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女배구, 세계 4위 터키 꺾고 9년 만에 4강 진출 쾌거
4개월간 외출·외박 끊고 훈련 매진한 것이 결실로 이어져
김연경 득점·공격효율·수비 모두 상위권 랭크되며 맹활약

4일 오전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 대한민국과 터키의 경기, 대한민국 김연경이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4일 오전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 대한민국과 터키의 경기, 대한민국 김연경이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배구 여제(女帝)’ 김연경(33·중국 상하이)이 이끄는 한국 여자 배구 올림픽 대표팀이 9년 만에 올림픽 4강 무대에 다시 오르게 됐다.

지난 4일 대표팀은 일본 도쿄 아리아케 경기장에서 열린 터키와의 8강전에서 세트스코어 3대2(터키-한국: 17-25, 25-17, 28-26, 18-25, 15-13)로 격전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지난 2012 런던올림픽에서 4강, 2016 리우올림픽에선 8강까지 올랐던 대표팀은 9년 만에 메달을 노릴 수 있게 됐다.

앞서 대표팀 기대주로 꼽혔던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올 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학교 폭력’ 논란으로 대표팀에서 강판되면서, 올림픽을 앞둔 대표팀에도 암운이 드리웠다. 이는 올림픽에 앞두고 개최된 각종 국제대회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사기 저하 등으로 침체된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 4개월 동안 김연경을 구심점으로 한국 대표팀은 외출·외박을 반납하고 훈련에 매진한 결실을 맺는 모양새다.

이에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이 지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 이후 45년 만에 메달을 손에 쥐게 될 지 관심이 집중된다. 대표팀은 6일 브라질·ROC(Russian Olympic Committee, 러시아올림픽위원회)전 승자와 준결승전을 치른다.

4개월의 구슬땀이 빚어낸 4강의 기적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은 리우 올림픽에서의 쓴 패배를 설욕하는 데 성공했다. 외출·외박까지 반납하며 4개월간 가다듬은 ‘원팀’ 정신이 터키전 승리를 견인했다는 평가다.  

지난 4일 한국팀에 맞선 터키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지오반니 구이데티(49·이탈리아) 감독으로, 그는 지난 2016 리우올림픽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을 지휘했다.

배구계에서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가로도 정평이 난 그는 터키에서 지난 2008년부터 바키프방크의 감독을 맡고 있다. 8시즌을 터키 리그에서 활약한 바 있는 김연경에게도 익숙한 얼굴이다.

구이데티 감독은 2016 리우올림픽에서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을 맡아 한국을 8강에서 좌절시켰다. 지난 4일 있은 8강전이 한국 대표팀에겐 사실상 명예 회복전인 셈이다.  

세계 랭킹 4위 터키에 맞선 한국 대표팀(세계 랭킹 14위)도 이탈리아 출신 배구계 명장으로 꼽히는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과 세자르 에르난데스 수석 코치 영입으로 컨트롤타워가 탄탄하게 보강됐다. 

특히 세자르 에르난데스 수석 코치는 바키프방크에서 구이데티 감독을 보좌한 경험이 있는 만큼, 터키 선수진 사정에 훤하다. 이를 적극 활용해 이번 올림픽 대표팀 선수진을 구성하고, 전술을 최적화했다.

여기에 한국팀 선수들 사이에서도 반드시 김연경의 마지막 올림픽이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는 각오까지 더해져 조별 리그에서 강팀으로 꼽히는 도미니카 공화국, 일본 등을 연파하며 메달까지 바라보게 됐다.

4일 오전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 대한민국과 터키의 경기, 대한민국 김연경이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뉴시스]
4일 오전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 대한민국과 터키의 경기, 대한민국 김연경이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뉴시스]

진격의 터키전, 김연경의 맹활약

초반은 한국팀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공격수 평균 신장이 191cm인 터키는 속공과 고타점 스파이크로 첫 세트를 먼저 가져갔다. 하지만 한국은 2세트부터 강력한 서브로 터키 후방을 뒤흔들며 매서운 역공을 차단했고, 터키 공격진의 타점이 낮아지는 등 공세가 둔화되며 2세트를 가져왔다.

이후 3세트에서도 한국팀은 터키에 듀스를 허용했지만 접전 끝에 24-22로 3세트를 따냈다. 4세트는 다시 터키가 분위기를 가져갔다. 터키가 재차 장신을 활용한 역공에 나섰고, 한국팀은 고전했다. 하지만 라바리니 감독은 5세트를 고려해 정지윤·박은진·안혜진 등 막내들을 적절하게 교체 투입, 한국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하면서도 터키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빼놓는 전술을 구사했다. 

대망의 5세트는 한국팀의 날카로운 서브가 승부를 결정지었다. 10-10 동점 상황에서 박은진이 예리한 서브로 터키의 리시브를 흔들며 한국의 연속 득점을 리드했다. 이에 터키 선수들 사이에선 경기가 끝나기 전부터 눈물을 보이는 광경도 연출됐다.

결국 김연경의 마지막 스파이크가 터키 진영을 꿰뚫으면서 한국팀이 5세트 15-13으로 세계 최강 터키를 무너뜨렸다. 

김연경은 이날 터키전까지 총 6경기에서 115점을 기록해 득점 2위에 올랐다. 공격 102득점, 블로킹 9득점, 서브 4득점을 각각 기록했다. 공격 효율도 김연경은 35.02%로 전체 선수 중에서 5위를 차지했다. 수비 부분에서도 김연경은 상위권에 랭크되며 이름값을 했다. 디그 4위(세트당 2.63개), 리시브 8위(성공률 60.94%)로 공수 균형이 탁월하다고 평가되는 대목이다.

김연경은 이날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잠긴 목소리로 “오늘이 마지막 올림픽 경기가 될까 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서 한 시간쯤 겨우 눈 붙였다가 오전 5시 반에 일어났다”면서 “저는 한 게 없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와줘서 너무 고맙다. 팀 분위기는 2012 런던 때보다도 더 좋은 것 같다. 그 누가 우리가 이번에 4강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우리 열두 명 선수가 정말 한 몸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한국팀은 6일 준결승과 8일 결승전 또는 동메달 결정전을 남겨두고 있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 이후 45년 만의 쾌거를 이루게 될 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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