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 아닌 ‘권고’ 방식…민간 부문 실효성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조합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모든 병원·돌봄노동자에게 백신접종 확대와 백신휴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1.03.25.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조합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모든 병원·돌봄노동자에게 백신접종 확대와 백신휴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1.03.25. [뉴시스]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지난 1일부터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이상반응이 있으면 ‘백신 휴가’를 쓸 수 있게 됐다. 접종 다음 날 의사 소견서 없이도 하루 휴가를 쓰고 이상반응이 계속되면 하루 더 추가해 최대 이틀 사용이 가능하다. 공공부문 종사자는 각 사업·시설 여건에 따라 병가나 유급휴가, 업무 배제 등 조치를 받게 된다. 정부는 기업 등 민간 부문에선 임금 손실이 없도록 별도 유급휴가를 주거나 병가 제도가 있으면 이를 활용하도록 권고·지도하기로 했다. 하지만 백신 휴가가 제도화 되지 않고 ‘권고 수준’에 그쳐 자영업·소상공인·비정규직·프리랜서 등은 사실상 백신 휴가 사용이 어려울 것으로 보여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정규직·특고노동자·프리랜서 하루만 쉬어도 생계에 타격
소득·일감 보전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사실상 무용지물

지난달 3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접종 후 이상반응이 나타난 접종자는 의사 소견서 없이도 신청만으로 휴가를 받을 수 있다. 접종 다음 날 하루 휴가를 쓰고, 이상반응이 계속되면 추가로 하루를 더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일반적인 접종 후 이상반응이 2일 이내에 호전되며, 만약 48시간 이상 지속될 경우에는 의료기관에 방문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다만 이러한 백신 휴가가 접종자 전원에 대한 ‘의무휴가’가 아닌 ‘권고휴가’여서 민간 부문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우려가 있다. 특히 민간 기업이나 자영업·소상공인 등은 휴가를 사용하기가 쉽진 않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현재 입장과 달리 백신 휴가를 논의하던 초기에는 이를 제도화하는 방안이 검토된 바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접종에 참여하도록 백신 휴가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총리가 직접 나서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에 제도화 방안을 조속히 검토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백신 휴가를 제도화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 민간 부문, 정규직·비정규직 사용 쉽지 않아

지난 달 17∼23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부당한 경험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19.5%가 “연차 휴가 사용을 강요받았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코로나 검사도 연차를 쓰라고 강요하는데 백신 휴가를 허용할 사용자가 얼마나 되겠나”라며 “직장인들은 백신 주사를 맞지 않거나 주사를 맞고 이상증상이 있어도 출근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코로나 검사 휴가를 회사 자율에 맡기거나 백신 휴가를 ‘권고’하는 방법으로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노동자의 건강을 지킬 수 없다”며 “유급병가, 상병수당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관계자는 지난 1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민간에서는 강제 조치가 아닌 권고안이기 때문에 사용이 어려울 것”이라며 “의료연대 안에도 여러 병원사업장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공공병원이 아닌 사립대학·민간 병원일 경우 반드시 백신 휴가를 줄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차 접종을 한 보건의료인들이 곧 2차 접종도 하게 되는데 이때 이상반응이 생기더라도 휴가를 받을 수 없게 된다. 1차 접종 때 이 부분이 문제라고 지적했음에도 감염병예방법을 개정한다며 결국 권고로 그치는 건 문제가 있다”며 “권고는 사실상 아무런 효과가 없다. 특히 앞으로 국민들이 전체적으로 맞게 된다면 그중에서도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등은 당연히 휴가를 쓰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대체 인력이 부족해 교대 근무를 하는 의료 부문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의료연대 관계자는 “이번에 의료인의 접종 기간을 너무 짧게 잡아 접종하고 다음 날 쉬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어 아파도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며 “9-6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최소 금요일에 맞고 다음 날 쉴 수 있지만 의료 인력은 교대 근무 때문에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조합이 한 병원에서 순회를 돌며 조사해 보니 전체 65%가량이 각자 차이는 있지만 증상이 있다고 호소했다”며 “일을 하기 어려운 경우 병가를 부여해야 하는데 연차를 깎아 버리곤 했다”고 덧붙였다.

장지혜 서울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프리랜서나 용역이나 도급 계약인 분들이 백신 휴가를 보장받는 데는 분명 어려움이 있다. 이는 민간 기업의 정규직도 마찬가지로 어느 근로자든 간에 의무가 아닌 권고 수준이라면 휴가 사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 같은 경우는 소득 보전이나 일감 보전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사실상 효과성이 떨어질 거라고 보인다”고 강조했다. 

장 위원장은 “청년노동자의 경우 물류센터나 배달라이더 일을 하는 비정규직이나 일용직노동자가 많은데 이들은 하루만 쉬어도 생계랑 직결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오늘 쉬면 다음에 갔을 때 일을 배정받을 수 없는 상황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권고 조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의무 휴가면 누구나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좀 더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 비정규노동센터 관계자도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얼마나 사용 가능할지 의문이다. 효과적일 것 같진 않다”며 “예를 들어 비정규직이 많은 영세사업장은 이 사항을 지킬 수 있을지 고려해 봐야 한다”고 했다. 김용신 한국일용근로자복지협회 명예회장은 “일당을 받는 일용근로자는 대부분 생계 때문에 아파도 쉬지 못해 백신 휴가를 쓰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들 같은 경우 임금의 일부라도 지원해 주는 등 생계 어려움을 대비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책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나 가사 노동에 종사하는 주부 등에 대해서는 휴가를 부여할 방법을 마련하기 어렵다”며 “현 상황에서 의무 휴가를 적용한다면 오히려 (직업·업종별)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 부문의 백신 휴가 활성화 유인책과 관련해선 “상위 경제 단체나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 등과 함께 기업의 협조를 끌어낼 계획”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도 (직원들이) 얼마나 많이 백신을 접종하는가가 작업 현장의 안전성·생산성과도 직결되는 측면이 있어 큰 애로가 있을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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