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그 유명한 센강이 파리의 한복판을 흐르고 있다는 것은 다 안다.

그 센강의 중심부에 시테섬이 있고 그 섬 안에 유명한 노트르담 사원이 있다. 금방이라도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가 고색창연한 성당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은 이 성당의 처마 밑에서 한국의 한 청년이 실연 자살을 했다면 얼른 듣기에 로맨틱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내가 파리를 여행 중이던 작년 여름에 실제로 이러한 사건과 만났다. 8월 하순이라고 하지만 무섭게 찌던 무더운 날이었다. 나는 함께 여행 중인 추리작가 김성종 씨와 함께 그날 파리 경시청의 ‘메그레 경감의 방’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러나 새벽에 갑자기 파리의 세계적 추리작가인 까트리는 알르레 여사가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와 김성종씨는 그녀를 만나러 가고, 나 혼자 파리 경시청으로 갔다. 바스티유 광장과 위고 기념관 사이에 있는 조그만 호텔에 묵고 있던 나는 택시를 타고 갔다. 경시청의 홍보 담당 경위는 나를 그 유명한 ‘메그레 경감의 방’으로 안내했다.

메그레 경감이란 실제로 있었던 경찰관이 아니고 셜록 홈즈처럼 프랑스의 유명한 추리소설 속의 작중 탐정이다. 메그레 경감을 쓴 작가 조르즈 심농은 3년 전에 작고했는데 그는 평소에 2천 편에 가까운 추리소설을 썼으며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메그레 경감은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이 된 탐정이다. 파리 경시청에서는 이 소설 주인공을 위해 경시청 안에 그의 기념관을 만들었다.

“메그레 경감은 소설 속에서 항상 센강이 보이는 호텔 방을 좋아했지요. 그래서 이 방도 센강이 잘 보이는 곳이랍니다.” 공보관은 멀리 센강 위의 노트르담 사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저 노트르담 사원 뒤뜰에서 한국 청년 한 사람이 권총으로 자살했습니다.”
“예? 한국 청년이 자살해요?” 내가 놀라 되물었다. “예.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고 수사과에서 그러더군요. 외사과에서는 유서까지 있고 자기 머리를 쏜 권총도 있으니까 틀림없다고 하지만.”

나는 갑자기 그 사건의 내용이 알고 싶어 수사과로 가자고 했다. 나는 그곳에서 사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았다. 한국의 어느 종합상사 주재원으로 있던 김영준 씨는 귀국을 하루 앞둔 8월22일 밤비가 내리는 시테섬 동쪽 끝 노트르담 사원 잔디 위에서 오른손에 권총을 쥐고 자기의 머리를 쏘아 자살했다. 밤새 비를 맞은 시체는 아침에 발견되었다. 그의 품속에서 유서도 발견되었다.

‘우리의 사랑은 천당에서나 이루어지겠지요.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지요. 해는 저물어 종이 울리오. 나는 가고 세월은 남지요. (생략) 1993. 8. 22’

컴퓨터 프린터로 출력된 유서에는 그 유명한 기욤 아폴리네르의 실연 시 ‘미라보 다리’의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었다.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는 것만 바꿔서 써 놓았었다.

나는 수사과의 변사 사건 담당 경위와 함께 김영준 씨가 근무하던 사무실로 가 보았다. 블로뉴 숲 근처의 조그만 빌딩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는 같이 근무하던 프랑스 아가씨 두 사람만이 있었다. 소피아와 마르그리뜨라는 20대의 두 아가씨는 한국말에 아주 능통했다. 그 아가씨들은 모두 사건이 난 시간의 알리바이가 있었다. 소피아는 19일 스위스로 출장 갔다가 어젯밤 12시 이후 돌아왔고 마르그리뜨는 어제 오후부터 오늘 새벽까지 삼촌네 집에 있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나는 그가 귀국하기 위해 싸 놓은 짐을 열어보았다. 아주 간소한 짐 속에는 간단한 선물과 골프용품 등이 들어 있었다. 특히 한 짝만 쓰는 골프 장갑이 여러 켤레 있었는데 모두 오른쪽 장갑이었다. 그 외에도 조그만 목각 부처가 두 쌍 있었다.

“김 선생님은 독실한 불교 신자거든요.”
소피아가 말했다. “귀국을 눈앞에 둔 사람이 자살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나는 그가 마지막으로 쓴 컴퓨터에서 유서를 쓴 흔적을 찾기 위해 키를 누르면서 말했다.

“같이 근무한 경리 담당 소피아의 이야기로는 공금을 많이 축냈기 때문에 귀국 후 들통날 것을 걱정했답니다. 그래서 실연을 위장한 자살을 했는지도.”
경위의 말이었다. 나는 그가 쓴 문서의 디렉터리를 살피다가 마침내 ‘유서’를 찾았다. 그 유서는 8월18일 21시에 작성되었다고 컴퓨터가 기억하고 있었다.
“무슨 단서라도 있습니까?”

경위가 물었다. 나는 경위를 옆방으로 불러냈다. “이 사건은 살인 사건입니다. 첫째 유서 속에 천당이란 말이 나오는데 김영준 씨는 불교 신자이기 때문에 극락이란 말을 쓰지 기독교 용어인 천당이란 말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그는 왼손잡이입니다. 왼손잡이는 골프 장갑을 오른쪽 것만 쓰지요. 그런데 왼손잡이가 자살할 때 오른손으로 권총을 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셋째 그 유서는 8월22일 자로 되어 있지만 컴퓨터는 18일 밤에 쓴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일을 꾸민 것은 공금 횡령이 겁난 소피아의 짓입니다.

그녀는 유서를 써서 일부러 19일 출장을 갔다가 22일 오후 돌아와서 김영준 씨를 불러내 노트르담 사원으로 데이트 가자고 했던 것입니다. 사무실 그녀의 책상 위 책꽂이에는 시집 ‘알코올’이 꽂혀 있어요.“ ”알코올? 그건 아폴리네르의 시집 아닙니까? “경위가 경이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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