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자가 입는 피해와 고통을 감안한다면 성범죄 가해자에 대해서 엄중한 처벌을 내릴 필요성이 있다. 그런데 아주 간혹, 실제 성범죄 피해를 입지 않았음에도 허위 고소를 하여 무고를 하는 사례가 있다.

 성범죄로 처벌을 받게 될 경우 신상정보등록, 취업제한 등 가해자가 입게 될 법적 불이익은 실로 막대하다. 뿐만 아니라 사실과 달리 유죄가 선고되어 ‘성범죄자’로 낙인이 찍히게 될 때, 그의 사회적 지위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들에게 미치는 고통도 클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형사절차상 단 한명의 무고한 성범죄자도 배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할 당위성이 있다.

 이를 위해 일단 생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성폭력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허위로 고소를 한 고소인을 처벌하는 것이고, 형법상 이를 무고죄라고 한다. 그런데 무고죄의 적용을 강화 할 경우, 실제 피해를 입은 성폭력범죄 피해자가 고소를 주저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 특히, 성범죄 피해자가 범죄를 입었다는 사실에 대한 물증이 없어 범죄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 무고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심리적 불안감까지 더해진다면 그 피해자가 고소에 이르는 결단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형사절차는 피고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고 결코 억울한 피고인을 만들어서는 안되지만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의 인권을 외면하여서도 안된다.

 성범죄 고소사건과 무고죄 처벌 사이의 관계는 이와 같이 딜레마적 현실이 존재하는 한편,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른 성범죄에 대한 인식 변화, 인권의식이 높아짐에 따른 여성의 지위에 대한 격상과도 관련이 있어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문제상황에 대해 우리나라 검찰과 법원은 어떤 방식으로 조율하여 법률을 적용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검찰은, 기본적으로 ‘성폭력 고소사건에 대한 무고죄 인지수사(무고 피해자가 무고죄로 고소하지 않더라도 수사기관이 스스로 판단하여 수사하는 것)는 최대한 신중을 기하여 검토한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이 신고를 주저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며,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무고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라는 사회적 요청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객관적인 물적 증거 등에 의해 허위사실을 신고했음이 명백한 경우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검찰은 무고죄의 고소장을 접수하더라도, 성폭력사건 수사가 사실상 종결될 때까지 피의자 소환을 비롯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법원은 어떨까. 이에 대해서는 실제 재판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이 사건은 여성이 남성과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고도, 강간을 당했다고 허위 고소하여 무고죄로 기소된 사안인데 담당 검사는 후배위 성관계 및 구강성교(여성이 거부할 경우 불가능한 행위)가 있었던 점, 여성이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점, 여성이 강간을 당한 피해자로 보기 어려운 행동을 한 점(성관계 직후 홈쇼핑을 하고 친구에게 장난치는 메시지 전송), 여성이 전에도 성폭력 피해 고소를 한 적이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여성을 무고 혐의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여성이 명시적으로 성행위에 동의하지 않은 점, 여성과 남성의 나이차, 성관계 전후 사정, 사건 다음날 둘이 주고받은 대화를 종합하여, 남성이 여성의 제대로 된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성적 행위를 한 것으로 보았, 여성의 신고가 다소 과장이 있었더라도, 허위사실을 신고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즉, 여성이 강간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성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무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의 위와 같은 판단은 간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폭행/협박이 없었다는 사실은 강간이 아니라고 보는 근거는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를 두고 바로 무고로 처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 판례에서 법원은 비동의 간음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무고죄 판단의 고려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이 법원과 검찰은 무고에 대한 별도의 판단기준과 법리를 마련함으로서 성범죄 고소사건과 무고죄 처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균형을 도모하고 있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얼핏 생각해 보았을 때, 피해자가 성범죄로 고소를 하였으나, 가해자가 무죄로 밝혀진다면 피해자는 무고죄로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가해자 무죄 = 피해자 무고’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성범죄가 급격히 증가한 원인에는, 범죄 자체의 증가와 더불어 사회적으로 상당한 인식 변화도 있었을 것이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보호법익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고,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사법부 또한 이러한 요청을 일부 반영하여 제도와 관행을 많이 바꾸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나, 그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계하여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민경철 변호사 이력>

[학력]
▲서울 성보 고등학교 졸업 (1988)
▲서울 대학교 경영학과 졸업(1994)
▲사법연수원 수료(제31기)(1999)

[주요경력]
▲수원지방검찰청 검사(2002)
▲광주지방검찰청 검사(2004)
▲대전지검 홍성지청 검사(2005)
▲인천지방검찰청 검사(2006)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 (2008)
▲식품의약품 안전청 검사(2012)
▲대구지방검찰청 검사(2013.8)
▲수원지검 안양지청 검사법무법인 올흔 대표 변호사(2016)
▲법무법인 (유한) 중부로 대표변호사(2016)
▲현)법무법인 동광 대표 변호사

[주요자문이력]
▲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2018)
▲식품의약안전처 행정처분 사전심의위원회 위원(2018)
▲경찰수사연구원 발전바문위원회 전문위원(2018)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위원회 전문위원(2018)
▲인천해양경찰서 시민인권보호단 성폭력전담위원(2020)
▲블루환경교육센터 성범죄 자문변호사(2020.02.01~2023.01.31)
▲경기도 태권도협회 성범죄 자문변호사(2020.04.01~2022.03.31)
▲서울 강동경찰서 성폭력가정폭력 자문변호사(2020.05.07~2021.05.06)

[상훈]
▲검찰총장 표창 2회(2006)
▲대구고검장 표창(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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