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용산이전 제동 尹측 "文 대선불복" 항전 의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뉴시스]

尹측 "文 거부시 통의동서 국정"...文 비토시 불투명

[일요서울 l 이기우 언론인]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정권인수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대통령 집무실 용산 국방부 이전 문제를 시작으로 인사권을 놓고 양측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자루를 쥔 인수위와 뒷짐만 지고 있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싸움이 ‘문재인-윤석열’ 직접 충돌로 이어지며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특히 윤 당선인 측은 문 대통령 임기 말 공기업 인사관련 논의해 임명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청와대와 문 대통령은 불만을 토로하며 마지막까지 할 말은 하고 권한도 최대한 행사하겠다는 강경자세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인사권을 둘러싼 양측의 싸움이 감정대립으로 비화되면서 ‘문재인-윤석열 회동’조차도 불투명해지는 분위기다.

5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인수위 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집무실 용산 이전을 공식화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고, 5월 10일부터 새 용산 집무실에서 근무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안보 문제를 거론하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집무실 용산 이전 놓고, 문-윤 강대강 대치

문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국정에는 작은 공백도 있을 수 없다. 특히 국가안보와 국민경제, 국민안전은 한순간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며 “우리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 군 통수권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을 마지막 사명으로 여기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윤석열 당선인 측이 지난 20일 관계 부처를 통해 요청한 이전 관련 비용 496억원의 예비비 처리를 상정도 하지 않은 채 27억원의 운영비만 의결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과 예비비 처리 상정 불발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반대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기존 청와대 위기관리 시스템을 함께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승인은 필수다. 

이같은 청와대의 강경한 자세에 윤 당선인 측도 강경대응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가장 대표적인 정권 인수인계 업무의 필요사항에 대해 협조를 거부하신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윤 당선인은 통의동에서 정부 출범 직후부터 바로 조치할 시급한 민생문제와 국정 과제를 처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당선인 집무실이 있는 금융감독원 연수원 건물에서 5월 10일 0시부터 업무를 시작하고 청와대 완전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최후통첩했다. 더군다나 청와대 제동으로 국방부 청사에서 집무를 시작하려던 계획이 무산됨에 따라 윤 당선인은 취임 후 통의동에 있는 인수위 사무실을 ‘임시 직무실’로 두고 서초동 자택에서 출퇴근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통의동과 서초동 출퇴근은 배수진을 친다는 의미의 정치적 레토릭이 아니다”며 서초동 자택에서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까지 이동하는 현재의 동선을 당분간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은 주변 참모들에게 “통의동에 침대 하나 깔아주시면 제가 여기서 자겠다”며 “여기서 일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한은총재 인선 등 尹, 공개적으로 불만

집무실 용산 이전 문제를 놓고 문재인 정부와 차기 정부의 파워게임이 감정싸움 양상으로 비화되면서 인사권을 둘러싼 양측의 신경전도 가열되고 있다. 

현재 공석인 감사원 감사위원 2명 인선 문제가 대표적이다. 감사위원회는 감사원장을 포함해 총 7명의 감사위원으로 이뤄진다. 감사위원회는 감사원의 감사 정책 및 계획을 결정하고 재적 감사원 과반(4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감사위원회의 인적 구성에 따라 감사원의 색채도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감사위원 자리를 놓고 신구 권력 신경전이 치열하다. 

현재 최재해 감사원장과 4명의 감사위원 등 5명은 문 대통령이 임명했고, 두 자리는 공석 상태다. 윤 당선인 측은 감사위원 4명 중 3명의 정치적 편향성이 뚜렷하다고 말한다. 문 대통령과 검찰개혁 저서를 공동 집필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 김인회 위원, 이낙연 국무총리 시절 총리실 국정운영실장을 지낸 임찬우 위원, 전남 장성 출신이자 문재인 정부 초기 서울고검장을 지낸 조은석 위원 등이다.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 요구대로 2명 중 1명을 문 대통령이 임명할 시 감사위원은 친여 성향 위원이 4명으로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윤 당선인 측은 “문재인 정부에서 문제시된 정책이나 공무원에 대한 감사 의제가 받아들여질 수 없다”며 “문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감사원을 배후 조종하려는 의도 아니냐”고 말했다. 반면 청와대는 윤 당선인 측에서 새 정부 출범 후 감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각종 정책을 합법적으로 들어내려 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사법개혁 현안을 놓고도 양측이 충돌했다. 윤 당선인이 공약한 법무부 장관의 검찰 수사권 폐지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반대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인수위는 법무부를 향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등 격한 표현을 쏟아내며 불만을 표출했다. 

실제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시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주요 사건 수사에 대한 지휘에서 배제됐다. 윤 당선인은 대선 때 정치인 출신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정치권력의 수사 방해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보고 폐지를 공약했다. 

반면 박 장관은 검찰권 견제를 명분으로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검찰개혁 대치전선은 신구권력 충돌 국면에서 또 하나의 변수로 등장했다. 여기에 한국은행 총재 인사 문제도 뜨거운 감자가 됐다.

역대 정권마다 신구 갈등, 노무현-이명박 거론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서로를 비판하며 신구 권력이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윤 당선인은 24일 집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 앞 천막 기자실에 들러 전날 청와대가 한은 총재 후보자 인선을 발표한 것에 대해 “인사가 급한 것도 아닌데”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당선인(이라는 신분)은 부동산을 매매 계약해서 대금을 다 지불한 상태”라며 “매도인에게 아무리 법률적인 권한이 있더라도 본인이 사는 데 필요한 조치는 하지만, 집을 고치거나 이런 건 잘 안 하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퇴임을 40여 일 앞둔 문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과 일하게 될 인사를 단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이 청와대와의 인사 갈등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의 발언 35분 뒤 박수현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을 통해 “두 사람이 만나 인사하고 덕담을 나누고 혹시 참고 될 만한 말을 주고받는 데 무슨 협상이 필요한가”라며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말고 당선인께서 직접 판단해 주시기 바란다”고 반박했다, 윤 당선인과의 회동이 진전되지 않는 원인으로 윤 당선인 측 ‘다른 이들’을 지목한 것인데 일명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관계자) 문제를 우회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양측의 갈등으로 인해 ‘문재인-윤석열’ 회동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양측 모두 상대방에 양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 간 회동 없이 정권 이양이 이뤄지는 선례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신·구 권력 갈등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같은 극한 대치까지는 없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실제 정권 재창출이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양 과정에도 불협화음이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이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등을 특별사면하자 인수위는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회동 아쉬운 文, ‘서두를 것 없다’ 윤당선인

정권교체 과정에선 갈등이 더 컸다. 정치권에서는 노무현-이명박 정부 이양 과정에 빗대는 경우가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직후 김용민 청와대 보좌관을 감사위원, 강보현 변호사를 중앙선거관리위원에 내정했다. 이명박 당선인 측이 ‘고위직 공무원 임명 자제’를 요청했음에도 강행한 조치였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측 다툼과 비슷하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인수위의 정부조직법 개정 요구를 단박에 거절하면서 불협화음이 불거졌고, 청와대 기록물 복사 논란 등으로 이어졌다.

다만 양측 모두 극단적 상황에 부담을 느껴 회동이 막판에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 문 대통령은 만남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대통령과 당선인께서 그냥 만나 환한 얼굴로 손을 잡는 모습만 보셔도 국민 스스로 입가에 미소가 돌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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