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처럼 다정한 부부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이 동네 아파트로 이사 온 지 몇 해가 되었기 때문에 민병숙 씨 부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외국은행 지점에 다닌다는 남편 조인수 씨도 인사성 바르고 마음씨 곱기로 이름나 있었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이런 경우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그렇게 착해 보이는 아내 민병숙 씨가 방안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형사들은 목이 졸려 피살된 것이 거의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원한을 살 만한 일이 뭐 있겠습니까?” 출장 갔다가 돌아와 아내가 아파트 침실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 남편 조인수는 손수건으로 연방 눈물을 닦아내면서 쉰 목소리로 형사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러니까 3일 전 방콕으로 출장 갔다가 어제 새벽에 돌아와 보니...”
강 형사의 말을 조인수가 가로챘다. “방콕이 아니고 우리 은행 본점인 싱가포르입니다. 새벽 4시께 집에 들어와 초인종을 눌러도 기척이 없기에 아내가 자는 줄 알고 내가 가진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지요.

나는 아내가 곤히 잠든 것 같아 살금살금 건넌방에 들어가 눈을 붙였지요. 한참 자고 나서 눈을 떴더니 오후 3시가 되었더군요. 그래서 아내를 불려 보니 대답이 없었어요. 침실로 뛰어가 보니. 처음엔 침대 위에서 자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세상에! 우리 착한 병숙이를…. 어느 놈입니까?

조인수가 흐느끼며 땀과 눈물로 범벅된 채 겨우 말을 이었다.
“민병숙 씨를 가장 나중에 본 분은 누구지요?” 강 형사가 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대 부분 동네 사람들이었다.

“사흘 전인가요? 반상회를 이 집에서 했는데.” 나이 좀 들어 보이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말했다. “사흘 전? 그날 밤쯤 피살된 것 같은데. 그때 뭐 이상한 점을 느낀 건 없었나요?”

강 형사가 다시 물었다. “글쎄요. 실내용 에어컨을 새로 사 왔다고 하더군요. 올해에 나온 신제품인데 성능이 아주 좋다고…. 아니, 그 에어컨이 여기 있었는데…….”

그녀가 거실의 빈 벽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저 침실에 있는 것 말입니까?” 강 형사가 침실에 있는 에어컨을 가리키며 말했다. 참으로 이상한 사건이었다. 아파트에는 남편 조인수 외에는 아무도 드나든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조인수는 범인일 수가 없었다.

조인수가 싱가포르로 출장을 가던 날 밤에 민병숙은 피살되었다. 사람이 죽은 시간을 알아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시체 온도가 내려가 있는 상황이나 시체가 굳어진 상황을 보고 알아낸다.

민병숙의 시체의 체온은 그가 적어도 40여 시간 전에 죽었다는 증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남편이 싱가포르에서 돌아온 시간은 시체가 발견되기 10여 시간 전이었다. 요즘 같은 찜통더위에 시체가 그렇게 빨리 식을 수가 없었다.

강 형사는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우선 조인수의 직장 주변을 조사하다가 그의 비밀 하나를 알아냈다. 조인수는 은행에 있는 여행원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 일로 인해 최근 아내 민병숙과 남모르는 싸움이 계속됐다는 것이다.

‘조인수가 범인이 틀림없는 것 같아, 그러나 죽은 시간이 맞지.’
혼자 중얼거리던 강 형사의 머리에 갑자기 새로 샀다는 그 집 에어컨이 생각났다. 거실에 있던 에어컨이 왜 침실에 있었을까?
‘맞아 바로 그거야. 영악한 조인수!’

강 형사는 다시 민병숙의 부검 기록을 검토했다. 시체 온도가 말해 주는 것과는 모순되는 기록이 있었다.
강 형사는 즉시 아파트로 달려가 조인수의 멱살을 쥐고 말했다.

“그래, 숨겨둔 애인 때문에 아내를 죽여? 나쁜 자식! 내가 당신 잔꾀를 모를 줄 알아? 당신은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잠든 아내는 목을 졸라 죽였어. 그리고 시체가 빨리 식어서 며칠 전에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거실에 있는 성능 좋은 에어컨을 침실로 가져와 방 안 온도를 차게 했지. 그래서 시체가 며칠 전에 죽은 것처럼 보이게 했던 거야.”

강 형사가 흥분해서 떠들었다. “흥! 그건 당신의 억측이오. 법정에서 과연 그 말이 통할까요?”
조인수는 항복하지 않았다.

“다른 증거도 있어. 민병숙의 위장 속 음식물의 소화상태와 부패의 정도를 보면 죽은 지 12시간도 채 안 돼! 빗나간 사랑에 눈이 어두워 조강지처를 버리면 천벌을 받게 돼. 이 세상에 완전범죄란 없어!”
그때야 조인수는 머리를 감싸 쥐고 신음하며 주저앉았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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