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 ‘반도체 대책 회의’ 판 커지나

사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24일(현지시간) 백악관 다이닝룸에서 반도체 등의 미국 공급망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급망 안정을 위해 동맹과 협력할 것을 분명히 했다. [뉴시스]
사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24일(현지시간) 백악관 다이닝룸에서 반도체 등의 미국 공급망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급망 안정을 위해 동맹과 협력할 것을 분명히 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차량용 반도체 부족현상으로 시작된 전 세계 반도체 대란이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 해결을 위해 삼성전자, 글로벌파운드리, 제너럴모터스(GM) 등 관련 업계 관계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긴급대책회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이 주체하는 이번 회의에는 앞서 언급했던 기업들만 참석이 유력했으나, 인텔까지 이번 회의 참석에 언급되면서 예상보다 판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와 함께 반도체 공급난 파장은 완성차업계의 타격을 시작으로 가전·정보통신(IT)·컴퓨터 생산업계로도 번지고 있다.

백악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초청… 삼성전자, 화상회의 참석에 무게

공급난 원인 다양한 의견… 수요 예측 실패·기상 이변·미중 갈등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2조2500억 달러(한화 약 2542조5000억 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이 중 500억 달러(약 56조4500억 원)를 반도체 분야에 투입한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의회는 지난 1월 국방수권법(NDAA)을 통과시키면서 반도체 연구개발(R&D) 및 투자에 연방정부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후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검토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대규모 지원을 예고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024년까지 투자비 40% 수준을 세액공제하고 ▲반도체 인프라와 R&D에 228억 달러(약 25조7100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히며 공격적인 투자를 예고했다.

- 투자 압박·공급망 재편?
  삼성, 회의 초청에 촉각

이달 백악관은 인텔, 삼성전자, 글로벌 파운드리, GM 등 10여 개 반도체 관련 업계 관계자를 초청해 반도체 공급난 대응책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삼성전자를 초대한다는 소식에 국내에서도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백악관 반도체 긴급대책회의 참석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9일 삼성전자는 코로나19 상황과 함께 초청 공문도 최근에 받아 출장단을 직접 꾸리기 어렵다고 판단해 화상으로 참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 최시영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장 등이 회의에 참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 관계자는 “누가 참석하는지, 화상으로 할지 여부 등이 확인이 안 되고 있다”고 말하며 구체적인 공식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현재까지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와 함께 백악관의 초청이 일차적으로는 반도체 공급 부족 문제 때문이나,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에 투자를 앞둔 삼성에게 반도체 투자를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이다.

반면 백악관이 주체한 이번 대책 회의가 사실상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위해 각 기업들에 투자 제안서와 지원 방안을 내밀 가능성도 크다고 보고 있다. 실제 지난 2월 미국 의회 공식 자문기구이자 인공지능(AI) 기술 분야 정책연구소인 ‘국가인공지능안보위원회(NSCAI)’는 바이든 행정부에 “선진 첨단 기술을 소유한 대만과 한국 기업이 미국에 많은 공장을 설립할 수 있도록 이들 국가와의 무역·투자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 반도체 대란 이유는?
  세 가지 원인 분석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이자, 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글로벌 반도체 대란 사태의 원인을 수요예측 실패, 전 세계 기상 이변, 미중 갈등으로 분석했다.

주된 원인으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자동차 수요가 급감할 것이 예상되자 자동차 업계에서 반도체 주문을 줄였고, 차량용 반도체 생산량도 결국 줄어들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지난해 말부터 경제 회복과 함께 중국시장을 중심으로 신차 주문이 쏟아지면서 최근 완성차 업계는 차량용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일부 공장 조업을 중단하는 사태에 빠졌고, 반도체 재고가 부족한 현상을 겪게 됐다. 이는 결국 수요 예측 실패가 전 세계 차량용 반도체 대란을 촉발한 것이다.

최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기상 이변도 원인으로 꼽혔다. 지난달 24일 대만은 56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맞게 되면서 물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대만 정부는 저수지의 저수량이 고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도체 제조 허브를 포함한 지역에 물 공급을 줄였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물 공급 부족 상태가 장기화하면 반도체 생산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공장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지난 1일에는 TSMC 12공장 변전소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전문가들은 공장 재가동까지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본 최대 차량용 반도체 업체 르네사스도 지진‧화재 등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외신들은 공장 복구까지 약 3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의 기록적인 한파에 따른 전력 부족으로 오스틴 공장 가동을 6주간 멈췄다. 이에 주요 경제 매체들은 “오스틴 공장 가동 중단으로 반도체 공급난이 더욱 심화했고 전체 공급망으로 파장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갈등도 이번 글로벌 반도체 대란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손꼽힌다. 대만의 TSMC 마크 리우 회장은 최근 대만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미중 관계 불확실성이 반도체 공급망 변화로 이어지면서 일부 기업들이 재고 확보를 위해 주문을 크게 늘린 것이 반도체 품귀 현상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미중 갈등으로 반도체 공급 부족을 우려한 기업들의 사재기가 결국 품귀현상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대란 전 세계 강타②] 반도체 공급난에 국내 기업 직격탄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는 국내에서 현실화됐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코나’에 들어가는 카메라 반도체 부족으로 울산1공장 가동이 이달 14일까지 중단된다. 또한 주력 차종인 쏘나타와 그랜저를 생산하는 아산공장도 감산 및 조업 중단을 두고 노사와 협의 중이다. 아반떼를 생산하는 울산3공장은 일본 르네사스 공장 화재로 납품을 줄이면서 생산 중단 직전까지 갔다. 자동차 부품업계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GM 부평2공장이 50% 감산 여파로 말리부 등에 장착되는 트랜스미션을 만드는 보령공장은 이번 달에 총 9일만 공장을 가동한다. 보령 공장 휴업 이유는 주요 수출 지역인 브라질,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완성차 조립 라인이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주문량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도요타와 폭스파겐, 포드, GM, 혼다 등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은 이미 연초부터 줄줄이 일부 공장을 닫거나 생산을 줄이는 상황이다.

반도체 부족은 완성차 업계뿐만 아니라 가전·정보통신(IT)·컴퓨터 생산업계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LG전자는 첫 미니LED TV인 ‘LG QNED’를 오는 5월 말 출시한다. 당초 4월 둘째 주로 예정했으나 해당 제품에 들어가는 LCD 패널 수급이 원활하지 않자 한 달 이상을 미루게 된 것이다. 지난 9일 LG전자에 따르면 LCD 패널에 탑재되는 핵심 부품을 만드는 공급사가 반도체 공급난의 이유로 수급 조절에 돌입했다. LCD 패널 값이 자연스레 비싸지면서 LG전자는 무리해 구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LG전자 관계자는 “LCD 패널용 반도체 부품 수급난이 미니LED TV 생산 계획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LG QNED 출시는 5월 말로 잠정 연기된 상태”라고 말했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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