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우직하고 충성심이 강한 김형욱은 1974년 4월 한국을 떠나 미국에 망명을 요청했다. 그리고 박정희 독재 정권을 맹렬히 비난했다.

육사 8기로 5?16 쿠데타에 참여한 김형욱은 저돌적이고 공작에 능한 인물이었다. 중앙정보부장 시절 인민혁명당 사건을 발표하면서 혁신계 인사, 언론인, 교수, 학생 등 41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시키기도 했다.

그러던 김형욱이 이번에는 박정희의 인권 탄압과 유신 독재에 화살을 겨누었다. 물론 거짓이었다. 미국을 속이고 박정희의 밀명을 수행하기 위한 망명 위장이었다.

한국과 핵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던 프랑스는 돌연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해 버렸다. 이것도 미국을 속이기 위해 박정희와 짜고 한 일이었다.

박정희와 프랑스의 비밀 업무를 성사시키기 위해 가짜 망명객 김형욱은 1978년 3월 파리에 도착했다. 김형욱은 기차로 스위스에 잠입, 스위스 은행 비밀 금고에서 막대한 프랑화를 현찰로 찾아냈다. 김형욱은 큼직한 여행 가방 바퀴를 굴리며 다시 열차편으로 파리에 돌아왔다.

김형욱은 파리에서 박정희가 보낸 밀사 한용국과 접선했다. 외교관 출신인 한용국은 파리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한용국은 김형욱과 비밀리에 협력하여 프랑스 정부가 묵인해 주고 있는 프랑스 비밀 조직과 함께 프랑스의 핵 재처리 기술 설계도와 상당량의 재처리된 플루토늄을 한국으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다. 외부 사람들, 특히 미국 정보기관의 눈을 완벽하게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계 유명 정보기관의 요원들이 김형욱을 줄줄이 미행하고 있었다. 미국의 CIA, 소련의 KGB, 프랑스의 DGSE, 영국의 DIS, 심지어 이스라엘의 모사드까지 끼어 있었다.

한용국은 김형욱의 도움으로 프랑스에서 비밀 임무를 완벽하게 진행했다. 프랑스의 비밀 조직으로부터 핵무기 설계도와 플루토늄을 입수하고 이것을 탑승객의 화물로 위장, 대한항공 여객기 902편에 싣는 데 성공했다. 순도 95퍼센트의 플루토늄 12킬로그램이었다. 중형급 핵폭탄 두 개를 만들 수 있는 용량이었다.
한용국은 프랑스 오를리 공항 직원으로 가장해서 대한항공 902편에 잠입, 티켓 없는 승객이 되었다. 당시 탑승객 수가 109명이라고도 하고 110명이라고도 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용국은 아무런 문제 없이 밀명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CIA는 모든 상황을 다 포착하고 있었다. 박정희가 핵무기 개발을 위한 결정적인 작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도 훤히 알았다. 그러나 남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일을 쉽게 막을 수는 없었다. CIA는 마침내 소련의 KGB를 끌어들였다.
1978년 3월.

파리의 일본계 다까마스 호텔 특실에서 CIA 동북아 담당 국장과 KGB의 군사 담당 국장이 만났다.
두 적수 정보기관의 만남이었다.
“비행기를 폭파시켜서는 안 됩니다. 납치해야 합니다.”

“민간기를 납치하면 세계적인 비난을 받게 됩니다.”
“소련 영토에 들어오도록 항로를 속이면 됩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쪽에서 힘을 써주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대신 비행항로를 유도하는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로랜스테이션을 마비시키는 일은 그 쪽에서 맡아 주십시오.

“새틀라이트 유도 발신 문제는 우리가 맡겠습니다.”
냉전 시대의 적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의 적에 대응해 협력을 결정했다. 미국으로서는 플루토늄과 핵무기 설계도의 한국 반입을 막을 수 있는 기회였고, 소련은 미국 보잉사의 707 비행기를 통째로 입수해 제조 비밀을 알아낼 수 있는 기회였다.

KGB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지나는 항로 안내 기구를 모두 마비시켰다. 비행기 항로에 관계된 인공위성까지 차단시켰다. 그리고 자이로 내비게이션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항로를 잃은 대한항공 902편은 오도된 길로 들어섰다. 그리하여 마침내 무르만스크에 강제 착륙 당하고 말았다.
소련은 보잉 707 여객기를 샅샅이 분해하여 비행기 제조의 노하우를 알아내는 엄청난 수확을 했다. 

소련은 위장 승무원 한용국을 체포하여 다른 승무원들과 격리시켰다. 한용국의 운명은 그 뒤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박정희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미국 CIA는 자신들의 비밀을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 손을 썼다. 이듬해인 1979년 10월 29일 르그랑 세르클 카지노에서 나오는 김형욱의 옆구리에 두 남자가 권총을 들이댔다.
“조용히 따라와.”

“너희들은 누구냐?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한국말을 쓰는 두 사람의 얼굴은 서양 사람이었다. 김형욱은 멀리서 이 두 사람을 감시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옆구리에 권총을 대고 있어서 구원을 요청할 수 없었다.
고급 승용차에 실려서 파리 교외로 끌려간 김형욱은 권총 두 방을 맞고 농장의 닭 사료 분쇄기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박정희가 암살된 지 3일 뒤의 일

바지선이 골프장 잔디밭에 닿자, 남자 두 명과 바지를 입은 여자 한 명이 잔디 위로 풀쩍 뛰어 올랐다. 모두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그들은 잔디밭 가장자리 나무 그늘 밑에서 지프 한 대를 몰고 나왔다. 골프장 관리자가 보았다면 기겁할 노릇이었다.
여자가 지프 운전석에 앉자 남자 둘이 지프 뒤에 묶여 있던 로프를 풀어 바지선에 있는 비행기에 붙들어 맸다.

지프가 서서히 움직이자 비행기가 잔디 위로 끌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비행기가 8번 홀 잔디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지프에 있던 여자까지 내려 비행기에 달라붙었다. 세 사람은 능숙한 솜씨로 접혀 있는 비행기 날개를 폈다.
길이가 7~8미터, 날개가 10미터쯤 되어 보였다. 비행기는 기수를 그린 쪽으로 향했다. 꼬리는 티 그라운드 바로 앞에 있었다.

박정희가 김형욱을 파리에서 납치해 청와대 지하실로 끌고 와서 ‘임자가 이럴 수 있어.’ 하고 물었다는 이야기나 ‘각하, 저는 각하는 배신했지만 조국은 배신하지 않았습니다’고 말해 그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일본 일부 주간지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즉, 그를 죽인 것은 박정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본숑스. 장 폴.
행운을 빈다는 불어 인사와 함께 장 폴의 메일이 끝났다. 사실로 믿기에는 너무 벅찬 내용이었다. 
수원은 파일을 다 읽고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도 모를 분노가 치솟아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흥분을 가라앉힌 수원은 장 폴에게 메일을 썼다.
-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라 믿기지 않는군요. 이 자료의 출처를 정확히 알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러시아에서 대한항공 902편과 관련한 비밀 문건이 해제되어 여러 사이트에 일부 내용이 공개되었다는 설을 들었습니다.
장 폴님.

혹시 저를 더 도와주실 수 있는지요? 아버지 한용국에 대한 소식을 더 자세히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수원은 후지일렉트릭코리아의 모리무라 나쓰에한테도 메일을 보냈다.
- 한수원입니다.

 일전에 보내주신 파일,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그렇게 많이 접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소련 당국에 의해 억류된 것이 그 파일로 확실해졌습니다. 30여 년 전 일이니 아마도 아버지는 긴 세월 동안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다가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당시 바로 처형당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쓰에 씨는 러시아 말도 아시니까 러시아 인터넷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까. 무리한 부탁입니다만 러시아 인터넷을 더 살피시어 아버지에 대한 한 두 마디 소식이라도 더 발굴해 주신다면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참고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라’ 회원이 보낸 대한항공 902편 강제 착륙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파일을 보내드립니다. 진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보증할 수 없지만.

그럼 건강하시길 빌며...
수원은 책상 위에 놓인 부모님 사진을 바라보았다. 젊고 패기에 찬 아버지가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띠고 있었다.

18. 날개 달린 아나톨리
 
동해의 수평선 너머로 하늘이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신 새벽. 사물이 어렴풋이 깨어나고 있었다.
출렁이는 동해 바다를 끼고 있어 해안 명문 코스로 이름난 오리엔트 골프장. 평화로운 새벽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미명을 뚫고 바지선 한 척이 모터보트에 끌려 움직이고 있었다. 골프장 8번 홀로 접근하는 중이었다.

5백50야드의 파 5 홀. 길이가 긴 것으로도 이름났지만 바다와 나란히 달리고 있어 아마추어 골퍼들이 좋아하는 시사이드 코스였다. 넓고 평평하여 롱 드라이버를 가리는 홀로도 유명했다.
바지선은 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다가와 홀의 가장자리에 바짝 붙었다. 바지선 위에 거대한 물체가 실려 있었다. 날개를 접고 있는 경비행기였다.
새벽 골프장은 텅 비어 있었다.

세 사람은 비행기 주위를 돌면서 빠른 걸음으로 이것저것을 점검했다.
“5분 전이야. 자, 이제 그걸 싣지.”
지휘자로 보이는 남자가 명령했다. 다른 남자가 바지선에서 상자 같은 것을 조심스럽게 들고 올라왔다.
“어디에 둘까요?”

“조종석 옆 자리에. 조심해.”
“골프장은 몇 시에 티업하지요?”
여자가 뜻밖에도 영어로 물었다.
“공이 보일 정도가 돼야 시작하니까 6시쯤.”
지휘를 하던 남자가 영어로 대답했다.

“아웃코스 8번 홀이라 첫 번째 팀이 여기까지 오려면 한 시간 이상 걸릴 거야.”
남자가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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