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쟁점법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치하면서 김형오 국회의장(63)의 몸값이 급상승하고 있다. 김 의장의 한 마디 말과 행동에 따라 여야가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쟁점법안에 대한 여야간 합의처리를, 한나라당은 협의 처리를 하되 무산시 강행처리로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결국 김 의장이 ‘여야간 합의 처리’ 입장에 서느냐 아니면 ‘직권상정’으로 강행처리를 하느냐에 따라 여야 원내 지도부의 운명이 뒤바뀔 수 있다. 어느 한쪽은 ‘책임론’에 휩쌓여 낙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 의장은 선택을 최대한 연기하면서 회기 마지막 날인 8일까지 여야 합의 처리를 주문했다. 김 의장의 태도에 민주당은 내심 안도하는 표정이지만 한나라당 강경파 진영에서는 ‘김 의장이 딴 욕심이 있는 게 아니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대권병에 걸려 친정인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입장을 무시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온건 합리주의자로 알려진 김 의장은 국회가 파행으로 치닫기전까지 원만하게 의장직을 수행했다. 특히 지난해 5월30일 18대 국회가 시작된 이후 두 달 동안 개원이 안되는 사태를 맞이해 김 의장은 ‘의장 직권으로 원구성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보내 원구성과 국회 정상화를 이뤄냈다.


국회개원, 추경안 예산 원만한 리더십

이후 김 의장은 법무부가 제출한 민주당 김재윤 의원과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의 공천 헌금과 뇌물수수혐의로 인해 체포 동의안을 부결시켜 야권을 배려했다. 뒤를 이은 추경안 처리 논란 역시 ‘여당의 단독 처리는 국회법 위반’이라며 원칙을 고수해 여야간 합의처리를 유도했다.

김 의장의 이런 원칙론은 집권 여당내에선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왔지만 ‘수적 우위에 자만하지 말라’고 오히려 일침을 가했다. 그런 김 의장이 위기를 맞이한 것은 7대 쟁점법안 즉 방송법안, 한미 FTA비준안, 공정거래법 등을 두고 여야간 한치의 양보없는 대치전을 펼치면서부터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하자 본회의장 및 상임위원장실을 점거했다.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던 김 의장의 의장실까지 점거당하자 김 의장은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으로 내려가 ‘강행처리 한다’는 경고성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지만 여야는 2008년 12월 31일까지 합의 처리를 끝내 이뤄내지 못하고 새해를 맞이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 의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민주당 강경파에서는 김 의장이 합의처리 발언을 믿지 못하겠다고 비판을 쏟아냈고 한나라당 강경파는 ‘실기했다’며 어정쩡한 김 의장의 태도에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친이 직계 소속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김 의장에게 쓴소리를 보냈다. 김영우 의원실의 한 인사는 “김 의장이 직권상정을 통해서라도 2008년도에 MB 개혁법안을 강행처리했어야 했다”며 “이후 대통령 신년사와 개각을 통해 국면전환을 했어야 했는데 새롭게 출발해야 할 MB 집권 2년차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나아가 그는 “여야가 8일까지 합의처리를 이뤄내지 못할 경우 마지막에 경위권을 발동해 민생법안을 비롯해 쟁점법안을 일괄처리해야 한다”며 “만약 2월 임시국회로 쟁점법안이 넘어갈 경우 경기가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MB 개혁법안 통과는 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무난하다’는 평가도 아울러 나왔다. 중립성향의 권영세 의원실의 한 측근은 “무난한 편이다”며 “ 여야가 타협해 국회 정상화에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든 것은 본회의장을 점거한 민주당의 탓”이라고 화살을 돌렸다.

친이의 강용석 의원실 한 관계자 역시 “2008년 연내 처리했어야 했지만 8일까지 여야간 합의를 통해 유연하게 처리할려는 모습이 맞다”며 “오히려 야당에게 너무 많이 양보한 홍준표 원내 대표가 무능하다”고 비판했다.


김형오 대권 도전, 친이. 친박.중립 3인3색

그러나 친박 진영에서는 다소 냉소적인 평가를 내렸다. 서상기 의원실측에서는 “현재로서는 합의 도출뿐 대안이 없다”며 “직권상정에 강행처리를 하기에는 늦었다”고 실기론을 펼쳤다. 또 그는 “김 의장이 지난해 연말처리를 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국민들도 국회가 싸우든 합의처리를 하든 무관심한 상황이다”고 평가했다.

한편 김 의장이 여야 합의처리를 강조하는 것이 ‘자기 정치’를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마저 나오고 있다.

권영세 의원실측에서는 “대권 행보가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다”며 “그러나 본인의 결단과 결심을 폄훼시키는 얘기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친이 직계의 김영우 의원실에서는 “지금처럼 어정쩡한 태도로 대권 꿈이 가능하겠느냐”며 “당은 보수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계보나 지분이 없어 한나라당 표를 흡수하는 데 더 어렵다”고 회의적으로 내다봤다.

또 다른 친이 강용석 의원실측에서는 “정치를 하는 사람치고 개인적인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일단은 원만하게 여야 합의처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친박 인사인 서 의원실에서는 “본인이 다른 생각이 있으면 그길로는 가는 것”이라며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친이 친박 중립 인사들은 그의 화려한 경력에 대해서는 차기 대권 후보로서 손색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부산 출신의 김 의장은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해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한 엘리트 출신이다. 또한 6선의 김 의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 정무비서관을 지냈고 이후 민자당 부대변인을 거쳐 한나라당 사무총장, 인재영입위원장, 원내대표, 17대 대통령 인수위 부위원장을 거쳐 정부 3부 요인의 한 명인 18대 국회의장직을 맡고 있다.


화려한 경력 그러나 초라한 당내 입지 대조

김 의장이 당내에서 한번도 못한 직은 당 대표로 지난 2003년에 나섰다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다. 이로 인해 초기에는 국회 의장직 이후 ‘당권 도전설’이 반짝 나왔다가 수그러들었다. 화려한 경력에 비해 당내 기반이 약하다는 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이번 쟁점 법안 처리에 어떠한 선택을 취하느냐에 따라 새롭게 도약을 하느냐 아니면 국회의장직을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느냐 기로에 선 셈이다. 현 정국에서 김 의장이 행보가 주목받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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