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지원비만 年 6880만 원 ‘혈세 펑펑’…자격증 시험문제 유출 심각

한국산업인력공단 [뉴시스]
한국산업인력공단

- 최근 3년간 체육행사에 2억5천만 원 지출…적자에도 행사비 증액
- 전문학원과 출제자 간 시험문제 암거래 횡행…공단, “단속 어려워”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한국산업인력공단(이사장 김동만)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방만한 예산 운영을 지적 받으며 재정 부문의 청렴도가 문제로 떠올랐다. 공단의 일회성 내부 행사에 1억 원이 넘는 거액을 쓰는가 하면, 수차례 직원들에게 선심성 수당까지 행사지원비 명목으로 뿌린 것이 밝혀져 공분을 샀다. 여기에 공단이 관리하는 국가공인 자격증 시험문제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심지어 출제자가 직접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는 등 내부 비리가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일요서울이 한국산업인력공단의 방만 경영 실태와 자격증 시험문제 관련 비리의 실체를 추적해 봤다.

지난해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지난 2018년 자체 체육행사에 유명 가수 초청 등에 1억7500만 원을 사용했다”며 “여기에 사내 족구대회에 무려 3900만 원의 예산을 흥청망청 쓴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산업인력공단은 최근 3년간 세 번의 체육행사에서 총 2억5000만 원의 예산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웅래 의원실의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연도별로는 2018년 1억7500만 원, 2019년도 3900만 원, 지난해 6월까지 3000만 원을 체육행사 명목으로 집행했다.

특히 2억 원 가까운 예산이 집행된 2018년 어울림 한마당 체육행사에는 1000여 명의 직원이 참여한 가운데 가수 지원이 씨를 비롯해 총 3팀의 초대가수가 등장했다. 당시 행사에는 상품 및 경품에 총 2300만 원, 모자‧우산‧수건 등 기념품으로 3600만 원이 쓰이며 총 6000만 원 상당의 물품이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지급됐다.

또 2019년에는 직원 500여 명이 참여한 족구대회를 개최하면서 행사 기획비로만 2000만 원을 들여 수의계약을 진행한 데 이어, 공단 직원들에게 1인당 여비를 10만 원씩 지급하는 데 총 3900만 원의 예산을 썼다.

재무 적자에도 행사지원비는 해마다 늘려

본지가 공공기관 통합 정기고시 보고서를 직접 조회한 결과 해당 예산은 복리후생비 중 행사진행비로 분류돼 사용됐으며, 문제가 됐던 2019년에는 직원 1785명에게 총 6880만 원의 행사지원비가 지급됐다. 이는 전년(3088만 원)과 비교해 예산이 두 배가 훌쩍 넘는 규모로 책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공단의 매출은 1조1253억 원으로 전년(1조3370억 원)에 비해 2117억 원가량 줄었다. 게다가 공단은 2018년 111억400만 원의 영업 손실을 본 데 이어 이듬해인 2019년에도 총 82억8700만 원의 손실을 봤다. 이런 가운데 행사지원비는 대폭 증액한 것으로 확인돼 국민 혈세를 남발한 방만 경영 실체가 드러났다.

이와 관련, 한국산업인력공단 한 관계자는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지난 국정감사 이후 행사지원비 예산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며 “특히 행사 개최에 따른 예산 지출 합리화에 중점을 두고 개선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재무 건전성을 높이는 데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공인 자격증 시험 관리 소홀, 문제 유출 등 심각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구조적 문제는 방만한 예산 운영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공인 자격증 시험 일정을 급작스럽게 바꿔 응시자들에게 혼선을 준다거나 시험문제를 자격증 전문 학원에 팔아넘기는 등의 이슈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기능장 시험 일정을 잡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공단에서 진행하는 전기기능장 시험에 참여한 응시자 K씨(28, 서울 구로구)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전기기능장 실기시험에 응시했다. 얼마 뒤 K씨는 실기시험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게 됐다. 기능장 시험은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 2년 내 실기시험까지 합격해야 최종 합격으로 처리된다.

K씨는 마지막 기회였던 상반기 실기시험에서 탈락한 관계로 하반기 필기시험에 재도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불합격 통보를 받고 즉각 하반기 필기시험에 응시하려 했으나, K씨는 시험 일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상반기 실기시험 발표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하반기 필기시험이 끝나버린 것.

당시 제보자는 공단 측에 이러한 상황을 설명했지만 공단 측에서 돌아온 답변은 “본인이 공지사항을 확인하지 않은 탓이기 때문에, 특별히 공단 측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였다.

지난 13일 일요서울과 대면한 K씨는 “통상적으로 필기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실기시험을 본다. 또 실기시험에서 떨어지면 다시 필기시험을 보는 순서로 진행한다”면서 “그러나 이번 시험은 실기시험 발표 전에 필기시험이 끝나 버렸다. 어떤 응시자가 자신이 실기에서 떨어질 것을 미리 예측하고 실기시험 도중 하반기 필기시험에 응시하겠느냐”고 토로했다. 

국가공인 자격증 시험문제 출제자-학원 간 ‘암거래’ 횡행 

국가공인 자격증 시험문제가 전문 학원 등에서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다는 제보도 받을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한국산업인력공단 시험문제 출제자인 O씨(72, 서울 영등포구)는 “전기‧가스 기능장 분야에서 다년간 시험문제를 출제했다”면서 “기능장 자격증 취득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전문 학원들 중 일부는 공단 내 출제자에게 상하반기 시험문제를 사전에 넘겨받는 조건으로 수백만 원을 사례한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혔다.

또 그는 “저 역시도 학원들로부터 그런 제안을 수차례 받았으나 거절했다”며 “심지어 미용 등 타 분야의 출제자들 중에는 3~4 곳의 학원들과 정기적으로 시험문제를 알려주는 조건으로 돈을 받는 계약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제보했다.

이렇듯 국가공인 시험문제 유출의 심각성이 도를 넘는 실정이지만, 정작 시험의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공단 측은 이에 대한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공단 관계자는 “시험문제를 유출한 출제자들의 경우 엄중한 문책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들을 실질적으로 단속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라며 “자격증 전문 학원들에 대해서도 시험문제 유출 건과 관련해 단속의 메시지를 담은 공지를 매년 전달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이 때문에 해마다 시험문제 출제에 있어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출제자들에 대한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면서 “추가적인 시험문제 유출 사고를 막기 위해 출제자 선정에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계획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월에는 한 직업훈련기관의 원장이 목공 장인을 뽑는 국가시험 문제를 몰래 빼냈다가 적발돼 기소된 바 있다. 당시 출제 기관의 자문위원이 시험 문제를 몰래 빼돌려 이 원장에게 건넸던 것으로 드러나 산업인력공단의 공인 자격증 관리감독 체계에 대한 지적이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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