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통상 부동산 거래를 할 때 본인이 얼마에 팔아 달라고 하는 걸 남자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청와대 김조원 민정수석이 서울의 아파트를 기존 실거래 최고가격보다 약 2억 원 이상 높게 매물로 내놨다는 보도에 대한 관계자의 설명이 도마에 올랐다. 

“청와대에는 불리하면 아내 핑계 매뉴얼이라도 있냐?”, “문재인 정부 남자들은 참 비겁하다.”라는 정치권의 조롱과 비판이 이어지더니, 급기야 최근 부동산 문제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지고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과 직속 5개 수석비서관 전원의 사퇴 표명으로까지 이어졌다.

최근 들어 수많은 ‘아내 탓’의 끝판왕은 누가 뭐래도 흑석동 상가 건물 매입 논란이 일자 아내의 결정이었다고 책임을 돌렸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일 것이다. 부동산 투기 여론에 밀려 사퇴한 김의겸 대변인은 ‘사퇴의 변’에서 부동산 투기에 대한 사과는 없고, “아내가 저와 상의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제가 알았을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변명했다. 또한, 김 전 대변인이 문제의 흑석동 건물을 매입하기 하루 전, 그의 친동생도 인근에 다른 재개발 건물을 매입한 것으로 확인되자 이번에는 “제수씨 권유였다.”라는 항변으로 ‘최고등급 철면피’라는 다른 정당의 논평을 얻기까지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사모펀드 투자가 문제가 되자 “재산 관리는 아내가 전담해 자신은 몰랐다.”라는 해명으로 비판을 사기도 했고, 각종 SNS 상에 “내조는 조국의 아내처럼”이라는 패러디 글이 자조 섞인 패러디의 패러디를 양산하며 유행하기도 했다.

한편, 김의겸 대변인도 “이 또한 다 제 탓”이라며 “내 집 마련에 대한 남편의 무능과 게으름, 집을 살 절호의 기회에 매번 반복되는 ‘결정 장애’에 아내가 질려 있었던 것”이라고 제 탓을 덧붙여 해명하려 했다. 또한, 조국 장관은 자택 압수수색을 하던 검사와 통화한 것에 대해 “가장으로서 불안에 떨고 있는 아내의 남편으로서 호소했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연락을 한 것”이라고 온정적 가장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해명하려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그러나 치졸하다는 딱지를 떼기에는 둘 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물론, ‘아내 탓’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주식’ 문제로 시끄러울 때, 이미선 후보자는 “자신은 재판 업무에 매진하면서 재산 문제는 전적으로 남편에게 맡겼다. 남편이 종목과 수량을 다 선정해서 제 명의로 거래했다.”고 답변해서 소위 ‘남편 탓’ 논란을 자초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아내 탓’이 많은 것에 대해 오래도록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가부장주의’를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드라마 ‘SKY 캐슬’에서 보듯이 양육과 경제 문제는 아내와 여성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남편과 남성들은 사회적인 참여와 공적인 일에만 전념해야 된다는 식의 가부장주의적 이분법 태도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쯤 되니 이 땅의 아내들이 긴장할 차례인가 보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동반자가 죄 없는 아내를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순진하고 고귀하게 바깥일만 하는 분들이 유사시 아내를 ‘복부인’이나 ‘투기꾼’으로 내몰 수도 있다면 이 얼마나 황망한 일인가.

이 대목에서 확연히 대비되는 장면이 생각난다. 2002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장인이 좌익이라는 이유로 아내를 버려야 하느냐. 여러분이 판단해 달라”며 ‘아내 탓’을 거부한 노무현 대통령이다. ‘기득권 타파에 대한 도전’과 ‘원칙 있는 패배’를 강조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아내 탓’ 아닌 자신의 부덕을 탓했고, 지금 ‘아내 탓’을 하는 분들에게는 살아 있는 영웅 아니던가.

남편들이여, 과욕과 위선에 눈이 멀어 치사하게 ‘아내 탓’을 했다는 말을 들어도 지금처럼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마시라. “자기 부동산 하나 마음대로 못해 아내 핑계 대는 사람은 국정을 맡을 자격도 없다.”는 비난쯤엔 여전히 눈 하나 깜짝하지도 마시라. 

잠시의 불명예를 담보로 “가격을 높게 불러 안 팔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청와대에 ‘의문의 1패’를 안겨주는 쾌감도 있을 것이고, 그 좋아하는 강남 사랑을 굳건히 실천할 수도 있다. 게다가 덤으로 투기 통장 잔고가 넉넉해지는 선물도 얻지 않는가.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