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박상천 공동대표


‘호랑이가 없는 굴에서는 여우가 왕’이라는 속담이 있다. 최근 이 같은 속담이 걸맞은 정당이 있다. 수장을 잃은 통합민주당이다. 당권을 놓고 모두가 여우를 꿈꾸고 있다. 계파 간, 세대 간, 노선 간 뿔뿔이 흩어져 각기 딴 살림을 차릴 궁리에 열중하는 모습들이 포착되고 있다. 팽팽했던 힘의 균형이 빠진 블랙홀의 현상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따로국밥처럼 각자의 노선을 걷다가 분열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게 나오고 있다. 갈 길 먼 민주당호에 올라탄 너무 많은 뱃사공. 제자리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일까. 민주당 내 몰래 짝짓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계파를 형성하고 있는지 베일을 벗겨본다.

이번 18대 총선 이후 민주당 내 전통적 동교동계는 종말을 선언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계와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계, 재야 386측은 세력이 약화됐다. 이에 민주당은 새로운 당선자를 중심으로 계파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구심점도 없고 당선자들의 성향이 다양해 당선자 워크숍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총선패배 이후 차기 당 대표 문제와 제1야당의 정체성 등 고민하는 모임은 잇따르고 있지만, 결국 이들은 새로운 계파의 족보를 이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도부는 지도부, 의원은 의원대로

가장 활발한 물밑 접촉을 하고 있는 곳은 지역별계파이다. 지난 15일 유인태, 원혜영, 최재성 의원 등 서울 수도권 의원들이, 16일에는 김종률 오제세 홍재형 등 충북 의원들이, 18일에는 김현미, 민병두, 우원식, 이목희 등 수도권 낙선 의원들이 따로 만났다. 또 지난 20일에도 경기 지역 당선자 모임에서 김부겸, 정장선 의원 등 당선자 10여명이, 25일에는 서울 경기 지역 386모임에 신계륜 전의원, 임종석, 오영식 의원들이 만났다. 이들은 각기 지역을 바탕으로 한 모임이었다.

이와 더불어 노선을 바탕으로 한 모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강기정, 서갑원, 송영길, 최재성 등 소장파 의원 10여명이 ‘탈(脫)이념-민생 우선을 내걸고 새로운 진보로 거듭나기 위한 모임인 실사구실 노선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전병헌 의원은 ‘생활중심 정치모임’을 꾸려 민생정치에 걸 맞는 정책들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계획이다.

정장선 의원도 자원·에너지 연구모임을 만들어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식량 및 에너지 자원 문제 해결 방안을 집중 탐구하기로 했다. 김재윤 의원은 노인층 지원을 위한 모임을 갖는다.

또 오는 6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주자와 원내대표 후보군간 전략적 제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호남 출신의 정세균 의원과 수도권 출신의 원혜영 의원, 추미애 의원이 전북출신의 이강래 의원과 중도개혁통합신당의 강봉균 의원, 충청권의 박병석 의원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제기 되고 있다.

또 천정배 의원이 충북의 홍재형 의원과 정치적 제휴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정가에서는 민주당이 초선의원 중진의원들의 계파싸움뿐만 아니라 당 지도부와 원내 지도부의 짝짓기까지 나돌면서 당권을 두고 한차례 피할 수 없는 홍역을 앓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대해 당내뿐만 아니라 외부 인사들의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6월 전대가 새판짜기 시금석

또한 민주당내에서는 옛 대통합민주신당파와 옛 민주당파간의 계파 지분 다툼도 심각한 문제다. 지난 최고위원회의에서 차기 전대에 앞서 매듭지어져야 할 지역위원장 및 대의원 선출방식 등을 논의했지만 양측의 의견차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인사는 “멸망하는 곳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며 “문제는 당의 색깔이나 노선이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이해관계를 따져 자신의 세를 불려 보겠다는 정치적 교미가 문제다”고 말했다. 이어 “이같은 세력 다툼이 이어질 경우 당의 안정적 화합
은 커녕 민주당의 전통적 야당의 색깔마저도 잃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현재 북극과 남극의 지점을 알리는 나침반의 중심 극을 모두 잃어버렸다. 서로가 양극의 중심을 차지하겠다고 나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나침반처럼 갈팡질팡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민주당식의 헤쳐모여는 성공할 수 있을까. 6월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의 새판짜기가 정가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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