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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뉴시스

한국 사람은 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산다. 학교에서고 직장에서고 잘나고 똑똑해서 하는 일마다 잘하는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질시의 대상이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고 학연, 지연과 같은 연줄 중심으로 조직이 작동하는 한국사회에서 튀는 행동은 환영받지 못한다. 물색없는 모난 돌은 정으로 쪼아서 버릇을 가르쳐 주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러던 한국사회에서 ‘사이다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각광받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짧고 강렬한 말, 듣는 사람 속이 후련해지는 말로 인기를 얻고 영향력을 확장한다. SNS와 유튜브 같은 동영상 플랫폼이 영향력을 넓혀 가면서 세태도 변하고 있다. 이제는 서로가 모난 돌이 되려고 경쟁한다. 정치권도 별 다르지 않아서 묵묵히 의정활동을 이어가는 정치인보다 언론이나 SNS를 통해 튀는 발언을 하는 정치인이 더 각광을 받는 것 같다.

사이다 발언으로 각광받는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있다. 경기도지사직은 중앙정치에서 멀어지고, 일이 많아서 하루 종일 결재 도장만 찍다 대중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게 되는 대권주자의 무덤으로 불렸다. 이인제, 손학규, 김문수에서 보듯 역대 도지사 중에서 대권도전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 하지만, 이 지사는 전임 지사들과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그 원동력은 이 지사 특유의 사이다 발언에 있다.

이 지사는 말하는 데 있어 다른 정치지도자들처럼 곱씹거나 머뭇거리지 않는다. 대중의 구미에 맞는 말을 찾아 적절한 날 것으로 내뱉을 줄 안다. 성남시장 이재명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잡아서”, “박정희 유해 옆으로 보내자”등의 과감한 사이다 발언으로 촛불시위에 나온 시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걸 원동력으로 대권주자 반열에도 올랐다. 사이다 발언이 지금의 이재명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의도에서는 이런 이 지사를 두고 ‘홍칠일삼’이라고 뒷담화를 한다. 이 지사는 홍보가 70%, 일은 30%라는 것이다. 이 지사를 못마땅해 하는 이들은 이 지사가 일할 생각은 안하고 홍보에만 열심이라고 야유한다. 이 지사의 사이다 행정으로 널리 알려진 경기도 계곡의 불법 영업 시설물 철거를 두고도 “하는 일 없이 숟가락만 얹었다”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초자치단체에서 다 해 놓은 일을 자기 치적으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사이다 발언으로 뜬 사람이 이 지사만은 아니다. 이 칼럼이 나갈 시점이면 당대표가 되었을 것이 확실한 이낙연 의원도 총리 시절 사이다 발언으로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국회에 불려 나와 야당 의원들이 정부 정책을 두고 맹공을 퍼부을 때 의연하게 촌철살인의 한마디로 맞서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의원도 자신의 말솜씨로 그리 눈에 띄지 않던 국회의원 이력, 정치인생의 종착지로 보였던 전남도지사에서 대통령 꿈을 꿀 기회를 얻었다.

아침, 저녁으로 페이스북과 유튜브와 신문, 방송 기사를 검색하는 정치인들은 앞으로 더 사이다 발언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대중의 인기와 지지를 먹고사는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를 탓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국민들의 몫이다. 유권자들이 사이다발언의 이면을 읽어야 한다. 사이다 발언에 후련해 하면서도 말이 가벼움을 곁눈질하고 인물의 됨됨이를 저울질할 수 있어야 한다. 난무하는 사이다 발언 속에서 일꾼을 골라내는 것이 유권자의 의무인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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