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BBK 의혹, ‘같지만 다른’ 대선 정국 희대의 블랙홀

110억원 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8.07.10. [뉴시스]
110억원 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8.07.10. [뉴시스]

- 의혹 쟁점화 시점, ‘키맨’ 중심의 전개 흐름 등 공통분모 
- 이명박, BBK에도 靑 입성...대장동 논란 ‘無실체’ 화약고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BBK가 어떻다고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지난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의 절절한 외침이다. 당시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 조작’ 의혹은 최대 화두로 떠오르며 17대 대선을 내내 달궜다. 여권은 BBK 의혹을 고리로 주도권을 쥐고 야당 후보에 대한 파상 공세를 폈고, MB는 해당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당해 12월 MB의 주가 조작 공모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20대 대선을 앞둔 현재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이 대선판을 뒤흔들 초대형 뇌관으로 급부상한 가운데, 과거 대선 정국을 대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던 BBK 의혹과의 묘한 교차지점이 주목된다.

대선 기간이면 불거지는 유력 후보들의 비리 의혹은 어느덧 단골 이벤트가 됐다. 정권 유지·탈환을 위한 여야의 정쟁적 요소를 넘어 국민들로 하여금 좌절감과 불신을 안겨주는 한국 정치사의 굵직한 치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대선 후보의 의혹 검증은 필수 코스다. 진실을 통해 진정한 리더를 가려내는 것 또한 국민들의 권리이자 의무다.  

차기 대선 정국에서 역대급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도 예외는 아니다. ‘이재명 게이트’냐 ‘국민의힘 게이트냐’를 놓고 연일 여야 난투극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당 의혹에 대한 검·경 수사에 정치권의 촉각이 곤두서있다. ‘특검 도입’도 대장동 논란을 관통할 핵심 키워드로 꾸준히 거론된다.

대선 최대 의혹 ‘대장동·BBK’의 공통분모는

이렇듯 대장동 의혹이 차기 대선 정국의 블랙홀이 되면서, 대장동 이슈에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격랑을 일으켰던 BBK 사건을 투영하는 정치권 시각이 나온다.

내년 대선까지 5개월가량 남겨 둔 가운데 대장동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2007년 대선을 5개월 앞둔 당시에도 검찰이 BBK 의혹에 대한 전면 수사에 착수했다. BBK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견고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 역시 대장동 의혹의 본령으로 지목되고 있음에도 지지율을 지켜내고 있다. 

대장동 이슈는 14년 전 대선 정국을 강타한 BBK 사태와도 공통분모를 두고 있다. 사안이 복잡하고 관련된 인물이 많아 사태의 본질 파악이 어렵다는 점과 압도적 지지율을 보유한 대선 후보들이 핵폭탄급 의혹의 복마전으로 지명됐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의혹 쟁점화 시점과 ‘키맨’이 진실 규명의 단초가 된 표면적 흐름도 궤를 같이한다. 대장동 이슈는 BBK와 마찬가지로 당내 대선 경선이 도화선이 됐다. 의혹에 연루된 핵심 관계자가 해외로 도피한 것도 일맥상통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열세에 있었던 박근혜 후보 측은 미국 LA의 연방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김경준 씨와 접촉하기 위해 법조인을 직접 파견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결국 대선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이후 본선에서 바통을 이어받은 대통합민주신당은 BBK 카드로 이 후보를 압박했다. 정동영 후보 측은 BBK 실소유자 의혹을 재차 꺼내 들었고, 공교롭게도 대선을 한 달 남겨둔 11월16일 김경준이 국내로 송환됨에 따라 BBK 정국이 본격화됐다. 

대장동 논란에서도 이른바 ‘스모킹 건’으로 지목되는 관계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천화동인 4호 소유주인 남욱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유 전 본부장은 구속 기소됐고, 미국으로 도피했던 남욱 변호사는 귀국해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아울러 화천대유의 대주주인 김만배 씨와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 소유주)도 검찰 수사망에 들어 있다. 검찰은 대장동 개발 사업의 핵심 인물인 이들 4명이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린 진술을 쏟아내고 있는 만큼, 고강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추가 조사 이후 김 씨와 남 변호사의 구속영장도 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BBK 맹폭에도 청와대 입성한 이명박

BBK 의혹이 쟁점화된 것은 지난 17대 대선에서 MB가 후보로 출마하면서다. 2007년 BBK 실소유주 의혹을 최초 제기한 것은 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박근혜 후보 측과 친박계였다. 당시 박 후보 측이 다스가 BBK라는 신생 투자운용사에 190억 원이라는 거금을 투입한 배후로 MB를 지목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이후 대선 5개월가량을 앞둔 2007년 7월6일 이 후보의 부동산 은닉 의혹 사건이 서울지검 특수 1부에 배당된 데 이어, 도곡동 땅 매입·매각대금이 이 후보의 것이라는 의혹마저 제기되자, 이 후보는 제기된 의혹들을 전면 부인했다. 같은 달 20일 이 후보는 접전 끝에 박 후보를 2452표 차로 꺾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이 후보는 대선 본선에서도 ‘BBK 주가조작’ 의혹으로 계속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50%대의 견고한 지지율을 유지하며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압도했다.

결정적으로 BBK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 특수1팀은 17대 대선을 약 열흘 앞둔 시점에서 이 후보의 BBK 의혹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냈다. 결국 이 후보는 당시 대선에서 1149만2389표를 얻어 617만4681표를 얻은 정동영 후보에 압승을 거두며 17대 대통령에 당선,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당시 정 후보 측은 BBK 네거티브 전략을 적극 구사했음에도, 당시 정권 교체 기류가 강한 상황에서 BBK 의혹은 이 후보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지 못했다. 더군다나 네거티브로 점철된 선거 전략이 되려 이 후보를 부각시키며 정 후보에게 악재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여기에 BBK 관련 검찰 수사가 ‘무혐의’로 결론난 것도 이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탄력을 불어 넣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재명 경기지사 [뉴시스]
이재명 경기지사 [뉴시스]

‘럭비공’ 대장동 의혹, 이재명의 운명은  

정치권 일각에선 ‘대장동 의혹’이라는 화약고를 품은 차기 대선이 17대 대선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돈다. BBK 의혹이 정국을 달궜던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과반수 지지율을 유지했던 것과 같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도 구설수에 흔들리지 않고 압도적 지지율을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야권발 정권 교체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이 지사의 외연 확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팽배한 가운데, 2007년 당시 MB 만큼의 지지율 수성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만만찮다.  

특히 대장동 게이트는 현 대선 정국의 역린과도 같은 부동산 이슈에 연루된 관계자들이 여야를 초월한 스펙트럼과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향후 검·경 수사 등을 통해 그 실체가 밝혀질 경우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2007년 대선 국면에서의 BBK 검찰 수사는 ‘MB 면죄부’로 귀결되며 당시 대선판도에 변수가 되지 못했지만, 대장동 의혹의 경우 이 지사의 최측근으로 지목되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최근 기소된 만큼 검찰 수사의 칼날이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향할 수 있다. 다만 유 전 본부장에 대한 ‘배임’ 혐의가 제외된 것은 이 지사가 대장동 검찰 수사망에서 빗겨갈 만한 요소로도 꼽힌다.

대장동 게이트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역학구조가 얽히고설킨 역대급 규모의 부동산 비리 사태로, 향후 사건 전개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난망한 측면이 있다. 이에 대선을 불과 5개월여 남겨 둔 상황에서 대선 투표 전 검·경 수사를 통한 실체 규명이나 야권이 주장하는 ‘대장동 특검 도입’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차기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집권여당 대세 후보가 연루된 사건에 대해 사정기관의 ‘정무적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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