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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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7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김영삼 대통령 유럽 순방

제50차 UN 총회

- 이란도 상당히 재미있는 것 같다. 북한과 대량살상무기 협력관계가 아주 긴밀했는데 한국의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 것을 보면 이란 외교가 나름대로 상당히 유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 수리남은 더 나아가서 임업 분야의 협력에 감사를 표명했다. 우리나라 ODA를 증가해달라는 이야기를 했고, 통신과 전력 송수신 시설에 대한 대외경제협력기금 차관 사용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검토 후 통보하기로 했고, 수리남 측도 양국 간의 이중과세협정체결을 희망했다. 

인도네시아와도 코펜하겐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인도네시아 쪽에서는 KEDO 발족 현황과 북한 핵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다. 그러면서 KEDO 협정이 북한에게 너무 호의적인 것 아니냐는 감상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 “북한은 KEDO의 멤버가 아니다. 경수로를 북한에 설치하게 위한 지원 사업을 위한 것이지 북한을 위한 것은 아니다. 걱정할 것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인도네시아의 KEDO 참여는 인도네시아라는 특수한 입장 때문에 북한 핵 해결에 결정적 역할이 될 테니까 적극적 참여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검토하겠다고 했다. 

 

-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최종적으로 KEDO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렇다. 마지막으로 한·태국 회담이 있었다. 한국의 WTO 사무총장 출마에 대한 태국의 지지를 재확인하고 남은 두 후보들 사이에서 컨센서스가 모색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다. 태국은 한국의 안보리 진출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고 했다. 태국 의장의 방한과 관련해서는 국회 외교위원장, 대학부총장 때도 초청을 받았으나 실현되지 못했는데 가능한 한 조기에 방한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태국 의장이 국회 외교위원장, 대한부총장 등을 지냈던 것 같았다. 그다음에 태국은 태국에 대한 투자를 증대해달라, 농산물 수입 시장을 개방해달라, 규제 완화를 희망한다는 요청을 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양국 통상장관회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한·태 통상장관 회담으로 배턴을 넘겼다. 그리고 EU·ASEAN 정상회담에 대해서 태국은 정상회담 구상에 찬성을 하고 내년 4월에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후 ASEM 제1차 회의는 태국에서 열리게 됐다. 

 

- 1995년 9월에 제50차 UN 총회에서 장관님께서 기조연설을 했다. 북한 인권 관련 언급을 하셔서 북한 측이 아주 세게 반발을 했었다. 
▲ 무려 두 시간 반 정도 남북 간 설전이 있었다. 

 

- 아주 오랜만에 일어난 것 같다. 그때 어떤 내용이 있었나. 
▲ 사실 저로서도 장관 취임 후 처음으로 UN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것이었고, 더욱이 그해가 UN 창립 50주년 기념이 되는 총회였다. UN 발족 50주년인 만큼 UN의 세계평화유지를 위한 노력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그 당시 70여 개국이 UN 평화유지군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러한 UN의 구체적인 평화유지 활동을 언급하면서 평가함과 동시에 한국도 UN 평화유지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실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당시 상비평화유지군을 만들겠다고 하는 안이 있었다. 1개 대대 병력을 기여할 용의가 있다는 이야기, 특히 800명 일개 보병대대, 공병부대, 의무부대 등을 상비군으로서 차출할 용의가 있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이야기했다. 

그다음에 코펜하겐 세계사회개발정싱회담에 대해서 우리 김영삼 대통령이 연설에 밝힌 것 같이 “아프리카의 어려운 나라들을 위해서 우리가 2010년까지 3만 명의 기술 훈련생을 양성하겠다”는 이야기를 상기시키면서 빈곤국가에 대해 기여하겠다는 결의를 다시 한번 천명했다. 그리고 이 총회 전에 마침 베이징에서 여성인권회의가 있었다. 그래서 베이징 여성인권회의를 언급하면서 “특히 여권 신장 문제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정책적 우선을 두고 있다”는 실정을 설명하고 동시에 “동포인 북한 인민들의 기본권이 보장되어야한다. 북한 사회가 개방을 해서 인권 문제가 개선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한 우리가 안고 있는 1,000만의 이산가족의 참상을 이야기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지금 자꾸만 세상을 떠나고 있다.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서로 생사를 확인하고 안부 전화라도 할 수 있는 통신이라도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느냐. 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하고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인권 문제 외에도 그때 당시 북한의 원자무기 개발도 문제였다. 그리고 세계에서 둘째 셋째 간다는 방대한 양의 화학무기 우리에게 큰 안보 위협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북한이 화학무기금지조약 협정에 가입할 것을 호소했다. 이때 사실 우리가 남북 대립의 격화라든가 남북 관계의 원활한 유지를 위해서 북한 인권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는데, 상황이 자꾸만 변해가고 더욱이 UN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이 확정된 마당에 인권 문제를 피하고 갈 수는 없게 됐다. 그래서 기조연설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하기 위해서 사전에 대통령의 구두 재가를 받고 구체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했다. 순수한 인권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자는 정부의 기본자세가 있고, 그 때문에 북한 인권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랬더니 예상한 것과 같이 북한이 기조연설이 끝난 후에 질의 답변권을 행사했다. 북한이 답변권 행사를 위해서 사무국에 발언권 신청을 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나는 물론 기조연설이 끝나고 나서 총회장을 떠났다. 당시에 이규형 참사관이 남아 있었는데, 북한 대표인 김창국 참사관이 공교롭게도 UN 과장이었다. 이규형 참사관도 마찬가지라, 두 사람이 UN 과장을 각각 다른 위치에서 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나서서 “북한은 사회주의체제가 완비되어 있기 때문에 인권 문제가 도대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다음에 “남한에는 사상전향 거부로 수십 명이 만델라보다 더 오랜 기간 감옥에 갇혀 있다” 그리고 “남한의 국가보안법” 그다음에 “휴전선에 콘크리트 장벽을 쌓아서 주민 간 통행에 장애를 주고 있다” 이런 해괴한 이야기를 하며 반론을 했다. 

그랬더니 이규형 참사관이 점잖게 국제사면위원회, 엠네스티인터네셔널 보고서를 인용해서 북한에는 정치점 수용소가 있고, 세계적으로 수용된 인사들의 이름까지도 나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실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정치수용소 문제를 거론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때 UN대표부에서는 북한이 답변권을 행사하면서 그 논쟁 가운데 나오게 되지 않겠느냐는 판단에 일부러 이 이야기는 기조연설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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