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李 정서에 당내 경선 불투명…‘탈당 vs 친문 구애’ 깊어지는 딜레마

- 이재명 독주체제 지속에 ‘탈당설’, ‘제3후보 등판설’ 등 수면 위로
- 친문 암초 극복 및 외연 확장 위한 탈당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 
- ‘친문‧친노‘ 지지 세력 등장으로 당 잔류 가능성에 더욱 힘 실려

이재명 경기지사(사진)는 당내 친문 세력의 견제로 당내 차기대선 후보 경선 무대에서 입지를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 마련에 부심 중이다. [뉴시스]
이재명 경기지사(사진)는 당내 친문 세력의 견제로 당내 차기대선 후보 경선 무대에서 입지를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 마련에 부심 중이다.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여권 제1대선주자로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해 민주당 친문 세력의 견제 수위가 연일 높아지고 있다. 이 지사의 ‘기본 시리즈’에 대해 이낙연, 정세균, 김경수, 임종석 등 친문계의 날 선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친문적통의 제3후보를 등판시키기 위한 당내 ‘경선 연기론’도 부각된다. 당장 여론 지지율은 이 지사의 손을 들어주고 있지만, 반이(反李) 정서가 강한 친문의 저항을 딛고 당내 경선이라는 가시밭길을 건너야 하는 이 지사로선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차기 대선까지 1년여를 남겨둔 상황에서 과연 이 지사가 민주당 소속으로 ‘불편한 동거’를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與 대선 후보 ‘이재명 독주체제’…수위 높아지는 내부 견제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22∼24일 전국 18세 이상 1천7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28%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11%)를 두배 이상의 격차로 누른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지율 7%로 그 뒤를 이었다. 2월 말 현재까지 이렇듯 ‘이재명 1강 구도‘가 지속되면서, 이 지사의 독주 견제를 위한 민주당 내 ‘반(反)이재명’ 당파 공세도 한층 격렬해지고 있다.  

‘기본소득‘ 견제로 시작된 친문 세력의 이재명 흠집내기는 점차 정략적 친문 카르텔로 외연을 확장해 가는 모양새다. 당내 최강 경쟁자로 꼽히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정세균 국무총리,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친문 적통 제3후보로 부각되는 김경수 경남지사까지 합류해 이 지사의 핵심 정책인 ‘기본 시리즈’ 협공에 나섰다.  

반이(反李) 세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김 지사는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지금 대한민국이 받아든 과제가 기본소득은 아니다“라며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붓는 것으로는 대선을 치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는 현 대세론을 부정하며 존재감을 내비치는 등 차기 대선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된다. 김 지사는 ‘드루킹 댓글 조작‘ 1‧2심 유죄 판결로 복잡한 상황임에도 정계에선 대선주자로서의 가능성과 파급력을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다.   

이에 이 지사는 “정당한 일을 포기하는 게 정치라면 그런 정치는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응수하며 정치적 소신을 지키는 것은 물론, 당파적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심중을 드러냈다.

김경수 경남지사(사진)는 여당 내에서 친문계의 지지를 받으며 차기 대선후보 잠룡으로 지목된다. [뉴시스]
김경수 경남지사(사진)는 여당 내에서 친문계의 지지를 받으며 차기 대선후보 잠룡으로 지목된다. [뉴시스]

같은 진보 진영 주류 계파의 집중 공세에도 불구하고 이 지사에게 유리한 형국이 지속되자, 민주당 일각에선 ‘경선 연기론’이 제기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오는 11월 대선후보를 결정짓는 국민의힘보다 일찍 전당대회를 치르게 되면 경선 흥행 등 전략적 측면에서 불리하다는 논리지만, 김경수 지사 등 친문 적통을 차기 주자로 내세울 시간을 벌기 위한 계산이 깔렸다는 해석에 더욱 힘이 실린다.
 
여당 한 관계자는 “민주당은 여전히 친문‧친노의 영향력이 큰 만큼, 당내에선 이 지사의 대세론을 불편해 하는 정서가 깔려 있다”며 “하지만 인위적으로 제3의 친문계 후보를 등판시킴으로써 차기 대선 후계구도를 갈아엎으려 한다면 내홍을 겪게 될 가능성도 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지사 측은 ‘당내 경선 연기론’에 힘이 실리는 데 대해 “유불리에 따라 정략적으로 경선 일정을 흔드는 순간 내전(內戰)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민주당 지도부는 경선 연기를 논의한 바 없다고 일축했지만, 친문계 의원들이 여전히 경선 일정 조정 건으로 투표를 주장하고 있어 당 내부적으로 뇌관을 품은 정국이 지속될 전망이다.   

친문 ‘계륵’ 직면한 이 지사, ‘탈당 vs 친문 구애’ 딜레마

이재명 지사는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독주하고 있지만 당내 경선은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결국 대권을 잡으려면 당적을 버려야 한다는 제언까지 나온다.

그러나 민주당 내 최대 계파인 ‘친문’의 지지 없이 이 지사가 당내 대선 후보 경선을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 지사는 지난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필두로 한 친문 진영과 난투극을 벌이며 간극을 좁히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이 지사가 탈당을 통한 외연 확장과 친문 구애를 통한 내실 다지기 사이에서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지난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 지사는 예비후보 토론에서 문 대통령에게 “대기업 준조세 금지법을 만들어 기업을 권력의 횡포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고 한 기억이 있는지, 그런가 아닌가로만 말하라“, “예전 발표문은 법정부담금이 분명히 포함돼 있는데, 말을 바꿨나“라며 대립각을 세웠다. 이 지사의 날 선 공격에 문 대통령은 “이재명 후보 질문에 유감스럽다“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때부터 문 대통령 지지층 사이에선 이 지사가 문 대통령을 몰아 세웠다며 반발하는 기류가 굳어졌다.

2017년 대선 민주당 경선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좌)과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우)가 시사프로그램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에 출연해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후보 예비후보자 합동토론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2017년 대선 민주당 경선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좌)과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우)가 시사프로그램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에 출연해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후보 예비후보자 합동토론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후 이 지사는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과 대립 구도를 가진 것에 대해 “되돌아보면 문 대통령에게 정말 싸가지가 없었고, 정치적으로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 행동들을 했었다“며 “되돌아봤을 때 선을 넘은 측면이 있었다“고 공개 사과했다. 여기에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 논란까지 겹쳐 이 지사를 향한 친문 지지층의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이 지사는 과거 친문 진영과 갈등한 이력이 지금은 ‘족쇄‘가 되고 있다며 회한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 지사의 당내 경선 순항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중대 요소다. 호남 지지 기반을 갖춘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 후보 당내 경선에서 이 지사와 대척점에 서게 될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로 꼽힌다. 

현재 민주당 권리당원 중 호남이 차지하는 비율은 30%에 달한다. 과거에는 호남 당원 비중이 50% 수준이었으나, 2015년부터 호남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민주당 내 호남의 영향력은 크다. 특히, 호남 지역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첫 호남 출신 대선 후보인 이 대표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당내 경선에서 이 지사가 이 대표와 맞붙게 될 경우, 호남 지역에서 만큼은 이 대표의 낙승이 점쳐진다. 더군다나 민주당이 4.7 보궐선거에서 대승할 경우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카드 실패로 와신상담하고 있는 이 대표의 입지는 크게 역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지금의 이 지사 독주체제가 무너지고 여권의 대선 후계 주도권을 다시 이 대표가 가져가는 흐름으로 바뀔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지사가 호남 당심을 끌어안기 위한 행보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도 꺼려지는 상황이다. 이 지사는 여권 경쟁 후보들에 비해 중도층과 보수층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이 지사의 중도·보수 지지층이 두터운 이유는 ‘비문(非文)’ 이미지 때문이다. 당내 경선을 의식해 당심 끌어안기에 나설 경우 기존 지지층이 이탈하는 역설적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야권에 거물급 대선 주자가 없다는 점도 ‘이재명 탈당설’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이 지사가 탈당해 여당 후보·야당 후보·이재명 3자간 대결 구도로 재편된다 해도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 지사의 ‘탈당설’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결국 민심은 당심을 이기게 돼 있다. 이재명 지사가 정치 신념을 일관성 있게 실현시키고 남은 경선까지 ‘기본 시리즈‘에 기반한 민생 중심의 정책 추진을 이어간다면 그간 서먹했던 친문·호남계도 지지를 보낼 것“이라며 “아직 군소적이지만 친문·호남 계열 인사들이 이 지사에 대한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민주당의 뿌리를 품겠다고 지금껏 닦아온 기반을 져버리면서까지 모험을 걸 이유가 없다“고 해석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영남 출신인 이재명 지사가 호남권, 친문계 대권 주자들보다 대선 무대에서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며 “만약 이번 보궐선거가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다면 이낙연 당 대표를 통한 민주 정권 재창출은 쉽지 않을 것인데, 그 표심이 어디로 가겠나. 결국 이 지사 입장에선 현상유지만 잘 해도 손해볼 것 없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지지표명 돌출…결국 ‘친노·친문·호남’ 민주당 뿌리에 실리는 무게추

당내 견제 심화와 정계 일각에서 불거지는 탈당설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 지사의 행보는 친문을 의식한 흔적이 보인다. 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서 “탈당설, 제3후보 등판설 등이 제기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는 질문에 이 지사는 “대통령 지지자들이 나를 압도적으로 지지하는데 왜 당을 나가겠느냐”고 강조한 바 있듯이 결국 당내 입지를 더욱 다지는 데 주력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게다가 이 지사를 지지하는 친문‧친노 인사들의 등장도 이 지사가 결국 친노를 포용하는 노선을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친문이자 ‘친노무현’ 당권파로 분류되는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와 정책조정회의 공개 발언을 통해 이 지사에게 힘을 싣는 목소리를 낸 바 있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달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남북한 정상 간 합의의 구속력 있는 실천을 위해 4·27 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안을 야당과의 합의로 이번 정기국회 내에서 처리하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이 지사가 그 전날 자신의 SNS를 통해 국회에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 비준을 처리해 줄 것을 요청한 지 불과 하루 만이다.

앞서 김 원내대표는 “지역 화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면서 지역 화폐의 실효성을 놓고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대치했던 이 지사의 손을 들어준 바도 있다.

이렇듯 친노·친문 세력은 이 지사의 차기 대권 가능성에 은연 중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한 친노계 의원은 “민주당의 다음 대권 주자는 우리 색을 좀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선명성 있는 인물이 돼야 할 것”이라며 “지금 민주당에는 이 지사만큼 선명한 인물이 없다”고 진단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를 공개 지지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이재명 경기지사를 공개 지지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여기에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텃밭인 호남 지역에서조차 민심 변화가 감지됐다. 지난 1월 광주를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민형배(광주 광산구을) 의원이 유력 대선주자인 이 지사에 지지 입장을 표명한 것. 민 의원은 비록 기존 친문과 결은 다르지만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자치발전비서관을 지낸 이력 등으로 신(新)친문계로 분류된다. 호남 지역 의원이 이 지사를 공개 지지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민 의원은 당내 친문 그룹인 ‘민주주의4.0‘에 이름을 올린 인사다. 이를 두고 친문이 분화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친문 그룹에서 이 지사 공개 지지가 나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민 의원은 “시대에 부합하는 사람, 시대적 과제를 잘 풀어나갈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이 지사가 시대 정신에 더 가깝다“고 평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