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토지 소유주 간 입장 차 극명…1년 전 영등포 쪽방촌 개발 ‘수월’

동자동 쪽방촌 입구에 붙은 플랜카드 [사진=김혜진 기자]
동자동 쪽방촌 입구에 붙은 플랜카드 [사진=김혜진 기자]
변창흠 국토부 장관 [사진=뉴시스]
변창흠 국토부 장관 [사진=뉴시스]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서울 5대 쪽방촌 중 한곳인 ‘서울역(동자동) 쪽방촌’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1호 사업’으로 쪽방촌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하면서다. 토지 소유주 등은 동자동 곳곳에 ‘개발 반대’ 플래카드를 걸고 연일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거주하는 입주민들은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 입장 차의 근거를 직접 들어보고, 앞서 1년여 전 공공주택 개발 계획을 밝혔던 영등포 쪽방촌의 현재 진행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24일 현장을 방문했다. 

- “개발 이윤보다 ‘주거권’이 먼저다” vs “재산권 침해 공공주택 만드는 게 공익이냐”
- 1년 전 개발 계획 밝힌 영등포…일부 이견 있지만 어느 정도 합의 도달

국토교통부는 2·4 부동산대책 발표 다음 날인 지난 5일 서울시, 용산구 등 관계 기관과 함께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공동 사업시행자로, 동자동(후암특계 1구역) 일대 4만7000㎡에 쪽방 주민들이 모두 재입주하는 공공임대주택 1250가구와 공공분양주택 200가구, 민간분양주택 960가구 등 총 2410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공공임대단지와 복지시설이 들어서면 쪽방 주민들은 기존보다 2~3배 넓은 5.44평(18㎡) 공간에 현재 15% 수준으로 저렴한 보증금 183만 원·월세 3만7000원가량의 임대료를 내고 거주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사업기간 중에는 쪽방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선(先)이주 선(善)순환’ 방식을 택했다. 먼저 공공임대·분양주택이 들어설 지역을 철거하고 공공주택을 건설한 후, 기존 거주자가 재정착을 마치면 나머지 부지를 정비해 민간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먼저 철거될 지역에 거주 중인 쪽방 주민 150여 명은 공공주택 입주 전까지 사업지구 내 게스트하우스 등을 활용한 임시 거주지에 머물게 된다. 해당 지역의 일반 주택 100여 가구도 원하는 경우 인근 지역 전세·매입임대로 임시 거주지를 제공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주민 의견수렴 등 절차를 거쳐 올해 지구 지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내년 지구 계획 및 보상을 거쳐 2023년 공공주택단지를 착공해 2026년 입주를 목표로 추진된다. 2030년에는 민간분양 택지 개발을 끝낼 계획이다.

동자동 쪽방촌 내부 [사진=김혜진 기자]
동자동 쪽방촌 내부 [사진=김혜진 기자]
동자동 쪽방촌 건물 [사진=김혜진 기자]
동자동 쪽방촌 건물 [사진=김혜진 기자]

[[입주민 ‘찬성’ vs 토지 소유주 ‘반대’]]

서울역 맞은편에 즐비한 고층건물 뒤편에 동자동 쪽방촌이 있다. 쪽방촌 초입에는 ‘상생하는 공공임대 찬성한다. 그런데 왜 개개인의 사유재산 강제수용해서 하나?’ ‘약자보호 명분 내세워 사유재산 탈취하는 정부를 규탄한다!!’ 등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김정호 동자동 사랑방 주민협동회 이사장은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입주민들의 목소리는 가진 자들의 목소리와는 다르다”며 “토지 소유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힘 있게 낼 수 있지만 여기 거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가려질 수밖에 없다. 하루 먹고살기 빠듯한 주민들은 찬성을 해도 플래카드를 붙일 여력조차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입주민들은 개발을 원한다. 한두 평 남짓한 좁은 방을 평균 25만 원가량의 비싼 월세 내고 사는 건 힘들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을 따라 쪽방 내부 몇 곳을 방문해 보니 “열악하다”는 표현조차 부족해 보였다. 주민들이 인근 공원에 그렇게 많이 나와 있던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쪽방 건물은 한낮임에도 어두컴컴했고 방들은 좁게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또 한 건물에 사는 10가구의 주민들이 1평도(3.3㎡) 안 되는 화장실을 함께 쓰고 있었고, 재래식 변기가 방치돼 있는 곳도 발견했다. 이곳 주민 중 한 명인 한모(68)씨의 방 문을 열자마자 쾨쾨하고 꿉꿉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 씨는 “창문이 있는 방보다 없는 방의 가격이 더 싸기 때문에 환기가 어려워도 그냥 살고 있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촌 입구에 붙은 플랜카드 [사진=김혜진 기자]
동자동 쪽방촌 입구에 붙은 플랜카드 [사진=김혜진 기자]

쪽방촌 토지 소유주·건물주로 구성된 후암특별계획1구역(동자) 준비추진위원회(추진위)는 정부 발표 후 즉각 반대 의사를 표했다. 추진위 측은 “정부 계획이 발표되기 전부터 민간 주도 개발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번 계획과 관련해 사전에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며 “민간의 일반적인 아파트를 원하지 정부의 공공임대주택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청 정문 앞에서 ‘정부의 기습 발표 및 강행’에 대한 항의 시위를 진행하며 “이곳은 충분히 ‘역세권’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이용해 고밀 개발하면 노숙인·주민 등과 상생할 수 있는 도시 계획이 가능한 지역이다. 사실상 역세권의 사유 재산을 헐값에 사서 국가가 과도한 이익을 취득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추진위가 제기하는 문제는 ▲국토부 발표 전 토지 소유주·건물주와의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것 ▲서울역 인근 알짜배기 땅과 건물을 정당보상이란 명목 하에 ‘현금보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변창흠 장관은 “지구지정 여부는 공시 전 공개될 경우 형법상 처벌을 받게 되는 중범죄로, 부득이 집주인과 토지주의 사전 논의가 불가능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쪽방촌은 공공주택지구 방식이 아니면 이주대책과 사업성 등 문제로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실제 쪽방촌 주민들의 호응도가 높은 만큼 토지주, 집주인도 충분한 보상과 설득을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등포 쪽방촌 [사진=김혜진 기자]
영등포 쪽방촌 [사진=김혜진 기자]
영등포 쪽방촌에 붙은 플랜카드 [사진=김혜진 기자]
영등포 쪽방촌에 붙은 플랜카드 [사진=김혜진 기자]

[[기약 없는 ‘민간 대신 공공’ 선택한 영등포 쪽방촌 건물주들]]

국토부는 지난해 1월부터 주거복지 핵심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 10여 곳의 쪽방촌 개선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영등포 쪽방촌이다. 1년여 전 국토부는 이곳을 철거하고 쪽방촌 일대 약 1만㎡에 쪽방 주민을 위한 영구임대주택 370호에 기존 쪽방 주민들을 우선해 입주시키겠다고 밝혔다. 또 젊은 층을 위한 행복주택 220호, 분양주택 600호 등 총 1200호를 공급 예정이다. 쪽방촌 주민들에겐 가구당 16㎡(4.84평), 임대료 월 3만2000원 수준의 영구임대주택을 지어 공급한다. 동자동 쪽방촌처럼 인근 이주단지에서 임시 거주하도록 한 후 공사가 완료하면 현재 지역으로 재입주하는 ‘선(先)이주 선(善)순환’ 방식 도입 예정이다.

영등포 쪽방촌 공공개발 사업 역시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영등포 쪽방촌을 방문해보니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는 ‘원주민의 이주대책을 확보하고 시행하라’ ‘주민위한 개발사업 주민의견 수용하라’ 등의 플랜카드가 붙어있었다. 토지 소유주와 입주민간 갈등, 보상 문제 등을 놓고 이견은 지속돼왔지만 최근에는 지난 수십 년간 몇 차례 진행했던 민간사업이 무산되면서 토지 소유주와 입주민도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SH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소유주들과 일부 이견이 있지만 최근 주민협의체와 논의를 통해 함께 조율하는 과정에 있다”며 “현금보상과 대토보상 관련해선 토지 소유주들이 대토로 공급할 것을 요구해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소유주들과의 합의가 어려워 지연된 측면이 있었는데 최근 대토 협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주민대책위원회와도 협의가 잘 이뤄지고 있다”며 “앞으로 2~3개월 안에 기본조사 및 실태조사를 마치고 보상 계획 공고가 나오게 되면 입주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선 이주단지 보상계획과 함께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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