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호주 구상’ 통해 최종담판 벌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낮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오찬 회동을 갖고 있다.

‘침묵의 마술사’ 박근혜 전 대표가 한국을 떠났다. ‘5.10 청와대 오찬 회동’ 다음날, 호주와 뉴질랜드에 10일간 머물면서 향후 정국의 그림을 그린다. 5.10회동은 공개된 내용보다 훨씬 강도 높은 ‘물밑 거래설’이 파다하다. 이명박 대통령(MB)은 각종 악재와 지지율 20%중반 추락이란 최악의 국면에서 친정체제 조기구축이란 강수를 던지느냐? 박 전 대표와의 ‘동침’이냐? 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 이상득 부의장과 정두언 의원 등은 지난 7일 긴급 회동이후 후자를 권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역시 친박 복당과 검찰수사란 ‘아킬레스건’이 있기에 MB의 제안을 뿌리치긴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궁극적 목표는 차기 대권이다. 아무리 던져진 과일이 달콤하다 하더라도 이러한 행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극단의 결심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박 전 대표는 향후 행보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MB와 협력할 것인가? 국정을 분담할 것인가? 당을 맡을 것인가? 아니면…? <5.10 청와대 회동>의 후폭풍으로 향후 정국을 가늠할 박 전 대표의 ‘호주 구상’ 전모를 파헤친다.

지난 9일 CBS 여론조사결과 MB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25.4%로 추락했다. 취임 초 57.3%가 두 달 만에 반 토막 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 지지율(27.9%)보다도 낮은 수치다.

한나라당의 지지율도 26.3%로 하락해, 통합민주당(25.2%)과 오차범위 내에서 경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습능력 뛰어난’ MB의 해법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그간 청와대 인사 병폐 등으로 쌓인 공분에 ‘쇠고기 파동’까지 겹치면서 지지율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탄식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백만명을 돌파해 버린 인터넷 탄핵서명 운동과 촛불시위 역시 집권 초기 불길한 징조를 보여준다. “사이버 공간에서 우린 이미 탄핵을 당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인터넷 ‘탄핵 서명돌풍’앞에 망연자실해하며 내던진 말이다. 그는 “대선승리 후 보수세력은 인터넷에서 급격히 위축됐다. 인수위 시절부터 수차례 경고음을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며 전략의 부재를 지적했다.

MB는 박 전 대표와의 5.10 청와대 회동 이전까지 만 해도 복잡한 국내 정치현안과 관련, “당에서 알아서하라”면서 정치에서는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국정 지지율 20%중반대 하락이란 집권 초기 초유의 상황에 직면하자 결국 MB는 박 전 대표에게 ‘SOS 구조신호’를 보냈다.

여권 관계자는 “학습능력이 뛰어난 MB가 현재 시스템으로는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강도 높은 밀담이 오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5.10청와대 회동에서 두 사람은 탈당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 문제를 비롯, 쇠고기 파동 등 국정현안 전반에 걸쳐 폭넓게 논의했다.

복당 인사의 범위와 복당의 시기 등과 관련한 저울질이 남았지만 복당문제에 대한 윤곽은 잡힌 셈이다. 두 사람은 오는 22일 한나라당 원내 대표와 정책위 의장 선출을 비롯한 향후 당권 등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관계자는 "한나라당 당직이나 라인업을 짤 때 박 전 대표와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청와대에서 일방적으로 하는 것은 좋지 않고 당청이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번 회동에 대해 분석했다.

<일요서울>은 이미 지난 2일 이상득 부의장측이 박 전 대표 측과 접촉을 통해 MB에게 ‘박과의 화해’를 권고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부의장은 특히 지난 7일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정두언 의원과 주호영 의원 등 소장파 핵심들과 긴급 회동을 갖고 ‘5.10 청와대 회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두언 의원은 이 회동직후 ‘박근혜 대표론’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박 전 대표가 이같은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을 현재로선 예단키 어렵다. 특히 박 전 대표로선 집권초기 대표를 맡는 것이 여러모로 실리가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차기 대권 도전 플랜 차원에서는 시기적으로 유리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복당문제도 당권을 맡아서 풀면 상황이 틀려진다. 친박 관계자는 이와 관련 “MB가 박 전 대표에게 줄 최종선물은 차기 대권보장이다. 나머지는 다 부수적일 뿐”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5.10 청와대 회동에서 여유가 있어진 쪽은 MB다. 박 전 대표가 당권을 맡게 되면 후련한 입장이 된다. 만약 복당 문제 등 현안이 부드럽게 풀린다면 이 대통령으로선 든든한 우군을 얻게 된다. 향후 각종 정책 추진에서 박 전 대표의 조력을 받을 수 있어 국정운영이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박 전 대표는 ‘고민 중’이다. 10일간의 호주 외유를 통해 향후 행보를 결정하는 정국구상을 마쳐야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귀국 직후인 22일 당에서는 원내대표 선출이 있고, 원구성에 들어가기 전 어떤 식으로든 행보를 결정해야한다. 친박계 허태열 의원은 이와 관련 “원 구성 전이 데드라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박근혜 ‘호주구상’ 한계와 파괴력

만약 MB가 박 전 대표와의 물밑 거래에서 당 운영의 독립성과 권한 등을 보장했다면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설 수 있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또 박 전 대표가 MB와 주류 측의 구성안을 거부하고 직접 당 대표 출마를 결심할 경우, 당권 경쟁은 거대한 파워게임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만약 ‘5.10청와대 회동’에서 공동정부 운영과 관련한 밀담이 오갔고 박 전 대표가 이를 받아들인다는 가설이다. 박 전 대표는 야당시절이던 2005년 여름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연정 제안’을 받은 바 있다.

MB에 대해 직격탄을 쏘아대던 박 전 대표는 양자회동이 언론에 알려지던 전날 “사심 없는 마음으로 나랏일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정권 출범기에 (박 전 대표에게) 총리직 제안을 놓고 고민했다”고 밝혔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박 전 대표가 ‘5.10청와대 회동’을 부정하고 야당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정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회오리 속으로 빠져든다. 당장 18대 국회 의석분포가 여소야대로 재편되면서 153석이라는 한나라당의 턱걸이 과반은 무너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거 국회와의 갈등으로 국정운영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경험한 바 있다.

결국 박 전 대표의 <호주구상>에 따라 향후 정치 지형이 결정될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박 전 대표의 귀국직후인 오는 22일 한나라당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경선에서 보여줄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날 선출될 ‘원내 투톱’이 정무기능의 핵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08일만에 만난 MB-박근혜

박근혜 전 대표와 MB의 마지막 만남은 MB의 취임전인 1월 23일로 박 전 대표가 중국 특사 방문 인사 차 당선인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 두 사람은 국정협력을 약속했지만 2월 말부터 불거진 표적공천 논란으로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박 전 대표가 3월 25일 탈당한 측근들의 복당문제를 제기하면서 공천과 관련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MB에 대한 서운함을 표시하면서 갈등은 절정에 달했다.

MB도 총선 기간 중 당 후보들에 대한 지원유세를 하지 않고 당 밖의 친박 인사들을 우회적으로 지원해 온 박 전 대표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4.9총선에서의 친박 돌풍이후 정국 안정을 위한 ‘양자 회동’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잠시 해빙무드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친박 복당을 놓고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MB의 미국방문 직후로 예견되던 양자 회동은 무산됐다.

박전대표는 당선자 워크숍과 청와대 만찬마저 불참하며 ‘침묵의 행보’를 이어갔다. 이후 박 전 대표는 친박연대 공천비리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되고 당 지도부가 '친박 복당' 문제의 결론을 미루자 지난 6일 "무작정 기다릴 수 없다"며 MB의 결단을 압박했다.

당내에선 박 전 대표가 올 7월 전당대회 당 대표직 출마나 '탈당'까지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도 나왔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 인사파문’에 ‘쇠고기 파동’, ‘인터넷 탄핵 서명’등 각종 악재로 MB에 대한 지지율이 20% 중반대까지 폭락하자 MB는 청와대 정무라인이 아닌 류우익 비서실장을 통해 박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다. MB가 회동을 결심한 데는 측근들의 잇단 제안도 큰 역할을 했다. 강재섭 대표는 지난 2일 청와대 회동에서 두 사람의 만남을 제안했고, 박희태 의원도 비슷한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집권세력의 분열은 결국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두 사람이 모두 힘든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범여권의 위기의식이 두 사람을 한자리에 모으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회동 이전까지만 해도 MB는 ‘친박복당 등의 문제는 당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내 경쟁자는 국내가 아닌 외국 지도자’라며 박 전 대표를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108일만에 청와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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