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심사에 군 경력 인정하지 마라” 정부 공문에 ‘역차별’ 논란

[뉴시스]

 

[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정부가 공공기관들에 ‘군 복무 승진 우대 폐지’를 권고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미 일부 공공기관들은 승진 자격 기간에 군 복무 기간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내부 반발이 예상된다. 이미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에서는 정부의 권고를 따르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다. 특히 해당 제도가 국책은행까지 번지게 되면서 국책은행들은 정부의 권고에 따라 관련 인사 규정 변경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직장인 익명게시판 등에는 남성 직원들이 불만을 대거 토로했고 반면 여성 직원들은 환영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상반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정부가 남녀 갈등을 부추긴다며 비판하고 있다.


한전·한수원 이어 산업·수출입·기업은행까지 수용 검토

성별‧세대 넘나들며 논쟁...민주당은 등 돌린 민심 잡기

남녀평등 논쟁과 갈등을 불러일으킨 이번 방안은 지난 1월 기획재정부(기재부)가 권고하면서 시작됐다. 기재부는 ‘승진심사 시 군 경력을 인정하지 말라’는 공문을 산하 기관에 보낸 바 있다. 기재부의 이 같은 권고는 고용노동부가 호봉에서도 군 복무기간을 인정하는데 승진심사에도 반영한다면 이중 혜택이라고 행정해석하면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산하기관에 “군 경력이 포함되는 호봉을 기준으로 승진 자격을 정한다면 남녀고용평등법을 어길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어 ‘필요 시 정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 기재부, 권고 공문 발송
  공기관 “검토·확정 예정”

정부의 권고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었다. 지난 15일 한수원은 직원 승진심사 시 군 복무기간을 반영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수원 관계자는 “4직급(대리·과장급)에서 3직급(차장급) 승격을 위한 응시자격 기간에 군 복무기간 산입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이를 반영한 ‘인사 관련 규정 및 지침 개정안’을 이달 중으로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한수원은 4직급에서 3직급으로 승진할 시 필요한 재직기간에 군 복무기간까지 넣어 채울 수 있었지만, 더는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다만 한수원은 군 경력 반영 폐지 영향으로 승진시험 응시 인원이 급감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응시자격을 기존보다 1년 단축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전력공사(한전)는 “현재 입사 전후 군 경력을 승진 자격 요건에 반영하고 있으나, 이는 근로기준법 제6조와 남녀고용평등법 제10조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제6조에는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받지 못하도록 하고, 남녀고용평등법 제10조는 승진에서 남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 복무 승진 우대 폐지는 국책은행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국책은행들이 기재부 권고에 따라 관련 인사 규정 변경을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내부 직원들 간의 갑론을박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은), IBK기업은행 등에서도 정부의 권고 방침을 따를 방침이다. 지난 16일 업계 등에 따르면 수은은 정부 지침에 따라 폐지를 검토 중이다. 수은 관계자는 “기존 입사자에게 일률 적용하는 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지침을 이행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길지 검토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수은의 경우 군 경력을 실 근무 기간으로 인정하고 호봉도 승진에 연동된다. 수은의 초기 직급은 ‘G3’로, 군필자가 G3에서 다음 직급(G3책임)으로 승진하는 속도는 미필자보다 빠르다. 기업은행의 경우 군 복무 경력을 호봉에 적용하지만 승진심사 때는 군 경력을 보지는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은행도 정부의 권고 사항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승진 앞두고 날선 반응
  등 돌린 ‘이남성’ 달래기

국책은행에서는 군대를 제대한 남성 직원은 호봉을 군대 경력만큼 인정해줘 승진 인사에서도 그만큼 앞서 왔다. 정부의 권고 방침을 기업들이 따른다면 승진심사에서 군 경력 인정을 적용 받았던 남성 직원들의 반발은 예고된 상황이다. 직장인 익명게시판 블라인드 앱 등에서는 국책은행에서 근무하는 일부 남성 직원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남성 직원들은 “군 경력 인정을 남녀 차별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의견과 함께 “군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남성은 승진이 늦어진다”며 군 경력 승진 우대 폐지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반면 일부 여성 직원들은 “호봉만 인정하면 되는 게 아니냐”라는 의견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동기보다 승진이 2년 이상 늦어지는 차별적 인사 규정이 이제라도 개선되는 게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남녀갈등과 더불어 세대갈등도 보이고 있다. 특히 2030세대 남성들은 이전 선배 세대들은 군 경력을 인정받아 승진했지만, 이번에 정부가 제도를 변경한다면 피해는 결국 후배 세대들이 떠안게 됐다며 불만은 가중되고 있다.

한편 정부는 군 경력 승진 우대 폐지를 권고하고 있음에 반해 여당인 민주당은 ‘군가산점 재도입’을 제시하면서 정부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일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가운데 2030세대, 특히 20대 남성들이 여당에게 등을 돌린 것이 이번 보궐선거 참패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른바 ‘이남자’로 불리는 20대 남성들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에게 70%가 넘는 몰표를 주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여당이 20대 남성들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15일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공기업 승진평가에 군 경력 반영을 의무화하는 법안(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여당은 문제로 지목됐던 남녀고용평등법에 걸리지 않게 ‘제대군인지원법’상에 공기업 및 공공기관이 의무복무자의 군 경력을 승진평가에 반드시 반영하도록 했다. 전 의원은 승진평가에 군 경력 반영과 더불어 “군 가산점 재도입에 대한 논의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여당과 정부의 입장 차가 확연히 차이를 보이면서 군대 문제라는 민감한 사안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