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나라, 교토 지역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그 한국적 분위기에 놀랄 것이다. 오래된 절의 모습이나 각종 문화재를 깊이 관찰하면 뿌리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내가 두 번째 이 지방을 여행했을 때는 일본의 인기 추리작가 오사와 아리마사라는 사람과 함께였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여러 권이 소개된 ‘신주꾸 상어’ 시리즈로 한창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와 함께 교토 근교 명물의 하나인 기요미스 절에 들렀을 때였다. 그 절로 가는 길은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언덕배기를 한참 올라가야 한다. 언덕길 양쪽에는 도자기 점을 비롯해 각종 기념품 상점이 줄을 지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명찰 입구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땀을 씻으며 한참 만에 드디어 절 문앞에 이르렀다. 이 절은 아주 가파른 산기슭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흔히 있는 절 마당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가파른 언덕에 십여 미터가 넘는 아름드리 목재로 받침을 만든 뒤 그 위에 앞마당 같은 마룻바닥을 만들었기 때문에 절 전체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우리는 절 안으로 들어가 이곳의 명물인 청수를 한 모금씩 마셨다. 청수는 절경 내의 왼쪽 언덕 위에서 가느다란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낙수를 자루가 길게 달린 국자로 받아서 먹는 것이었다.

“이 얼음을 좀 넣어서 마셔 봐요.” 오사와씨가 절 마루에 있는 제빙기에서 얼음 조각을 가지고 왔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절에는 사람들이 별로 눈에 뜨이지 않았다. 낙수대 앞의 높직한 마루 위에만 한 중늙은이가 아까부터 서서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약간 단풍이 들기 시작한 경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가 서 있는 마루 밑은 천 길 낭떠러지 같은 가파른 곳이었다.
우리는 절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돌계단에 함께 앉았다. 그때였다.
“탕!”

분명히 총소리가 고요한 절의 한낮 정적을 갰다. 오사와 씨와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총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가 보았다. 아까 쓸쓸해 보이는 중늙은이가 있던 마루로 올라가 보았다.
“앗! 저 사람이……?”

나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먼 산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오사와 씨가 재빨리 달려가 사나이를 살펴본 뒤 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죽었어. 머리에 총을 맞은 것 같은데….”

곧 일본 경찰이 모여들고 수사가 시작되었다. 그가 피살되었을 때 절의 경내에 있던 관람객은 우리 두 사람뿐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증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나이는 오사카에서 신체 장애인인 딸 하나를 데리고 살아왔는데 최근 직장에서 해고된 뒤 고민해 온 다무라 겐지라는 40대 남자라고 했다. 경찰은 그가 머리에 총을 맞고 죽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서 있는 위치는 사방 어디서도 총을 쏘기 힘든 곳이었다. 마주 보이는 산에서 쏜다면 모르겠는데 그곳은 너무 멀어 어떤 총이라도 사정거리 안에 들지 못했다.

나는 그곳 모양을 이리저리 둘러본 뒤 수사반장을 보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 사람은 자살을 했을지 모릅니다. 오른쪽 관자놀이에 탄환이 들어간 흔적이 있으니까 이 사람의 오른손에 화약반응 테스트를 해 보시지요.”
“이미 해 보았습니다. 화약 반응은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권총이 없지 않습니까? 죽은 사람이 권총을 감출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때였다. 형사 한 사람이 권총을 들고 왔다. “반장님, 이 권총이 저 밑에 있었습니다.” 그가 가리킨 곳은 마루 밑의 까마득한 바닥이었다. 마루에서 권총을 집어 던져야 떨어져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어디 좀 볼까요?” 나는 권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탄창에는 총알 두 발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권총에 5m는 됨직한 끈이 매여 있는 것이었다.
“이 끈은 자르지 않았나요?” 내가 물어보았다. 형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다무라 씨는 이 권총으로 자살한 것입니다.” “말도 안 돼요.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쏜 사람이 어떻게 이것을 저 밑에까지 집어던질 수가 있단 말입니까?”
반장이 웃기는 소리란 듯이 말했다. “이 끈이 그것을 설명합니다. 다무라 씨는 이 끈 끝에 저쪽 제빙기에서 얼음덩이를 꺼내 와서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얼음덩이가 달린 끝을 이 마루 밑으로 드리우고 자살을 했습니다. 총을 쏜 뒤 죽은 다무라씨의 손에 쥐여 있던 권총은 얼음덩이가 달린 줄에 끌려 밑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얼음은 녹고 없으니까 줄만 남았지요.”

내 말을 듣고 있던 오사와 씨가 말했다.
“다무라 씨는 왜 그런 짓을 했지요?”
“보험금 때문일 겁니다. 몸이 성치 못한 딸에게 자기가 죽어 보험금을 타게 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살한 사람에겐 보험금을 주지 않으니까 타살한 것처럼 만든 것이겠지요.”
우리는 씁쓸한 기분으로 기요미스를 내려왔다. 벌써 황혼이 가을 하늘을 물들였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