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지금 전국은 여·야 정치권은 물론 좌파. 우파 재야세력들까지 나서서 친일파 전쟁이 한창이다. 4.15 총선 대승과 윤미향 의원 정의기억연대 파문 이후 '친일파 국립묘지 파묘 추진' '백선엽 장군 현충원 안장 반대' 등 산별적인 '친일파' 공세에 벌이던 여권이 8.15광복절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통합당 친일파' 공세를 시작했다. 여권이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부동산 실정으로 민심 이반이 심각해지자 다시 '반일 프레임'을 들고 나와 반격을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이승만 친일파'로 직격탄을 날리고 "초대 육군 참모총장부터 무려 21대까지 일제에 빌붙어, 독립군을 토벌하던 자가 육군 참모총장이 됐다"면서 국군을 친일파 군대라고 비난했다. 안익태의 친일행각을 들어 애국가를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며 비난했고 이에 동조하는 단체들은 애국가 폐지를 주장했다.

야권은 당장 난리가 났다. 미래통합당은 "국민 이간질 매국행위' '깜냥 안 되는 광복회장 망나니짓' '반일 장사' '김원웅 파직' '증오의 굿판' 등 날카롭게 반격했다. 이에 김원웅 회장과 여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찔리는 것 있냐' '친일비호세력 스스로 인정' '웬 호들갑' '친일파 대변자' '흥분하는 토착왜구' 등 맞받아치면 친일파 전쟁을 이어나갔다.

청와대와 김원웅 회장이 사전에 공모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친일파전쟁의 의도는 분명하다. 김원웅 회장은 “(통합당 등이) 오히려 ‘토착왜구’ 함정에 스스로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함정은 '짐승 따위를 잡기 위한…….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나 남을 해치기 위한 계략'을 가리킨다. 김원웅 회장 말대로 이번 8.15 친일파 전쟁 촉발은 현 여권이 야권, 통합당과 우파세력들을 잡기 위해, 해치기 위해  고의적으로 파 놓은 '함정'이었다. 그리고 통합당과 우파는 보기 좋게, 그들의 의도대로 푹 빠졌다. 

물고기 아이큐가 0.3 이라고 한다. 그래서 동료 물고기가 잡혀가는 것을 보면서도 또 미끼를 문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정치인 아이큐도 0.3이라고 한다. 동료 의원들이 각종 비리로 감옥에 가고 정치인생을 끝내는 것을 보면서도 또 저지른다는 것이다.

지금 통합당과 우파진영이 '친일파 전쟁'에 대하는 자세를 보면 물고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현 여권의 친일 프레임에 걸려 당한 적이 한두 번도 아닌데도, '함정'인 것이 뻔한데도 모닥불을 본 불나방처럼 '친일' '이승만' 얘기만 나오면 생각 없이 뛰어든다. 

게다가 더 한심한 것은 우파 진영의 공세 방식이다. 지금 우파진영의 유튜버와 페이스북에서는 민주당 '친일파 조상 찾기'가 한창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아버지가 어쩌고 홍영표 할아버지가 어쩌고 하면서 '민주당은 친일정당'이라고 반격한다.

실제 페이스북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는 한 우파 인사는 "민주당이 친일공세를 펴면 이쪽도 물량공세(친일후손 민주당인사)를 펴야 유야무야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진흙탕 싸움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친일파 후손 정당'을 만들자는 것이다. 붕어 사촌이 따로 없다.  역사의 객관성마저 상실한 주장도 많다. 이들은 이승만 정권은 친일이 아니라 반일 정권이라고 한다. 그 증거로 제시하는 것이 김일성 초기 내각과 이승만 초기 내각의 '친일파' 참여 비율이다.

김일성 초기 내각에는 친일파가 많았고 이승만 초기 내각에는 항일 운동가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요즘 사이버 상에서 날아다니는 초기 내각 표 자체도 객관적이지 못하지만 지금 북한과 비교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초기 내각을 구성할 때는 항일운동 인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반민특위 해산 이후 항일운동가 비율은 10% 이하로 떨어지고 친일경력자들의 비율은 크게 늘어났다. 이승만 정부기간 장관급 국무위원 136명 중 친일경력자가 53명으로 38.9%에 달한다. 이는 지방정부나 경찰, 군인을 제외한 수치다. 세계일보 탐사보도에 따르면 제1공화국  파워엘리트중 45.5%가 친일경력자이고 항일 운동가들은 20%에 불과했다.

민주당과 범여권 진영의 '친일파 프레임'은 결코 국민통합이나 역사바로세우기는 물론 미래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니 통합이 아닌 분열과 갈등을 목표로 한 '친일파 전쟁'은 '악마의 역사편집'증에 불과하다. 미래를 갉아먹는 역사 버러지다. 그러나 통합당과 우파 진영의 대응 방식 역시 옳지 않다. 한 번 실수는 우연이나 운 탓을 할 수 있지만 여러 번 거듭되면 실력이고 한계다. 역사에 대해서는 겸허하고 솔직하게 임해야 한다. 역사를 자기중심적 왜곡(myside bias), 확증편향으로 주장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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