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지금은 조금 시들어졌지만 한때 ~~맨을 붙이는 말장난이 유행한 적이 있다. 주로 만화나 게임에서 캐릭터나 제목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으나 영화에서도 X맨,  버드맨, 배트맨, 슈퍼맨, 샌드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앤트맨, 에어맨, 킹스맨, 히트맨 등이 있다. 최장수 예능프로인 SBS의 '런닝맨'도 있다.

사회적으로도 상사의 부당한 지시조차 거부하지 못하고 무조건 수용하는 '예스맨', 부인의 재력으로 살아가는 '셔터맨' 등 부정적인 의미로 -맨 시리즈가 있다. 인물과 관련된 요소나 특징에 -맨이라고 붙이는 강의적인 접두어로 빅(big) ~맨을 붙여 사용했는데 영화와 인터넷, 방송에서 앞의 빅을 빼고 -맨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화됐다. 그런 면에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없다맨'이라고 불러도 하등 지장이 없을 듯하다.

김 위원장은 11월 24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야권 연대를 갖다가 거기에 쓸데없는 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현재는 야당에 국민의힘 외에 확고한 야권 세력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 앞서 8일 김 위원장은 야권 신당을 만들자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주장에 대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8일 “관심이 없다. 그것에 대해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일축한 바 있다.

 내년 서울. 부산 시장선거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문재인 진영이 힘을 합쳐도 이길까 말까 하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야권 연대는 없다'라고 단언했다. 정치는 유리병 안에 넣어 둔 물이 아니다. 언제 어떻게 변하고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것이 정치다. 더구나 강대국에 맞서는 약소국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살기 위한 합종연횡이 불가피하다. 

지금 김 위원장은 임진왜란을 자초했던 선조나 병자호란의 김상헌이나 다름없다. 선조는 일본의 군사력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일본 본토 점령을 지시하고 동인의 김성일이 '쥐나 원숭이 같다'는 풍신수길의 외모 평만을 믿고 비웃으며 허송세월하다 참극을 빚었다. 병자호란 당시 김상헌 전 대사헌은 철 지난 존명사상으로 화를 자초해 제대로 도망도 못 치고 남한산성에 갇힌 주제에 '부모의 나라에 대한 의리' 어쩌구 하면서 싸우기만을 주장해 청 태종의 화만 북돋았다.

김 위원장의 '없다' 는 비단 이 번뿐만이 아니다.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전인 지난 4월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미래통합당에는)지금 마땅한 대통령 후보감도 없는 상태"라고 한 것을 시작으로 4월 25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선 2017년 대선에 출마한 바 있는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등을 겨냥, “미안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검증이 다 끝났는데 뭘 또 나오느냐”고도 말했다.

5월 28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는 “지금 통합당에 대선 주자가 어디 있나. 국민이 대선주자라고 보겠나”라고 혹평했고 같은 날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는 “현재로서는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제대로 선언한 사람도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10월 16일 부마항쟁 기념식장을 찾은 김 위원장은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중에는 내가 생각하는 후보는 안 보인다”며 “3~4선 하고 이제 재미가 없으니 시장이나 해볼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선 안 된다”고 잘랐다.

11월 8일 김 위원장은 김무성 전 의원이 주도하는 전·현직 의원들의 모임인 '마포포럼' 강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해 "옛날부터 봤는데, 대통령감이 아닌 것 같다"고 혹평했고 12일에는 야권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로 올라선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그를 야당 정치인이라 볼 수는 없다. 또 윤 총장이 확실하게 자기 소신을 가진 것에 대한 관심이지 반드시 그 사람이 대선 후보로서 지지도가 높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깎아내렸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취임 전인 4월부터 7개월 동안 '없다'만 외친 것이다. 대선후보도 없고, 서울·부산 시장 후보도 없고, 야권연대도 없고, 윤석열도 없다. 가히 '없다맨 김종인'이다. 앞으로 김 위원장 별칭은 '없다맨'이다. ‘없다’만을 외치던 김 위원장이 갑자기 ‘있다’로 돌변한 것은 11월 8일이다. 그동안 ‘없다’던 오세훈 유승민 원희룡 등 잠룡들을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시점이 묘하다. 2일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새로운 플랫폼, 사실 새로운 정당”을 제기한 뒤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김 위원장의 ‘없다’가 ‘있다’로 바뀐 것은 서울. 부산 시장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범야권 연대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안 대표의 ‘야권혁신 플랫폼’으로 원심력이 강해질 듯이 보이자 서둘러 ‘우리끼리’ ‘자강·자당 후보론’을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달라진 것 같지만 실상은 김종인의 ‘없다맨’ 시리즈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반문 유권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은 ‘김종인 외에 다른 길은 없다’가 아니고 ”야권연대가 있어야 대선승리가 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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