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재경 정치평론가] 새해 신축년 2021년의 한반도는 남북관계와 비핵화 국면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각국이 나서면서 코로나19 터널의 끝이 보이는 만큼 글로벌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의 패러다임이 변화가 분명한 탓이다. 얼어붙은 글로벌 교역이 활기를 되찾고,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강대국들의 정치력이 다시 국경을 넘나들 경우 한반도도 그와 같은 시대적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대가 끝나고 조 바이든의 미국호가 출범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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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든 하반기 순방전 민간차원의 물밑 작업
- 대북외교안보라인 실무.총책임자 교체 분위기 반전

지난해 말 북한이 1월 초 8차 당대회를 앞두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명의의 특별 지시문을 당 조직과 군에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기본적으로 수 천명이 모이는 당 대회에서 행여 코로나19가 확산될 수 있어 방역 강화 지침이 최대 목적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과정을 보면 북한 내부 분위기의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즉 김정은 위원장의 지도하에 김여정이 당 지시문을 직접 하달한 것이 사실이라면 김여정의 영향력이 상당부분 더 확대됐다고 볼 수 있어서다. 이른바 김정은·김여정 역할론 즉 대남 강성기조는 김여정이 주도하고, 김정은 뒤에서 수위를 조절하는 구도로 북한 권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 현실이다. 실제 지난해부터 불거진 김정은 건강이상설로 인해 새해에는 김여정 부부장의 역할이 한층 확대될 것이라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새해부터 김여정 부부장의 역할 확대 될 것

정부의 대북라인들도 김여정이 8차 당 대회 등을 계기로 정치국 위원과 같은 핵심 직책을 맡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국가정보원의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를 봐도 이런 기류는 읽힌다. 지난해 11월 국정원은 김여정이 외교안보를 넘어 당 행사의 총괄기획까지 맡는 등 국정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비슷한 시점에 미국의 한 온라인 매체는 "김여정이 북한 지도부의 차기 후계자로 자리잡고 있으며 현대사 최초의 여성 독재자가 될 준비를 마쳤다"고 보도했다.

8차 당대회를 계기로 북한이 일종의 대화 모멘텀 형성의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120일 미국의 바이든 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북한이 대화를 주도하기 위한 일종의 선수를 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이 김여정의 이름으로 대미 정책과 관련한 노선을 규정하는 성명을 내고, 이후 미국의 태도를 보면서 대응 전략을 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향은 대충 유화적 제스처로 모인다. 북한이 바이든 정부 출범 초부터 굳이 실익이 없는 도발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는 관측이 우세한 까닭이다. 따라서 북한이 8차 당대회 이후 상징적으로나마 온건적 메시지를 내놓고, 내부적으로 대외 정책 노선의 변화를 가져가는 방식이 유력해 보인다.

지난달 31일 통일부도 이런 시각에 동의하는 자료를 냈다. 통일부는 '북한 8차 당대회 관련 참고자료'를 통해 "어려운 대내외 환경을 고려해 (북한이)전향적으로 입장을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남북대화 제의 등 대남 메시지 발신 여부에 주목한다"고 덧붙였다. 통일부는 또 북한이 미국의 새 행정부를 의식한 온건기조 메시지 전달과 자주와 평화 그리고 친선의 국제협력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봤다.

이어 통일부는 북한이 대내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위 격상·강화가 당 대회를 통해 이뤄질 것으로도 전망했다. 당 권력기구 개편과 당 대회 정례화, 당 조직개편 및 세대교체와 같은 지도부 재정비 여부도 주목했다. 나아가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새로운 지위를 맡을 가능성과 군정지도부 공식화 여부도 통일부는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분야 자력갱생 기조의 새로운 계획이 발표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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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대화 모멘텀 마련하는 , 주도권 강화

문제는 미국의 대응 수위다. 그 동안의 트럼프식 접근 즉 톱다운 방식의 협상 틀을 깨고 과거 민주당 정부의 형식으로 회귀할 수 있어서다. 그렇다면 상징적 의미의 이벤트 보다는 대화의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비핵화 대화의 모멘텀은 북한이 마련하고, 미국은 시간을 두고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게 외교가 안팎의 일반적 전망이다. 그 속에서 정부의 역할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통미봉남(북한이 미국과의 실리적 대화를 기하면서 한국 정부와는 협상의 고리를 연결하지 않는)'의 심화를 지적하는 이유다.

물론 반대 논리도 상당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북한경제리뷰'에서 김진아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통미봉남의 가능성을 낮게 봤다. '미국 신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 전망' 보고서에서 김 연구위원은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과의 공조를 중시한다""(이에 따라)한국이 북한을 관리하는 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이 한국을 우회해 미국을 상대할 여지가 축소될 것으로 점친 셈이다. 다만 김 연구위원은 트럼프식 외교방식 즉 빅딜 중심의 방식을 탈피한 바이든 행정부가 다양한 정책적 대안을 놓고 대북협상에 임하는 전망에 동의했다. 미국 주도의 다자 협력에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으므로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비군사분야 현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봤으며, 중국과는 고위급 교류를 복원해 불필요한 마찰을 줄여야 한다고 김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실제 다자구도의 협상 틀이 강하게 복원되면 중국과 일본, 러시아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보다 더 깊숙히 관여하면서 대미견제 라인을 강화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갈등이 최근 다소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분위기지만 언제든 다시 불이 붙을 수 있고, 그 배경에 아시아에서의 대립이 자리할 수 있어서다.

강대강의 정면충돌을 피하더라도 북한을 통한 우회적 압박은 미국에게 충분이 먹힐만한 수라는 게 중국 내부의 분위기라고 한 외교 전문가는 분석했다. 그는 "중국이 당장의 직접적 충돌을 하지 않겠지만 북 체제 변화를 유도하면서도 미국 견제 논리를 심화해 가는 식으로 외교 전략을 펼칠 것"이라며 "그 경우 비핵화 협상 틀이 깨지지는 않겠지만 가속도를 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 ‘강대강정면충돌 피하고 우회적 압박

나아가 시 주석이 코로나 진정을 전제로 방한 계획을 종종 밝혀왔던 만큼 시 주석의 방한이 일종의 비핵화 협상 재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상당하다. 중국 입장에서 한중 정상회담은 충분히 활용 가능한 유용한 도구라는 이유에서다. 한중 경제 협력 심화를 다지면서 과거 6자 회담의 숨통에 호흡을 다시 불어 넣는다면 동북아 정세에서 중국이 일종의 주도권 강화를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한령 해제와 같은 상징적 메시지와 함께 다자회담 재개의 틀을 한국 정부에 제시한다면 한국 정부로서도 이를 거부하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는 실정이다. 한 전직 외교관은 과거 6자회담의 복원으로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대화의 틀은 바뀌어도 그런 기조는 미중갈등이 심화될수록 더 강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외교전문가는 코로나로 심각한 내수 부진을 겪는 한국과 중국으로서는 코로나 터널을 통과하면서 경제 협력 강화를 서로가 원할 것이라며 비핵화 문제는 단 시간에 풀어낼 수 있는 과제가 아닌 만큼 상대에게 여지를 좀 내주더라도 당장 떨어진 발등의 불을 끄는데 치중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여기에 스가 정부의 일본도 한 다리를 걸치고 있다. 집권 3개월만에 코로나 대응에 대한 실망감 등으로 지지율이 폭락한 스가 입장에서는 연임을 위해 강한 외교적 카드를 들이밀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 등을 다시 들고 나서면서 돌아선 민심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전략을 구사하며 연임의 기반을 다져 나가는 방식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 아베 정권서부터 일본은 지지율 회복을 위해 북한 카드를 종종 들고 나왔던 사례가 많다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 하고 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지금까지 일본에서 장기집권 후 차기 정부가 단명하는 사례가 이번에도 적중될지도 주목되는 이슈다.

비핵화 대화 물꼬 틀 경우 한반도 대변화 전망

지난달 27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지지율 급락의 스가 총리가 임기 연장을 위한 전제 조건인 차기 집권당 총재 선거 출마 여부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 스가 총리는 출마 가능성에 대해 하루하루 착실하게 일을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직접적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각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을 의식해 총재 선거 등 자신의 거취와 직결된 정치 일정에 대해 말을 아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언론들은 분석했다.

여러 변수가 상존하지만 일반적으로 미국 외교가는 물론이 한국 정부 안팎에서 어떤 방식이든 신축년 새해에는 비핵화 대화의 동력이 붙으면서 한반도에 큰 변화가 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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