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 달러 이상 수익 거둔 기업만 과세하는 방안도 고려
펜실베니아 와튼스쿨 “증세 정책 시행되면 2031년 美 GDP 0.8%↓”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업 법인세 인상과 관련해 언급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업 법인세 인상과 관련해 언급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프라 투자 정책의 일환으로 제시한 기업 법인세율 21%에서 28%로 인상하는 데 집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부의 반발을 고려한 행보로 풀이된다.

지난 7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은 2조2500억 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를 위한 증세 필요성에 대해 연설하면서 “보다 낮은 법인세율을 고려할 것인가를 두고 기꺼이 말을 들으려 한다”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공화당과 협력할 것이라는 입장도 강조하면서 “28%라는 수치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애초 바이든 정부가 목표로 삼았던 28%보다 낮은 수준의 법인세율에도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입장으로도 해석된다.

지나 러만도 상무부 장관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28% 법인세율과 관련해 현 정부는 충분히 타협의 여지를 가지려 한다”라며 바이든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날 미국 재무부가 공식 발표한 ‘미국형 세금 계획’ 자료에서도 당초 계획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는 항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재무부는 과세 소득이 거의 없는 20억 달러 이상의 장부상 이익을 거둔 기업에 대해 15%의 최저세율을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 경우 적용 대상 기업은 약 180개에 이르며, 실제 과세가 될 기업은 45곳에 그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당초 1억 달러 이상 이익을 내는 기업에 적용하려던 계획을 전면 수정한 것이다.

S&P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에 따르면 애초 계획했던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내는 상장기업의 수가 1100개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대상 자체가 대폭 축소된 셈이다. 바이든 정부는 또한 과세 대상 기업이 R&D(연구개발)‧재생에너지 및 저소득 주택에 적용되는 세금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기업 투자를 장려하는 차선책도 내놨다.

바이든, 의회 반발 의식해 ‘증세 강경론’ 한 수 접어

바이든 정부가 법인세율을 28% 인상하는 데 있어 강경론을 폈던 것과 대조적으로 이처럼 태도를 바꾼 것은 공화당 및 민주당 내 일부 의원을 포함한 의회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화당의 극렬한 반대와 함께 민주당 내 대표적 초당파 의원인 조 맨친은 “28%의 법인세율이 지나치다. 25%가 적정하다”면서 “이 의견에 동조하는 민주당 상원의원이 6~7명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 상원 의석수가 50석에 불과한 상황에서 맨친 의원이 반대하면 바이든 대통령의 법인세율 28% 인상 계획은 추진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법인세율 인상 협상에 대한 의견과는 별도로 이날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적극적으로 기업 증세와 인프라 투자 필요성을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면한 문제를 넘어 거시적 관점에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라며 “디지털 인프라나 연구개발(R&D) 투자를 급격히 늘려가고 있는 중국이 언제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중국과의 경쟁을 위해서라도 인프라 투자 계획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그는 “이 세대는 민주주의와 독재국가 간의 경쟁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독재국가들은 민주주의가 결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통합을 이뤄내지 못한다는 데 베팅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잘 작동한다는 걸 세상에 보여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과 공화당은 우리 법안에 대해 나름대로의 셈법이 있을 것이다”라며 “타협은 불가피하며, 언제든지 토론할 준비가 돼 있고, 그에 따른 조정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다”면서 공화당과 타협 의사를 내비쳤다.

바이든 행정부는 최고 법인세율을 기존 21%에서 28%로 올리는 법안을 마련해 의회 통과를 추진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35%에서 21%로 낮춘 것을 일부 되돌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중간선인 28%를 제시한다. 이마저도 2차 세계대전부터 2017년까지 기간 중 가장 낮은 세율”이라며 “세율 인상은 향후 15년간 1조 달러의 추가 세수를 일으킬 것”이라고 소개했다.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월스트리트저널 외고와 언론 브리핑을 통해 “기업 감세가 미국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바는 미미하다”라면서 “우리는 스위스, 버뮤다와 세율 인하 경쟁을 펼치는 한편, 첨단 인프라와 유능한 인재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재무부가 발표한 자료에는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을 21%로 올리고 미국 제조업의 아웃소싱을 초래하는 조항을 폐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재무부는 미국 기업의 해외 소득에 21%의 세율을 부과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아울러 지난 2017년 기업 감세가 대폭 이뤄지면서 국가적으로 경제 이익이 크게 줄었으며, 외국인 투자자가 이익의 상당 부분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기업들은 바이든 정부의 이번 증세 계획에 전면 반대하며 법인세 인상이 국내 투자와 미국 기업의 글로벌 비즈니스 경쟁력을 해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기업인연합 측은 “미국 기업에 비경쟁적인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큰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이는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억제시키면서 글로벌 경쟁력에서도 큰 손실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 스쿨의 분석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의 증세 계획은 기업의 투자 인센티브를 감소시키고 인프라, 연구개발 및 기타 투자를 위축시킬 전망이다. 특히, 바이든 증세 정책이 시행되면 미국의 GDP는 2031 년에 0.9% 감소하고, 2050년에는 0.8%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미 행정부는 미국 기업의 해외 소득에 대해 최소 21%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침을 다른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만약 이를 채택하지 않는 국가의 경우 미국에 들어와 있는 자국 기업에 대한 세금공제 혜택에서 제외시킨다는 세부 계획도 포함돼 있다. 지난달 G-20 가입국의 재무 장관들이 참석한 회의에서는 글로벌 기업에 대한 과세 방식 개편의 일환으로 올해 중반까지 기업 최소 세율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당시 회의를 주재한 다니엘 프랑코 이탈리아 재무 장관은 회의 후 “옐런 장관이 최저 금리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그녀의 제안은 G-20의 야망과 일치한다”며 “올해 이탈리아는 미국의 세금 정책 기조에 동의하며 G-20에서 최종 합의는 오는 7월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문답에서 향후 의회에서 반도체 부족 사태에 대응하는 법안도 발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초당적 그룹이 3, 4주 전 컴퓨터 칩 문제로 찾아와 ‘우리는 공급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며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가 관련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원문 -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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