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文 레임덕’…참여연대‧민변‧경실련 “쇠락한 정부, 초심 찾아야”

서성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가 LH 임직원 등 공직자 투기 의혹과 관련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서성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가 LH 임직원 등 공직자 투기 의혹과 관련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 LH 직격탄에 文 정부 휘청…진보 단체들 ‘내적 쇄신’ 자성 요구 빗발
- 경실련, 야당과 정책협약 체결 움직임도…‘정권 불신‘ 따른 후속조치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거국적 ‘촛불시위’를 동력원으로 드라마틱한 정권 교체를 이뤄 냈다. 이는 국민들의 공정과 정의에 대한 이상, 부패와 반칙에 대한 분노가 대한민국 정치 판도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이렇게 태동한 문 정부는 국정 운영의 핵심 기치로 ‘공정(公正)’, ‘정의(正義)’를 전면에 내세우며 민심을 품어 왔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LH 사태로 진보 가치를 위시했던 현 정권의 근본과 지지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인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핵심 지지층의 반발이 그 방증이다. 여기에 진보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현 정부에 대한 ‘작심비판’ 여론마저 들끓으면서, 이미 청와대의 레임덕은 진행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시민단체의 변심은 콘크리트 지지층의 집단 이탈을 암시하는 만큼, 4‧7 보선과 대선을 앞둔 문 정부와 여당으로선 큰 난관이다. 본지는 문 정부와의 괴리에 맞닥뜨린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를 통해 거세지는 진보진영 내 분화 양상을 조망해 봤다.

정권의 쇠락은 흔히 대통령과 정책 기조에 반기를 들거나 질책하는 여당 또는 지지층 등 내부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LH사태 뇌관이 터진 지금의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참여연대정부’, ‘민변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의 두터운 지지를 얻었던 문 정부는 잇따른 부동산 정책 실패와 공직자 성추문, 공기업 비리 등으로 곁을 지켰던 우군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특히 현 정부 출범에 기여도가 높은 진보 시민단체들의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 부동산 투기 의혹 제기는 문 정권 레임덕을 앞당긴 촉매제가 됐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지난 26일 기준 취임 후 최저치인 34%(한국갤럽 조사, 표본오차 ±3.1%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는 전주와 비교해 긍정평가가 3% 떨어친 수치로, LH‧부동산 문제로 인한 진보 지지층의 이탈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는 지난 2일 2018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2년2개월 동안 LH 임직원과 임직원 배우자 등 14명이 시흥시 과림동, 무지내동 일대 7천 평가량의 토지 지분을 나눠 매입했다는 정황을 폭로했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큰 허탈감과 실망을 드렸다”는 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도 이들 단체는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의 조사 결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LH 의혹을 추가 폭로하는 등 문 정부 압박을 강행하고 있다.     

민변‧참여연대, “공과 엄중히 따져야” 文 정부 향해 경고

민변(民辯)과 참여연대의 이번 LH 폭로는 공기업의 해묵은 비리 구조를 짚어내고, 현 정부를 향한 경고성 직언(直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효주 참여연대 간사는 “LH 건을 폭로한 것은 공정과 정의를 지향하는 대승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지,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질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LH 의혹을 제기하기에 앞서 정치적 판단이 왜 없었겠냐마는, 보궐선거나 대선을 의식해 발표를 늦춘다거나 입을 닫는 것은 우리 단체의 소신과는 맞지 않다”고 설토했다.

또 그는 “현 정부를 기본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공과 과는 엄중히 따져야 한다”며 “이번 사태를 묵과하거나, 사후처리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각종 비리와 불공정 사례로 얼룩진 전 정권과 다를 게 무엇이냐”고 덧붙였다.

지난 2일 첫 기자회견에서 LH 투기 의혹을 제기했던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인 이강훈 변호사는 “LH 투기 의혹은 합동조사 결과에서도 나왔듯이 여러 명이 떼 지어서 벌인 일인 만큼, 개인적 일탈로 보기 어렵다. 폭로 전 실시한 자체 조사에서도 의혹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더군다나 국내 부동산 개발을 담당하는 유수의 공기업에서 사내 정보를 이용한 조직적 투기가 일어났다면 단순히 직원 몇 명을 징계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을 사안은 아니라고 봤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LH 의혹을 최초 제보한 것은 민변 측으로, 활동가 단체인 참여연대와 공동으로 LH 의혹을 추적하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민변 한 관계자는 “최근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들 사이에선 문 정부에 대한 불만이 크다. ‘촛불정부’로서 제대로 소임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LH 폭로에 앞서 정치적 이슈를 두고 민변이나 참여연대에서도 고심했던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치부를 알려, 말기 들어 ‘촛불 정신’이 퇴색해 버린 문재인 정권과 여당을 향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경실련 및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정책 협의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경실련 및 국민의힘 관계자들이 정책 협의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실련]

경실련, “거듭된 부동산 정책 실패에 실망…‘가짜 진보’만 남아”  

현 정권을 향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의 비판도 매섭다. 경실련은 25회에 걸친 부동산 정책의 거듭된 실패를 차치하더라도, 검찰개혁 외에는 이렇다 할 치적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큰 상실감을 안고 있다.

경실련은 문 대통령 임기 초부터 부동산 정책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 지난해 경실련은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만 무려 50여 회 가졌다.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도 경실련 측은 문 정부 출범 이후 4년 동안 25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지만 시세 안정은커녕 서울의 경우 아파트 매매가가 한 채당 5억 원(78%)가량 올랐다고 적시하며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꼬집었다.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은 “처음 1~2년은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정부 정책을 지켜보자는 취지였지만 지난 2019년부터는 부동산 상황이 심상찮아서 문제점 지적에 적극 나섰다”며 “이에 정부는 지금까지도 묵묵부답이다. 문 정부에 기대를 걸었던 만큼 실망도 크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과연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정권이 맞는지 의문스럽다. ‘촛불집회’로 뭉쳤던 초심을 잃은 것 같다. 검찰 개혁에 매진한답시고 재벌 개혁이나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해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며 “임기 동안 도대체 뭘 했는지 알 수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같은 사람들이 자기 잇속 챙기기에만 바빴지, 그렇다고 서민들을 보살피기를 하나. 이런 사람들을 두고 일명 ‘짝퉁 진보’라고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렇듯 현 정권에 대한 반발 심리가 극에 치달은 경실련은 4‧7 보선을 앞두고  야당과의 정책협의에 나섰다. 지난 17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및 공직자 투기 근절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등과 서울‧부산시장 보선 정책을 논의하는 정책 간담회를 가진 데 이어, 22일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근절 및 청렴한 공직사회 실현을 위한 5개 의제를 포함한 정책협약을 맺었다.

경실련 한 관계자는 “문 정부 치하에서 급등한 부동산 시세로 국민 정서가 예민한 가운데 ‘공공기관 비리’까지 터지면서 민심의 역린을 건드렸다”면서 “최근 야당과의 정책 협의는 문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후속조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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