된다. 국정감사와 예산·법안 심사가 핫이슈로 떠오르곤 한다. 바로 이어지는 연말연초도 국민들의 주목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2월부터는 당권경쟁이 전개된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를, 통합당을 환자에 비유한 바 있다. 환자의 치료는 올바른 진단에서 시작된다. 진단은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짧은 임기, 성과에 집착하다 진단마저 그르칠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것을 정확히 내놓는 것만으로도 김 비대위 체제는 충분히 평가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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