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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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신중한 사람이다. 돌다리도 일단 두들겨 보고 다른 사람 다 건넌 뒤에야 건널 사람이다. 얼마나 신중한 사람이냐는 지난 5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 당시 분향소에서 만난 유가족들과의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분향소에서 만난 유가족들은 이낙연 대표에게(물론 당시는 대표가 아니었다)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친인을 잃고 분통을 터뜨리는 유가족들에게 이 대표는 “현재 관련된 위치에 있지 않다”고만 답했다.

보통의 정치인이라면 울부짖는 유가족들에게 진지한 표정을 하고 저렇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공감하는 척, 뭐라도 다 해줄 것처럼 구는 게 흔하게 예상되는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이대표가 공감능력이 떨어져서 저리 답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대표는 말이든 행동이든 ‘선’을 넘지 않는다. 자신의 선 위치에 충실하고, 권한은 무엇인지, 책임은 어디까지 질 수 있는지도 잘 알고 행동한다.

그런 이 대표가 서울시장, 부산시장 공천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답지 않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쫓기는 심정이 드러나기도 한다. 뜨뜻미지근하기만 하던 이 대표가 대권가도를 둘러싸고 단단히 각오를 세운 것을 읽을 수 있다. 대권 행보에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고 물으면 “당대표 직분에 충실하려고 한다”고 답하던 이 대표가 갑자기 마키아벨리스트에 빙의한 양상이다.

이 대표의 이런 승부수에 여론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지만, 당연히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정당이 공천을 안 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욕을 먹더라도 공천을 하겠다고 결정하고 관련 절차를 밟아가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이 대표는 비로소 당 대표가 어떤 자리인지, 대권주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각한 것이다. 늦었지만 이로 인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의 승부가 더 흥미진진해졌다.

이재명 도지사는 이 문제에 대해 “장사꾼도 신뢰를 유지하려면 손실을 감수한다”면서 무공천을 주장했다가 거둬들인 적이 있다. 포퓰리스트적인 면모를 자주 보이는 이 지사 다운 선택이기에 놀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당내에서 많은 비판을 들어야 했다. 이 지사의 선택에서 보듯 대중들의 감성에 맞춰가려면 공천을 안 하는 게 맞고, 당원들의 요구에 맞추려면 공천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이 문제는 에둘러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사실 이 대표는 더 과감하고 솔직하게 문제를 풀어나갔어야 한다. 왜 더불어민주당이 박원순, 오거돈의 성추문 낙마에도 불구하고 공천을 할 수밖에 없는지 당원에게, 국민에게 설명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양향자 의원이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민주당의 비대위원장이셨어도 아마 같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라고 한 말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현존하는 최고의 마키아벨리스트라고 할 것이다. 권력의 속성에 대해 그보다 잘 알고, 이용할 줄 아는 사람도 드물다. 이 대표가 김종인처럼 될 필요는 없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더 현실적이 될 필요가 있다. 서울시장, 부산시장을 놓치면 차기 대선도 어려워진다. 당장 대통령도 레임덕에 시달릴 가능성이 많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국민의힘에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직을 넘겨주고 싶지 않다. 그게 당원들의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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