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언정치·대변인 사퇴 논란에 X파일 확산까지 악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서울 중구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을 둘러본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서울 중구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을 둘러본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 국힘, 이준석 돌풍에 자강론 확산…윤석열에 ‘반신반의’
- 윤석열 리스크 대비해 최재형·김동연 몸값 급부상
- 여야 차기 지형 흔들흔들…위기의 민주당 집중 견제

[일요서울 l 김준석 언론인] “이대로 가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어렵다. 지난 대선에서 중도하차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플랜B로 최재형 감사원장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띄워야 한다. 우리로서는 잃을 게 없는 꽃놀이패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더불어 차기 대선 지지율 1위를 고수해 온 최강 주자다. 다만 최근에는 미묘한 균열이 일어났다. 기나긴 잠행을 이어가던 윤 전 총장은 최근 대선캠프 대변인 사퇴와 X파일 논란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또 메시지 전달을 측근에 의존하는 이른바 ‘전언정치’에 대한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플랜B’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X파일의 파급력과 후폭풍이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대선에서 보수세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중도하차를 선택하면서 겪었던 악몽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항마의 선두주자는 최재형 감사원장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다. 탈원전 감사로 주목 받은 최재형 원장과 흙수저 성공신화의 김동연 전 부총리는 고분고분한 관료 출신이 아니라 청와대와 정면충돌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정치적 맷집을 갖췄다.

고심을 이어 온 최 원장 역시 정치도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오히려 리스크가 큰 윤 전 총장보다는 최 원장이 낫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김 전 부총리 역시 대중강연을 통해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조만간 저서 발간을 계기로 정치 입문을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볼 때 사실상 ‘꽃놀이패’다.

최 원장과 김 전 부총리가 가세할 경우 ‘윤석열·최재형·김동연’으로 이어지는 황금 트로이카 체제가 구축된다. 최악의 경우에도 최 원장과 김 전 부총리가 가세할 경우 유승민·홍준표·원희룡 등  국민의힘 내부 주자들과의 경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전언정치 피로감’ 윤석열, 내우외환 시달리며 지지율 하락세 

윤 전 총장은 지난 3월 초 검찰총장 사퇴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검찰총장 퇴임 이후 정권교체의 기수로 떠오르면서 정치적 위상이 수직 상승했다. 다만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정면대결도 마다하지 않던 칼잡이로 유명했던 윤석열의 정치적 행보는 180도 달랐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신중한 스타일이 된 모양새다. 검찰총장 퇴임 이후 공개 행보는 극도로 자제한 채 100여 일 동안 각 분야 전문가와 ‘대권 수업’에 열중했다. 윤 전 총장의 잠행이 길어지면서 크고 작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전언정치’의 부작용이다. 주요 정치적 현안에 대해 윤 전 총장 본인의 육성을 통해 분명한 입장을 전달하기보다는 대변인을 통한 메시지 전달에 의존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 입당 여부와 관련해 중대한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또 대선캠프 운영을 둘러싼 잡음도 적잖다. 윤석열 1호 인사였던 이동훈 전 대변인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전격 사퇴한 것이다.

이 때문에 주요 정당의 전략과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사무총장과 같은 대선캠프 내 컨트롤타워 부재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윤 전 총장의 뜻을 대변할 수 있는 확실한 2인자가 없다면 불통 논란과 메시지 혼선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의 하락세는 지지율에서 드러난다. 한국갤럽·리얼미터 등 주요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 윤 전 총장은 이재명 지사와 더불어 앞서거니뒷거서니 선두를 다투고 있다.

다만 일부 조사에서는 위험 수위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사가 공동 실시한 6월 4주차 전국지표조사(NBS·National Barometer Survey)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직전 조사보다 4% 포인트 하락하면서 2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반면 라이벌인 이 지사는 2% 상승한 27%를 기록하면서 오차범위 밖으로 윤 전 총장을 따돌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총장의 상승세에 눌려 있던 유승민 전 의원, 국민의힘에 복당한 홍준표 의원이 보수진영 내부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것도 부담이다. 차기 지지율은 미약하지만 정치판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거물들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러브콜에서 거리두기’ 국민의힘, 이준석 돌풍 이후 자강론 확산

윤 전 총장이 하락세를 겪으면서 국민의힘 내부 기류도 달라지고 있다. 4.7 재보선 이후부터 6.11 전당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반드시 윤석열이어야 한다”는 이른바 ‘윤석열 대망론’이 강했다. 너도나도 ‘윤석열 모시기’에 나섰다.

다만 전대 이후로는 스탠스가 다소 바뀌었다. 더구나 윤 전 총장은 이른바 적폐청산의 일환으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사태에 책임이 있는 만큼 태극기세력 등 강경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도 부담이다. 이 때문에 윤 전 총장에 대한 강력한 러브콜은 어느 정도 거리두기로 선회한 느낌이다.

특히 전언정치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대권주자라면 본인의 소신과 비전을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밝혀야 하는데 여전히 낡은 정치문법을 고집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전언정치는 과거 YS(김영삼 전 대통령)나 DJ(김대중 전 대통령)이 군사정권에 의해 가택연금 등으로 정치활동을 전혀 할 수 없을 때 측근이나 가신이 주군의 입장을 대신 전달한 것”이라면서 윤 전 총장이 보다 공개적이고 적극적인 메시지 전략을 가져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 마디로 윤 전 총장의 오리무중 행보와 전언정치의 부작용 탓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도 커지고 있다. 이 밖에 정치권을 뒤흔든 ‘윤석열X파일’ 논란도 윤 전 총장의 부상을 경계하는 야권 내부의 작업이라는 카더라 통신마저 확산될 정도다. 

국민의힘 내부의 기류 변화는 이준석돌풍에 따른 자신감도 반영돼 있다. 헌정사상 최초의 30대 중반 정당 대표 탄생에 여론이 열광하면서 국민의힘은 연일 상승세다.

당 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선 것은 오래고 일부 조사에서는 국정농단·탄핵사태 이전인 40% 지지율을 회복했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6.11 전당대회 당시만 해도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합류와 대선 경선 참여를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 대표가 강조했던 8월 대선버스 정시탑승론’이 대세가 됐다.

이는 국민의힘이 4.7 재보선에서 겪었던 학습효과의 여파다. 특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당시 지지율이 높았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영입론이 컸지만 결과적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민의힘 내부 경선과 후보 단일화 과정을 거쳐서 선거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뉴시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뉴시스]

‘윤석열 대항마 부상’ 최재형·김동연, 文정권 맞선 장외 블루칩

국민의힘은 플랜B로 최 전 원장과 김 전 부총리를 눈여겨보고 있다. 윤 전 총장의 대세론에 맞설 대항마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 탓이다. 물론 최 전 원장과 김 전 부총리의 차기 지지율은 아직 미약한 수준이다. 다만 본격적인 정치 입문과 차기 도전을 선언할 경우 중도층으로 외연 확장 가능성은 윤 전 총장보다 파괴력이 더 클 것이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특히 최 전 원장은 최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여야를 통틀어 5위를 기록했다. 정권의 외압에도 흔들림 없이 관료로서의 소신을 지킨 점이 국민적 평가를 받은 것이다. 특히 정세균 전 국무총리, 유승민 전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여야의 기존 정치 거물들을 단숨에 제쳤다. 정치권 입문 시 지지율 추가 상승도 가능한 대목이다.

이에 따라 최 전 원장의 정치적 보폭도 빨라지고 있다. 최 원장은 지난 18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본인의 대권 도전 여부와 관련, “제 생각을 정리해서 조만간에 모든 분에게 말씀드릴 기회를 갖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대권 도전에 무게를 둔 발언이다. 최 원장은 조만간 감사원장을 사퇴한 뒤 국민의힘 입당이나 차기 대선 도전을 선언할 것으로 전해졌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와 관련, “최 원장이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본다. 혹시 아직까지 의지가 없다면 제가 나서서라도 좀 나와 달라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기호 2번으로 나가야 당선된다”고 러브콜을 보냈다. 

김 전 부총리도 무시 못할 카드다. 킹메이커인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한때 ‘김동연 대망론’을 띄울 정도였다. 이는 고졸 흙수저 성공신화의 상징으로 ‘공정’이 최대 화두로 떠오른 대선판에서 매력적인 후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 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전문가의 이미지를 갖춘 것도 플러스 요인이다. 김 전 부총리는 현 정부 초기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소득주도성장 및 최저임금 문제로 논쟁을 벌이며 소신발언으로 정치적 존재감을 키운 바 있다.

김 전 부총리는 최근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경선 참여 요청에 “그건 그분의 생각이실 것”이라며 선을 그은 바 있다.

김 전 부총리는 “대한민국 경제가 어려운 것은 과거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먼저 질문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남이 강요하지 않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유쾌한 반란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재형 감사원장 [뉴시스]
최재형 감사원장 [뉴시스]

최재형·김동연 부상에 차기 지형 요동…민주당도 적극 견제구

최 원장과 김 전 부총리의 부상에 야권은 물론 차기 대선 지형 자체가 요동치면서 여야의 셈범도 복잡해지고 있다. 강 건너 불구경했던 여권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에 대해 나쁘지 않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차기 지지율이 아무리 높아도 대선이 본격화되면 이른바 ‘X파일’ 검증 국면을 통해 낙마시킬 수 있다는 논리였다. 여권 안팎에서 이른바 ‘윤나땡(윤석열이 야권 대선후보로 나오면 땡큐)’이라는 우스개가 유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상황은 달라졌다. 이른바 ‘윤석열 리스크’를 우려한 국민의힘이 대권주자군을 다양화하자 여권도 ‘배신론’을 꺼내들었다. 특히 최 원장과 김 전 부총리의 정치 입문이 가시권에 접어들면서 그야말로 집중 견제가 쏟아지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고도의 도덕성과 중립성을 생각하면 좀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고 비판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임기 중 박차고 나와 대선에 출마한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오버랩된다”고 비판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 역시 “출마 같은 정치적 행위를 위해 임기를 채우지 않는 것은 조직에 마이너스”라고 비판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정치권 한 관계자는 “화살통에 화살촉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격언대로 최근 상승세를 타는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유력 대선후보군을 다양화하는 게 효과적인 전략”이라면서 “경선 연기 논란으로 극심한 홍역을 치르는 민주당과 비교할 때 국민의힘의 상승세는 당분한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최재형 감사원장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차기 도전 및 입당이 분명해질 경우 국민의힘도 윤석열 카드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보다 전략적인 고려에 나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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