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정계 실력자가 아니면 현역 국회의원이 낙선하거나 정계은퇴를 하면 대부분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진다. 낙선한 뒤 재도전에 나선 초. 재선 의원들은 '불과 4년인데 그새 이름을 잊어버려 인지도 올리기가 초선 때만큼 어렵다'고 하소연 한다. 그래서 부고란만 빼고 정치인은 좋든 나쁘든 언론에 이름이 나와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잊혀진 정치인은 재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매우 특이한 경우가 있다. 지난 2011년 정계은퇴 선언 이후 당사자는 단 한 번도, 말과 행동으로 '정치'를 시사한 바가 없는데도 10년간 꾸준히 '정치 유망주'로 거론되는 이가 있다. 바로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이다.

정작 정치부 기자들은 관심도 없는데 때만(?) 되면 이런저런 이유로 그의 '테마주' 기사가 경제 증권면을 채우고 시장에서는 주가가 요동친다. 그리고 하루 이틀 지나면 정치면에 기사가 나온다. '정계복귀' '최우선 영입 대상' '00 후보 물망' 등의 소제목을 달고 그의 정계복귀와 관련된 해설과 전망 기사가 쏟아진다. 

그 사이 그의 테마주는 등락을 거듭하며 상한가를 치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 테마주 주가가 떨어지면 그의 복귀나 출마설 뉴스는 사라진다. 그러나 그의 정치 복귀설과 테마주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잠복해 있을 뿐이다. 정치시즌만 시작되면 언제나 끓어오르는 현재형이다.

지난 8월 25일 다시 홍정욱 테마주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홍정욱 회장이 자신의 SNS에  "그간 즐거웠습니다. 항상 깨어 있고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며, 절대 포기하지 마시길. 여러분의 삶을 응원합니다"라는 글을 게재했고 이를 정계복귀와 서울시장 출마 시사로 해석한 누리꾼들은 "홍정욱 서울시장 기다립니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하실 듯" 등의 댓글을 남겼다.

당장 증시는 반응하기 시작했다. '홍정욱 테마주'는 급등했다. 26일 대표적인 홍정욱 테마주인 KNN은 21.58%나 올랐다. 이에 앞서 지난 21일과 24일 5.4%, 4.85%, 25일에는10.8% 급등했다. KNN은 지분 50%를 가진 부산글로벌빌리지의 홍성아 공동 대표가 홍 회장의 누나로 알려지면서 대표적인 ‘홍정욱 테마주’다. 

또 다른 테마주인 고려산업(002140)과 한국프랜지(010100)는 각각 6.16%와 1.23% 오르는 등 연일 급등세를 이어갔다. 남선알미늄은 21일과 24일 8.39%, 1.55%의 상승폭을 기록했다.

홍정욱 테마주가 급등한 이유는 '홍정욱' 말고는 다른 호재가 없다. 이들 테마주들은 그와 인척이거나 그 인척이 또 투자한 업체라는 이유로 급등한 것이다. 필자가 굳이 홍정욱 회장의 테마주 등락을 보면서 그의 정체가, 의도가, 진심이 의심스러워지는 이유는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21대 총선 후보자 영입과 공천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2월  KNN이 갑자기 22.57%나 급등했다. 홍정욱 회장이 서울 종로에 출마할 것이란 '정보'가 증시에 돌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보 확산 이전에 KNN 주가는 출렁거렸다. 지난 4월에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40대 기수론'을 제기하면서 홍정욱 테마주가 뛰었다. 27일 KNN은 전일 대비 23.87%, 고려산업은 20.4%, 한국프랜지는 17.8%나 급등했다.

지난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11일 이후  테마주 중의 하나인 디지털조선은 9일 2380원에서 5일간 계속 올라 37.82%, 3280원까지 올랐다. 8월에는 미래통합당이 박근혜 탄핵 이후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을 추월하자 KNN은 14일 28.05%, 고려산업은 22.38% 급등했다. 2019년 6월에는 황교안 대표의 21대 총선 영입설이 돌면서 홍정욱 테마주는 급등했다. KNN은 10일 247원(27.97%) 급등한 1130원을 기록한 데 이어, 11일에도 16.81% 오른 1320원에 장을 마쳤다. 이틀새 주가가 무려 49.49%나 뛰면서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조국 사태 때도 올랐다. 그 이전에 차기 대선에서 조국 전 장관과 홍정욱 회장이 맞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돌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9월 9일 조국 장관을 임명하자 홍정욱 테마주 고려산업은 2.54%, KNN 7.35%, 디지털조선은 4.08%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에서는 정치테마주,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치인 또는 그의 친. 인척, 참모들을 중심으로 등락을 거듭하는 현상을 보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2012년 1년간 개인투자자들이 정치테마주에 놀아나 1조55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분석도 있다.

홍정욱 회장도 이 같은 부담 때문인지 2019년 7월 8일 SNS에 “저는 정치와 연관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삭제하기도 했다. 지금 또다시 홍정욱 테마주가 들썩거리고 있다. 통합당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이어 홍정욱 회장 출마설까지 돌자 흥행에 도움된다고 보고 은근히 부추기는 분위기다. 필자는 그가 알듯 모를 듯한 애매한 메시지, 시그널로 정치와 국민과 투자자들을 현혹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민은 밀당 대상이 아니다. 정직과 진심만큼 더 큰 정치가 없다. 만약 정치할 생각이 없다면, 홍정욱 회장은 하루라도 빨리 '정치 불가' 입장을 확고히 밝혀 순진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또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홍정욱 회장이 책임 있는 사회적 리더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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