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총선 정가 ‘공천 괴담’에 덜덜덜

▲지난 12일 한나라당 당사에서 안강민 공심위원장 등이 공천신청자들과 집단면접을 하고 있다.

4월 9일에 있을 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들이 본격 공천작업에 들어갔다. 유래를 찾기 힘들 만큼 경쟁률이 치열한 한나라당을 비롯, 통합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은 자체 공천심사위원회를 통해 엄격한 심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현역의원들의 대규모 물갈이가 예상되는 가운데 당내 거물인사들의 낙마설도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지역구 공천라이벌을 물 먹이기 위한 네거티브공방전도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분석이다.

이명박(MB) 대통령 당선인 쪽의 일부 핵심측근들이 ‘공천을 약속’ 하는 등 전횡을 일삼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어 공천괴담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일파만파 번져가는 분위기다.

현역 의원들도 마음 편히 발 뻗고 자기가 쉽지 않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인들조차 공심위의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엔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기 마련이다.

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도 “무척 떨렸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공천라이벌들을 밀어내기 위한 ‘보이지 않는 입’들도 여의도 정가를 여기저기 누비고 다닌다.

상대의 사생활까지 포함된 네거티브 내용들은 그 어느 때보다 낯 뜨겁다. 과거 탈당경력과 부정부패 전력 들추기는 기본이고 확인되지 않은 사적인 루머들까지 나도는 괴담은 하나 둘이 아니다.

돈 문제, 여자문제, 이권개입 등 밑도 끝도 없는 얘기들이 꼬리를 문다. 당사자에만 머물지 않고 가족 등 주변 사람들 잡음까지 ‘괴담 메뉴’에 들어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생존의 법칙이 요즘 정가를 주름잡고 있다.

정권탈환에 성공한 한나라당에선 “내가 진짜 ‘친이(親李)’”란 공방이 지역구마다 벌어지기 일쑤다. 이들은 이 당선인과의 관계를 내세우며 “역차별 할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공심위를 압박했다.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 때 이 당선인의 수행부실장을 맡았다가 초반 공천심사에서 떨어진 길기연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서울 광진구 을)은 “걱정 말고 열심히 하라고 해놓고 초장부터 아웃시키니 황당하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박근혜 전 대표 쪽 인사들도 “친박 의원들 대다수는 공천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내면서도 “정치권에 떠도는 ‘친박 팽 작업’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우리도 칼을 빼들 수밖에 없다”고 긴장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민주당과 통합신당이 합쳐진 통합민주당 역시 공천을 놓고 불꽃 튀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을 비롯, 다양한 그룹들이 ‘생존’을 위한 전쟁에 들어갔다. 수도권과 호남지역의 경우 그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어제는 격려, 오늘은 팽”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양당 공천신청자들은 안강민·박재승 두 공심위원장만 바라보는 처지가 됐다.

한나라당 안 심사위원장은 1173명의 공천 신청자 중 900여명을 ‘쳐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공천결과에 따라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원수로 돌변할 수도 있다.

공천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지역구별 집단면접을 했지만 받는 쪽만큼 공심위 부담은 적지 않다. 음으로, 양으로 들어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은 소화해내기 힘들 정도로 분량이 많다.

“이 당선인 쪽 핵심인사가 공천을 약속했다”며 막무가내로 덤비는 신청자들도 없지 않다.

안 위원장은 “당이 어려운 일만 맡긴다”고 고충을 털어놓으며 “당선가능성과 자질, 인품을 두루 평가하겠다”고 평가기준을 밝혔다.

그는 또 “애국심이나 국가관, 뚜렷한 소신도 없이 국회의원을 왜 하는지 의심스러운 분이 많았다”면서 대폭 물갈이를 시사하기도 해 공천신청자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공심위, 대형사고 칠 것”

한나라당보다 다소 늦게 공천작업에 들어간 통합민주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공천특검’을 천명한 박 위원장의 말 한 마디에 공천신청자들 표정이 수시로 바뀐다. 박 위원장은 유신시절 중앙정보부의 민원청탁을 거절했다 찍혀 제주지법
으로 쫓겨날 만큼 강골로 정평 나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시절 활동도 그의 권위를 높여주는 요소다.

이로 인해 손학규 대표 쪽 뿐 아니라 당내 최대그룹을 자랑하는 정동영 전 장관 쪽도 박 위원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정치권에 친분이 별로 없는 박 위원장이기에 접근조차도 쉽지 않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런 이유로 당 안팎에선 “정치생리를 잘 모르는 박위원장이 대형
사고를 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박 위원장은 “공천탈락자들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겠지만 행운이 될 수도 있다”고 쇄신의지를 분명히 하며 “물갈이 폭은 30%가 될 수도, 50%나 10%가 될 수
도 있는데 국민의 뜻이 기준”이라고 엄포를 놨다.

당 안에선 박위원장이 자체 공천기준 몇 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며 이를 알아내기 위한 정보전쟁도 한창이다.

손 대표 등이 언급했던 ‘호남 물갈이론’이 최대 관심사다. 김대중 전 대통령 쪽의 박지원 비서실장과 김홍업 의원 등의 생존 여부가 공심위의 가장 큰 골치 거리가 될 전망이다.

박 위원장은 “기준이 마련되면 절대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며 “당이 합쳐진 만큼 따로 노는 것은 옳지 않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영남세 VS 충청세 ‘신경전’

국민중심당(약칭 국중당)과 합당절차를 끝낸 이회창 총재의 자유선진당도 본격적인 총선체제에 들어갔지만 ‘공천괴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곽성문 총선 기획단장이 중심이 된 기획단은 첫 회의에서 부정부패 연루자는 물론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최종심에서 문제가 된 경우엔 공천신청을 할 수 없도록 못박았다. 한나라당을 겨냥한 듯 금고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도 자격을 주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 통합신당을 비롯해 국민중심당 출신 인사들까지 한데 엉킨 터라 내부정리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당이 최대 승부처로 꼽는 충청권 공천과 비례대표 후보자리를 놓고 벌써부터 물밑 신경전이 시작됐다. 이회창 총재의 충남 예산·홍성 출마설을 놓고 심대평 대
표를 제외한 국중당 출신 인사들이 물 먹을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창당작업을 책임졌던 강삼재 최고위원의 영남세와 심 대표의 국중당 출신들이 결국엔 공천경쟁을 벌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하며 “조순형 의원 등 민주당 출신 인사들까지 생각하면 정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괴담’이 ‘집단행동’으로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공천괴담은 점차 집단행동과 노골적인 불만표출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공천결과가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떨어진 세력들의 반발 또한 다양하게 터져 나오고 있다.

탈당 뒤 무소속으로 출마했다는 이유로 발목이 잡힌 박종웅 전 의원 쪽 사람들은 한나라당 당사에서 농성을 펼쳤고 송훈석 전 의원은 “(공심위의) 만행에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분노를 나타냈다.

‘금고형 이하’란 자격기준에 미달한 서상목 전 의원은 공천심사 진행중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서를 법원에 냈다.

4배수에 들지 못한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 등 6명은 공심위 결정을 ‘계파공천’으로 규정했고 사무처 당직자들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통합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다른 당도 시기만 다소 늦어질 뿐 상황은 엇비슷하다.

각 당의 공심위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큰 폭의 변화를 추진하는 만큼 현역의원들과 기존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들의 위기감이 가장 높다.

“참신한 외부인사들이 영입된 경우는 대부분 공천심사를 통과할 것”이란 얘기가 종종 들리기 때문이다.

지금 지위와 상관없이 여론조사결과에 따라 모든 게 갈릴 것이란 설도 분분하다.

늦겨울 여의도정가를 들썩이고 있는 ‘공천괴담’이 4월 총선판도를 어디로 돌려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마타도어로 지역정가 들썩

“여론조사 1위 A씨, 물갈이 대상 B씨”

공천괴담으로 가장 먼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한나라당이다.

정권탈환에 성공했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쪽과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의 힘겨루기가 현재진행형이어서 긴장감은 여전히 높다. 여차하면 양쪽이 맞부딪힐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중앙당이 지난 1월 각 시·도당에 공문을 보내 “‘공천을 내락받았다’고 소문을 내는 등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릴 경우 곧바로 보고해달라”고 주문한 것도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명박 당선인의 측근으로부터 공천보장을 약속받았다” “술자리에서 ‘걱정 말라’고 격려해줬다”는 식의 ‘내락설’이 대부분이다.

친박 진영 인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음모론’을 주장해 왔다.

한나라당 세가 강한 영남권은 더욱 치열하다. 출처가 불분명한 여론조사결과가 나도는가 하면 “누구는 공기업으로 가고, 누구는 입각하기 때문에 이번엔 누구를 밀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박 전 대표를 제외한 친박 의원들의 지역구에선 “물갈이 대상 0순위”란 루머가 약속이나 한 듯이 나돌아 다닌다.

공천경쟁후보를 겨냥한 네거티브 공세도 여전하다. 과거 부패전력 및 당적변경 등을 비롯 재산, 남녀문제에 이르기까지 점차 농도를 더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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