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대전(大戰) ‘못 참아’ 글로벌 최대 고객 ‘폭스바겐’ 중국 간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치열한 배터리 전쟁을 치르는 동안 폭스바겐이 배터리 정책 전환을 선언하는 등 중국 시장 확대에 나서면서, 어부지리로 중국 배터리 기업이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창환 기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치열한 배터리 전쟁을 치르는 동안 폭스바겐이 배터리 정책 전환을 선언하는 등 중국 시장 확대에 나서면서, 어부지리로 중국 배터리 기업이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전쟁이 식을 틈 없이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양사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가운데 글로벌 최대 자동차 기업인 폭스바겐이 전기차량용 배터리의 방향 전환을 선언했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 30%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산 배터리에 비상이 걸렸다. 이른바 K배터리를 선호해 온 글로벌 전기차 기업들이 LG와 SK의 장기적 다툼에 C배터리(중국산)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조지아 주(州) 공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양측의 공방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폭스바겐, 파우치형 K배터리 버리고 ‘각형’ C배터리(중국식) 전환 선언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공장 투자 의향 미국 내 ‘여론전’ 펴

19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배터리 특허소송 관련 예비 결정을 내달 2일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기존 계획보다 2주가 연기된 것으로 ITC는 “(예비 결정을 위한)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의 승소로 끝난 비밀침해 소송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세 차례 연기된 바 있었다.

업계 일각에서는 SK이노베이션 역시 2019년 LG에너지솔루션이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어 코로나19에 의해 연기가 된 앞의 사례와 다르다는 풀이도 나온다. 업계 전문가는 “특허권을 두고 SK가 LG의 제재를 요구하기도 했고, LG가 SK를 상대로도 맞소송을 제기했으므로 ITC가 ‘추가 시간’을 언급한 것은 이를 심도 깊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비춰진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 SK 조지아주 공장 투자 의향 밝혀

이런 가운데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조지아 주에 있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공장에 투자 의향이 있다는 뜻을 라파엘 워녹(Raphael Warnock) 美상원의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틀랜타 지역 신문 AJC는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이 워녹 의원에게 보낸 서한에 대해 “이제 LG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를 위해 조지아 주에 공장을 열 수 있다”고 보도했다. 
 
AJC에 따르면 김종현 사장은 “조지아의 주민과 근로자들을 돕기 위해 우리(LG)는 뭐든 할 준비가 됐다”며 “외부 투자자가 SK의 공장을 인수할 경우 우리는 파트너로서 공장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기차 배터리 수요 증가로 다수의 투자자들과 제조업체가 공장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LG에너지솔루션의 SK이노베이션 공장 투자 의향은 앞서 SK이노베이션이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에게 ITC의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수입금지 조처와 관련 거부권을 행사해 주기를 요청한 가운데 나왔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무책임하고 도를 넘어선 행위’라며 강한 어조로 항의의 뜻을 밝혔다. SK 측은 “LG가 미국이든 어디든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SK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만 실체도 제시하지 못한 투자 발표의 실제 목적이 경쟁 기업의 사업 방해를 위해 미국 정부의 거부권 행사 저지에 있다는 것은 미국 사회도 잘 알고 있다”며 “이는 오히려 미국 사회의 거부감만 증폭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측이 비밀침해 소송 결과에 따른 팽팽한 이견을 이어가는 가운데 폭스바겐이라는 복병이 등장했다. 폭스바겐은 지난 15일 배터리 내제화 및 유럽 공장 증설 등을 선언하며 그간 전기차량 다수에 사용하던 파우치형 배터리를 각형으로 전환해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소송과 여론전을 이어가고 있는 LG와 SK가 생산하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는 대부분 파우치형으로 그간 전 세계에서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의 전기차에 탑재되던 방식이다. 반면 각형은 중국계 배터리 기업인 CATL과 BYD 등이 채용해 자국 내 완성차 기업들에 공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LG와 SK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객을 놓칠 수 있는 순간에 직면했다.

미국무역위원회(ITC) 재판 장면. ITC는 이달 판결 예정이던 배터리 특허권 소송의 예비 결과를 내달로 미뤘다. (ITC)
미국무역위원회(ITC) 재판 장면. ITC는 이달 판결 예정이던 배터리 특허권 소송의 예비 결과를 내달로 미뤘다. (ITC)

폭스바겐, K배터리 전쟁 ‘고마운 일’

그간 이른바 K배터리로 대변되는 파우치형 배터리를 채용했던 폭스바겐이 현 시점에 배터리 전환 정책을 내건 것을 두고 이견이 있으나, 학계 및 업계 일부 전문가들은 LG와 SK의 지속적인 대립이 그 원인이라는 지적을 보이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폭스바겐 입장에서 향후 중국시장 확대를 위한 고민이 한 번에 해결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중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세계 1위로 120만6000대를 넘었다. 2위 국가인 독일과 미국, 프랑스, 영국의 판매량을 모두 합쳐도 110만대에 머문 것을 비교하면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이런 중국 시장에서 폭스바겐이 입지를 넓히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 및 인프라 확대가 절대적으로 뒷받침 돼야만 한다. 

업계 관계자는 “폭스바겐으로서는 중국시장 공급 확대 기회를, 중국 배터리 업체는 글로벌 최대 규모의 수요자를 얻게 됐다”며 “폭스바겐이 배터리 정책을 전환한 데 대해 LG와 SK의 소송전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나 폭스바겐이 맘 편히 중국 배터리 경쟁사가 제공하는 배터리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법적 다툼은 아직도 남아 있다. 양사가 서로를 두고 ITC에 소송을 제기한 특허침해 건과 델라웨어 법원에 제기한 소송 건이다. 올해 안에 모든 소송이 끝날지도 알 수 없다. 최대 고객사 가운데 하나인 폭스바겐이 떠나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어느 고객이 K배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LG와 SK, 고래의 싸움에 승자는 없다. ‘K배터리 붕괴는 시간문제’라는 인터넷 댓글에 ‘좋아요’가 달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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