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앙 젤러(Florian Zeller)감독의 2020년작 영화 <더 파더(The Father)>치매(癡呆 또는 痴呆)’에 걸린 노인의 공포스럽고 당혹스런 혼란과 절망스러운 일상을 잘 그려냈다. 이 영화에서 치매에 걸린 80대 노인을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Anthony Hopkins)는 실제로 1937년생, 80대 노인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딸이 겪는 모습에서 현실의 치매간병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국내에서도 치매를 다루며 많은 이들을 심금을 울린 12부작 TV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있다. “주어진 시간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여자와, 누구보다 찬란한 순간을 스스로 내던지고 무기력한 삶을 사는 남자. 같은 시간 속에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두 남녀의 시간이탈 로맨스라는 드라마의 소개문처럼, 사랑을 연기하는 치매에 걸린 김혜자와 한지민의 연기는 참으로 아름답고, 슬프고,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치매는 영화나 드라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고 때론 참혹하다.

치매(Dementia)의 어원은 라틴어로 Dement, ‘정신이 없어진 것이라고 한다. 치매는, 한 인간의 영혼이 사라져가는 무서운 질병이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치매 환자 급증으로 이어진다. 간병하는 가족이 겪는 고통은 물론이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한 코로나바이러스는, 가뜩이나 고립된 치매환자들을 더욱더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켰다. 아득히 멀어져 가는 기억의 실타래가 꼬이고 꼬여 다시는 풀지 못할 족쇄가 된 경우는 얼마나 많았을까. 안에서 타인에게 보살핌을 받는 환자나,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가족이나 다들 치매라는 병동에 갇힌 포로 신세다.

이미 치매 환자는 12분에 1명씩 발생하고, 치매 관리에 드는 사회적 비용은 연간 약 14조 원에 이르며,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 85세 이상 노인 2명 중 1명이 치매 환자이다. 생산가능인구(1564) 100명이 돌봐야 하는 치매 노인은 20171.9명에서 20304.0, 206014.8명으로 우리 국민의 치매 부양 부담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이 대부분 간병 등 사후적 조치들이다. 이런 조치들은 비용도 비용이지만, 한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해서도 최선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새롭고 담대한 발상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기술적으로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시대를 앞당기자는 말이다.

지난 2019년 황교안대표 때, 자유한국당은 <민부론>을 발표했었다.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다양한 주제와 내용을 담은 이 <민부론>에 치매정복 프로젝트가 실려있다. 치매환자에 대한 근본적 치료방법 개발을 통해 사회적 비용을 없애거나 줄이고, 이를 통해 전세계 치매인구를 대상으로 한 국부창출로 연결시키자는 담대한 비전이었다. 핵심은 향후 10년간 연 1조씩 총 10조원을 치매치료제 개발 및 예방 프로그램 도입에 투자하자는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돈만 낭비하고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 제기도 있을 수 있겠지만, 현재 국내의 치매관련 연구개발 상황을 살펴보면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라고 본다.

결국 우리가 먼저 해낼 수 있다는 리더의 신념과, 그 신념에 뜻을 함께하는 기업과 대학 연구소들이 힘을 하나로 모은다면, 치매는 충분히 정복할 수 있는 질병이라고 확신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