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윤사랑 기자]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정면 충돌하면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모두 국민 통합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와 반대로 양측의 기싸움이 본격화되면서 진영 갈등도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첫 회동이 무산되면서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양측의 회동 무산이 신·구 권력 갈등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 당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 당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MB 사면·인사 문제 때문?’, 첫 회동 무산에 갖가지 추측 난무
- ‘·구 권력 갈등 예고편전망윤석열 정부 출범 후 더 격화우려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초박빙 승부가 펼쳐졌던 20대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리고 이제는 신·구 권력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대선이 0.73%p 차이로 승부가 갈리면서 대선이 끝난 이후에도 신구 권력이 협치하지 않고 갈등을 겪을 경우 국민통합은 물건너 가고 진영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 모두 대선이 끝난 이후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첫 회동이 무산되면서 향후 신구 권력의 통합과 협치의 길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과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지난 16일 청와대 오찬 회동을 불과 4시간 앞두고 회동 무산 소식을 알렸다.

-첫회동무산은 누구 탓?

박경미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실무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회동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고 밝혔고, 김은혜 대변인 역시 브리핑에서 오늘 회동은 실무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 일정을 미루기로 한 이유에 대해서는 양측 합의에 따라 밝히지 못함을 양해해 달라고 전했다.

그동안은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이 대선이 끝난 후 열흘 안에 만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선 뒤 9일째인 18일 현재까지도 회동 일정이 다시 잡히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7년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이명박 당시 당선인이 대선 9일만인 1228일 만났다. 2012년에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의 회동은 대선 9일 만인 1228일 성사됐다. 물론 첫 회동이 보름을 넘긴 경우도 없지는 않다. 1992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당선인은 대선 후 18일 만인 199315일 회동한 바 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첫 만남이 회동 당일 무산되면서 정치권에서는 갖가지 추측이 난무한 상황이다. 우선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이명박(MB)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입장차가 거론되고 있다. 윤 당선인 측은 문 대통령과의 회동 이전부터 MB 사면을 요청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하며 MB 사면 문제를 핵심 의제로 띄우기 시작했다.

윤 당선인 최측근인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의 동시 사면론까지 거론했다. MB 사면 문제는 현 여권 지지층에서 극렬하게 반대하는 사안이다. 첫 회동 이전부터 논쟁적 요소가 많은 MB 사면 문제가 핵심 의제로 거론되면서 문 대통령이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MB 사면 문제가 논란이 되자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반발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박주민 의원은 지난 16MBC라디오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취임한 후에 결단, 판단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문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을 지우지 말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마무리 되기 이전 진행되는 인사 문제도 그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31일 임기가 종료되는 한국은행 총재 선임 문제도 회동 취소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회동 무산 이전부터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말 공공기관 인사를 두고 긴장감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낙하산·알박기 인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공격했고,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최근 브리핑에서 꼭 필요한 인사의 경우 저희와 함께 협의를 진행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업무 인수인계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 당선인의 최측근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라디오 방송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에 대해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라며 사실상 자진 사퇴를 압박한 것이 청와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추측도 있다.

또 민정수석실 존폐 문제도 양측의 갈등을 부추긴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4일 안철수 인수위원장 등과의 차담회에서 민정수석실 폐지 방침을 밝히며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신상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지금 정부에서 하지 않았던 일을 민정수석실의 폐지 근거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회동 무산에 대해 사전에 논의하는 과정에서 당선인 측의 대단한 무례함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점령군 행세하는 모습 때문에 불발된 것 아닌가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과의 첫 만남을 앞두고 가장 시급한 민생 문제가 아닌 사면 문제 등이 핵심 의제로 거론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YTN에서 무슨 공공인사 문제 포함해서 너무 민감한 정치 문제를 가지고 서로 처음부터 충돌한다는 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절대 아니다국민들이 정말 절실히 요구하는 게 뭔지를 가지고 민생에 대한 것들을 우선으로 하고 그 다음 사면 문제라든지 해야 되는데 순서가 바뀌었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유 비서실장은 윤 당선인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난을 전달했다. 2022.03.10.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유 비서실장은 윤 당선인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난을 전달했다. 2022.03.10. 뉴시스

노무현-이명박 갈등 데자뷔?’신구충돌 예고

이 같은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청와대의 문은 늘 열려있다. 빠른 시일 내에 격의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자리를 갖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며 “(회동을 위해) 무슨 조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언론 공지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청와대 만남과 관련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 측에 먼저 손을 내밀면서 양측이 의견 조율을 끝낸 것이고, 조만간 만남이 성사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광삼 변호사는 한 방송에 출연해 당선인과 대통령 회동 자체가 결렬된 것은 사상 초유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청와대에서 먼저 선제적으로 했다. 윤 당선인 측에서도 저걸 깊이 새겨야 한다. 빠른 시일 안에 회동이 잡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첫 회동 불발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해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첫 회동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되더라도 신구 권력의 기싸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동 무산을 계기로 향후 진영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대선 결과와 관련된 문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를 읽던 도중에 눈물을 흘린 것이 미묘한 파장이 일면서 일각에서는 신구 권력 갈등으로 인한 문 대통령 측의 속앓이 전조 현상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측의 충돌을 두고 2008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 사이에 벌어졌던 갈등의 데자뷔와 같다는 반응도 있다. 노 대통령과 이 당선인은 정부조직 개편안 등을 두고 갈등을 겪은데 이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국가기록물 유출 논란 등으로 충돌했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로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되면서 양측의 진영 갈등은 극에 달했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윤 당선인이 대선 기간 문재인 정부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해왔고, 자신이 집권할 경우 전() 정권의 적폐를 수사하겠다고 밝혔던 만큼 앞으로도 양측이 충돌할 위험성은 산재해 있다. 일각에서는 윤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관련된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이 대선 기간 이재명 민주당 후보 공격에 활용했던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과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 재판 등도 진영 갈등을 격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정부 탈원전 검찰 수사 확대되나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통화 관련 브리핑을 하던 중 울먹이고 있다. 2022.03.10. 뉴시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통화 관련 브리핑을 하던 중 울먹이고 있다. 2022.03.10. 뉴시스

윤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여성가족부 폐지문제와 윤 당선인이 폐지 가능성까지 시사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비롯한 검찰 개혁 문제 등을 두고도 신구 권력의 기싸움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지난 17YTN라디오에서 문재인-윤석열 첫 회동 무산에 대해 신구 권력의 충돌 그 예고편을 보는 듯한, 어떻게 보면 소소한 안건의 이견 때문에 못 만난 걸 수도 있겠지만 문재인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신구 권력 간의 충돌은 상당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어 과거 노무현, 이명박 두 정부의 인수인계 단계에서 나타났던 갈등들 그런 부분들이 못지않게 나타날 수 있지 않겠느냐, 저는 우려 속에서 어제 하루를 보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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