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뉴시스
국회의사당, 뉴시스

지금 국회에서는 내년도 정부예산안 심사가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다. 각 상임위를 거쳐 수정되어 올라온 정부예산안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심사하고 있다. 정부가 9월에 예산안을 제출하면 국회에서는 깎을 것은 깎고 더할 것은 더해서 기재부와 협의를 통해 작성된 수정안을 본회의에 올려 통과시키게 된다.

지금 심사 중인 정부예산안 규모가 556조 원인데 어김없이 ‘슈퍼 예산’이라고 불리고 있다. 아마도 ‘Large scale budget(대규모 예산)’보다 크다고 해서 슈퍼 예산일 텐데, 매년 국회가 검토 중인 정부 예산안은 ‘슈퍼 예산’이 아닌 적이 없다. 지난해에도 슈퍼였고, 그 전 해에도 슈퍼였다. 슈퍼라는 영어단어 ‘super’가 다른 뜻이 있는지 찾아봐야 할 지경이다.

언론이나 야당에서 정부예산을 두고 슈퍼 예산이라고 지칭할 때는 주로 지나친 재정지출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재정균형론에 사로잡혀, 혹은 여당이 하는 일은 그저 못마땅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부예산은 슈퍼예산이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재정에서는 단 한 번도 슈퍼예산이 지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시기의 정부 재정을 돌아보면 ‘슈퍼예산’이라는 표현이 현실과 동떨어진 과한 언술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몇 년간의 통합재정수지는 매우 양호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도 꾸준히, 큰 폭으로 개선되어 왔다. 실제 데이터를 두고 살펴보면 정부지출은 적정 규모에서 증가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우리 정부는 슈퍼 예산이 필요한 시기에도 슈퍼 예산을 지출하는 것을 주저했다고 봐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전후에만 봐도 대통령은 확장재정을 하라고 지시했지만, 정부 곳간을 틀어쥐고 있는 기재부는 재정건전성이란 경전에 매달려 확장재정을 거부해 왔다. 여론의 반발까지 더해지자 꼼수를 부려 추경을 편성하는 행태를 보이기까지 했다.

내년 한 해 편성된 정부예산안 556조는 올해 정부예산 513조 원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인 것은 사실이다. 올해 예산보다 8.5% 늘어난 수치이다. 올해 정부예산안도 예산 편성이래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어선 규모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었다. 2019년도보다 9.3% 늘려 편성했었다. 내년도 예산은 지난해 대비 올해 예산안 증가율에 비해서는 늘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모든 나라들이 코로나19 팬더믹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각국이 재정확장 정책을 펴고 있고, IMF조차 각국에 확장재정을 조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대비 증가율에 못 미치는 예산안을 두고 슈퍼 예산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정치적 언술,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국회에서는 예산 시즌이 되면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모든 국회의원들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들어가고 싶어하고, 그 중에서도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 위원이 되기 위해 경쟁한다. 다들 자기 지역 예산을 끼워 넣기 위해 쪽지를 넣고 문자를 보낸다. 슈퍼 예산이라 저주를 퍼부으면서, 슈퍼 예산을 더 크게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웃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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