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대한민국 정치권력이 대격변을 맞고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과 더불어 기존 청와대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용산시대로의 문이 활짝 열렸다. 역대 대통령마다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청와대 이전을 강조했지만 매번 실패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이뤄낸 승부수다. 조선 건국과 더불어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것에 버금가는 일대 사건이다. 건축가로 유명한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대통령집무실 이전을 신의 한수라고 격찬할 정도였다. 흔히 구중구궐로 상징되는 청와대는 해방 이후 줄곧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핵심 그 자체였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의 대통령집무실 이전 조치에 따라 74년 만에 청와대는 국민의 품으로 완전히 돌아갔다. 지난 510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일반인에 전면 개방된 청와대에는 연일 인파가 몰리고 있다. 20대 대선 승리와 정권교체, 대통령집무실 이전에 따른 청와대 시대의 마감과 용산시대의 개막이 가져올 정치·경제·사회적 파급효과를 짚어봤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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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대통령 모두 실패한 과제대통령 정치적 승부수
- 서울 용산, 정치1번지 등극정치권력의 새로운 심장부

청와대가 역사 속으로퇴장하면서 새로운 정치권력의 심장부로 떠오른 곳이 바로 서울 용산이다. 대통령집무실이 전격 이동하면서 서울 용산은 청와대 중심의 기득권 정치와 결별하면서 한국정치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파급효과는 엄청나다. 서울 정중앙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에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의 이동, 미군부대 기지 반환을 통한 용산공원 조성 등을 통해 대한민국 정치권력 지도를 원점에서 다시 그리게 될 전망이다. 미국 백악관을 벤치마킹한 용산청사 집무실 운영 또한 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이에 따라 음습한 제왕적 권력으로 상징되는 청와대와는 달리 소통과 개방성에 무게를 국정운영이 보다 수월해질 전망이다.

불도저추진력 대통령 승부수아듀청와대

청와대는 대통령 권력의 상징이다. 대통령이 일하고 생활하고 머무르는 집무 및 거주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 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 전 대통령은 물론 87년 대통령직선제 도입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거쳐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등 12명이 대통령이 모두 머물렀다. 1공화국 시절 경무대로 불렸지만 윤보선 전 대통령 이후 청와대로 개명됐다. 때로는 청와대의 영문 약칭인 BH(Blue House)로 불리며 역대 정부에서 막강한 제왕적 권력을 상징했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시대에는 별궁으로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으로 사용됐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의 관저가 있었다.

다만 청와대는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터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 이후 망명, 암살, 서거, 감옥행 등 모두 불행을 겪었다. 민심과는 동떨어져 지내는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 탓에 대선 때마다 청와대 이전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면서 청와대 이전을 공약했지만 시민불편과 경호상 이유 등으로 무산됐다. 크고작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은 윤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다. “안보공백이 우려된다”, “비판에 귀막은 불통이다”, “너무 서두른다는 각계각층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윤 대통령을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으로 밀어붙였다.

청와대 이전과 이에 따른 전면 개방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지난 10일 윤 대통령 취임식 당일 정오부터 청와대 경내와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활짝 열렸다. 첫날부터 수만명의 인파가 올렸다. 지난 12일 기준 관람 신청은 230만명을 돌파했고 오는 22일에는 청와대 개방의 대미를 장식하는 KBS열린음악회도 열린다.

청와대를 둘러본 관람객들은 대통령 주거공간인 관저 대통령 집무실, 외빈접견 및 회의장소였던 청와대 본관 ·만찬 등 각종 환영행사에 사용된 영빈관 국내외 귀빈을 위한 의전행사에 사용된 상춘재 역대 대통령 기념식수가 위치한 최고의 정원으로 불리는 녹지원 대통령비서실 업무공간인 여민관 등을 자유롭게 둘러봤다. 아직 건물 내부는 둘러볼 수 없었지만 관람객들은 청와대 경내를 자유롭게 걸으면서 최고 권력자의 공간이었던 청와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했다. 이밖에 보물로 지정된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과 서울시 문화재인 오운정(五雲亭) 등이 위치한 문화재의 보고였다.

청와대 개방에 따른 장밋빛 전망도 적잖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에 대한 경제적 효과 분석보고서에서 매년 18000억원의 관광수입과 최대 12000억원~33000억원에 달하는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역시 청와대 개방에 따라 삼청동, 청운동, 효자동 등 인근 상권이 연간 약 2000억원의 경제효과를 누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 이전과 전면 개방을 앞두고 부정적인 여론이 없지 않았지만 막상 개방에 따른 효과는 상당하다서울 시내 중심지에 경북궁과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핫플레이스가 탄생한 것이다. 청와대 개방에 따른 입소문과 긍정적 효과는 6.1 지방선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용산시대, ‘연착륙출퇴근에 브리핑까지격식파괴

용산 국방부 청와대 집무실. 뉴시스
용산 국방부 청와대 집무실. 뉴시스

청와대 시대의 마감은 뒤집으면 용산시대의 개막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식 다음날인 11일 대통령실 용산청사로 출근하면서 격식 파괴와 자유로운 소통을 선사했다.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청사까지 매일 출퇴근하는 모습이다. 이는 역대 대통령들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신선한 광경이었다. 출퇴근하는 대통령에 따라붙던 교통혼잡은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출발해 용산청사 대통령실 도착까지 7km 정도 거리의 이동에 10분 내외가 갈렸다. 시민들의 출퇴근 시간과 겹치는 러시아워였지만 예상보다 큰 혼잡은 없었던 셈이다.

또 출근길에서 출입기자들과의 일문일답도 진행하는 파격도 선보였다. 윤 대통령은 출근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특별한 소감이 있나. 일해야죠라고 쿨하게 답했다. 또 전날 취임사에서 통합이라는 표현이 없었다는 지적에는 그건(통합)은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정치 자체가 통합의 과정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입으로 불리는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이 아니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직접 언론의 궁금증을 해소했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 시절에도 출입기자들과 질문답변을 즐겼지만 대통령 신분으로 질답을 주고받은 것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 기존 청와대는 대통령과 기자들의 업무공간이 완전히 분리됐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업무 스타일도 확 달라졌다. 용산청사 2층인 대통령집무실 아래 층인 1층 전체는 기자실로 운영된다. 또 대통령 전용 엘리베이터 설치를 생략하고 참모들과 손쉽게 마주칠 수 있도록 동선을 짰다. 이는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고의 공무원들과 최고의 민간 인재들이 하나로 뒤섞여 일하는 곳으로 대통령실이 확 바뀔 것이라고 대선과정에서 강조한 대목을 반영한 것이다.

용산시대의 연착륙은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에서도 잘 드러난다. 윤 대통령은 취임식을 전후로 지지율이 수직 상승했다. 한국갤럽이 13일 발표한 52주차 정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52%, 부정 평가는 37%로 각각 나타났다. 이는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51주차 정례조사 때보다 긍정 평가가 11%포인트 늘었다. 청와대 이전이 불통의 요소로 작용하면서 부정 평가가 높았지만 용산시대 개막 이후에는 오히려 공약 실천이라는 긍정평가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다만 국정운영 기대치은 여전히 역대 대통령보다 낮았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 직후 국정운영 기대치는 대체로 80%안팎이었다. 14대 김영삼 대통령 85% 17대 이명박 대통령 79% 18대 박근혜 대통령 79% 19대 문재인 대통령 87% 등이었다. 여권 전략가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이와 관련, “0.73%의 박빙대선 여파는 물론 대선 라이벌이었던 이재명 후보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지지층이 양분된 결과라면서 취임 이전에 저점을 찍은 만큼 지지율도 이제 오를 일만 남았다. 지방선거에 승리할 경우 윤 대통령이 국정주도권을 장악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악관 벤치마킹·센트럴파크 정치1번지 등극

국민품으로 돌아간 청와대 관저. 뉴시스
국민품으로 돌아간 청와대 관저. 뉴시스

 

이제 용산시대는 본격적인 깃발을 올렸다. 권력의 심장부가 단순히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동하는 것만이 아니다. 정치권력의 대격변에 따라 경제·사회·문화 권력의 연쇄적인 용산 이동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밖에 용산청사 이전에 따른 내용과 실속을 채우는 과제도 남았다. 정치경험이 없는 0선 대통령인 윤 대통령은 격식을 따지기보다는 능력과 효율, 자유로운 소통을 중시한다.

기존 청와대를 대체하는 용산청사는 미국 백악관을 벤치마킹해 업그레이드를 준비 중이다. 대통령집무실 근처에 비서실장실과 5수석실, 국가안보실장실, 경호처장실 등을 배치한 것이다. 국민소통관실 관계자는 이와 관련,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참모들의 방에 수시로 드나들며 대화를 나누듯 윤 대통령도 한 공간에서 참모들과 격의 없이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용산청사 주변도 변화도 눈부실 전망이다. 반환되는 주한 미군기지를 활용해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버금가는 시민공원으로 집무실 주변을 꾸미겠다는 것이다. 서울의 심장부에 대규모 녹지공원이 조성되는 것으로 대통령집무실을 나오면 곧바로 공원으로 이어지는 게 특징이다. 집무실과 용산공원 사이에는 2.4m 정도의 철제 펜스만 설치된다. 다만 반환 미군기지를 대상으로 최소한 수년 이상의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을 걸림돌이다.

또 윤 대통령의 한남동 공관 입주로 서울 용산은 기존 정치1번지였던 서울 종로의 지위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남동 공관촌에는 국회의장과 대법원장의 공간이 있는데 윤 대통령까지 외교부장관 공관을 리모델링해서 입주하게 되면 입법·사법·행정 3권 수장이 모두 이웃사촌으로 살게 되는 셈이다. 워낙 거리가 가깝다 보니 국가적으로 긴급 상황 발생시에는 수시로 만나 의견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이밖에 안보 및 외교적 접근성도 강화될 예정이다. 한남동에는 국방부 장관·합동참모의장·육군참모총장·한미연합사부사령관·해병대사령관 등 군 지휘부의 주요 공관은 물론 54개국의 외국 공관도 몰려있기 때문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청와대 이전과 전면 개방, 이에 따른 용산청사 개막은 사실 인수위 시절만 해도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컸다면서 청와대가 국민들이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휴식처로 돌아가고 용산청사가 이른 시일 내에 새로운 권력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서 기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야의 정치적 득실이 엇갈리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허니문 기간도 없이 ‘20대 대선 연장전을 불리는 6.1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정권안정론과 견제론, 검수완박 후폭풍, 새 정부의 인사실책, 코로나추경 등 크고작은 이슈가 한둘이 아니지만 청와대 개방과 용산시대의 개막 역시 6.1지방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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