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윤석열 대통령이 고난의 여름휴가를 보냈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지지율 30% 붕괴에 이어 집권 후 최저치인 24%까지 추락한 데다가 내우외환의 위기상황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사실상 총체적 난국 상황 속에서 악몽같은 여름휴가를 보냈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의 당원권 정지 6개월 이후 당권을 둘러싼 내홍으로 오리무중의 상황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해야 할 여당이 자중지란에 빠지면서 오히려 대통령을 정조준할 정도다. 또 고질적인 리스크였던 부인 김건희 여사는 물론 대통령실 안팎의 크고작은 구설수와 잡음도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면서 윤 대통령을 괴롭히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후폭풍이 여전한 가운데 교육개혁의 일환이었던 만5세 취학연령 하향 카드는 국민적 반발 속에서 박순애 교육부장관의 사퇴론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이른바 ‘3고 위기로 불리는 경제상황 또한 만만치 않은 과제다. 취임 초기에 레임덕에 빠졌다는 이른바 취임덕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윤 대통령은 진퇴양난의 상황인 셈이다.

대통령 첫 여름휴가지지율 추락 속 악몽의 시간
- 인적쇄신 요구 봇물에 대통령실 개편론선긋기
 역대 대통령, 각종 악재에 툭하면 여름휴가 취소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여름휴가중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극장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를 관람한 뒤 배우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2.08.03.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여름휴가중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극장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를 관람한 뒤 배우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2.08.03. 뉴시스

역대 대통령의 여름휴가도 다를 바 없었다. 난관의 연속이었다. 유럽 정상들이 업무와 휴식의 분리라는 국민적 공감대 속에 길게는 3주 안팎의 휴가를 즐긴 것과 대조적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여름휴가는 7월 말 또는 8월 초에 길어야 5일이다.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들은 돌발악재가 발생할 경우 국민적 시선을 의식해 아예 여름휴가를 취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참사의 여파로 각각 여름휴가를 취소한 바 있다. 다만 여름휴가를 통해 정국반전의 카드를 꺼내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상의 격무에서 벗어나 심신을 추스르면서 오롯이 정국구상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취임초 광우병 시위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친()서민 중도 실용주의를 꺼내든 것이 대표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치적인 금융실명제 역시 여름휴가 구상을 통해 밑그림을 그렸다. 대통령실 전면개편은 물론 국정운영 기조의 대전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윤 대통령이 여름휴가 이후 꺼내들 히든카드에 관심이 쏠린다.

악몽 여름휴가휴가중인데 잡음 만발 위기증폭]

대통령의 여름휴가는 특별하다. 단순한 휴가 이상이다. 대통령도 사람인 이상 휴식이 필요하지만 휴가 장소는 물론 도서목록, 면담인사 등등 모든 것이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윤 대통령의 여름휴가는 시작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른바 내부총질문자 논란의 후폭풍이 지속되면서 지지율 하락의 근본 원인이 바로 대통령이라는 비판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여름휴가와 관련, “81일부터 5일까지 여름휴가에 들어간다. 휴가 동안 휴식을 취하고 향후 국정운영을 구상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라면서 그동안 취임 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왔다. 이번 휴가가 재충전을 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지지율 하락과 여권발 내홍을 고려해 휴양지 방문을 취소하고 서울 자택휴식으로 변경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정치입문 선언 이후 국민의힘 입당과 당내 경선, 20대 대선, 대통령직인수위, 한미정상회담, 6.1지방선거, 나토정상회의 참석 등 굵직굵직한 일정을 소화해왔다. 특히 대통령 취임 이후 80여일은 그야말로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단 하루도 맘편히 쉴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이번 여름휴가는 그야말로 꿀맛같은 휴식의 시간이 될 전망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의 여름휴가지였던 경남 거제시 저도에서 재충전의 가지면서 민생행보에도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크고작은 악재가 속출하면서 윤 대통령의 여름휴가는 만신창이가 됐다.

교육부의 만5세 초등학교 입학연령 하향 조정은 거센 국민적 반대에 시달렸다. 경찰국 사태의 후폭풍이 채 가시기도 전에 메가톤급 악재가 터진 셈이다. 지지율 추가 하락의 결정타였다. 설익은 정책발표에 일선 교육현장은 물론 학부모까지 모두 반발했다. 깜짝 놀란 윤 대통령은 휴가 기간 중 필요한 개혁이라도 관계자 간 이해관계 상충으로 공론화와 숙의가 필요하다며 교육부에 긴급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그러나 대국민 설득과정 없이 졸속 추진된 학제 개편안에 대한 성난 여론을 잠재우지 못했다. 급기야 박순애 장관은 국민이 정말 원하지 않는다면 정책은 폐기될 수 있다고 시사할 정도였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과의 면담 불발 및 전화통화도 논란이었다. 여권을 중심으로 미국 의전서열 3위이자 워싱턴의 실력자인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은 것에 대중국 눈치보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선 경선 라이벌이었던 유승민 전 의원은 대학로 연극을 보고 뒤풀이까지 하면서 미 의회의 대표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라면서 동맹국 미국의 의회 1인자가 방한했는데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릴 정도였다. 사실상 윤 대통령은 여름휴가 기간 대부분을 만5세 입학 논란 후폭풍 수습과 펠로시 의장 면담 논란으로 허비한 셈이다.

유럽 3주휴가 한국 툭하면 취소때론 메가톤급 구상

여름 휴가를 맞아 울산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태화강대공원 십리대숲을 걷고 있는 모습. 2016.08.08.  뉴시스
여름 휴가를 맞아 울산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태화강대공원 십리대숲을 걷고 있는 모습. 2016.08.08. 뉴시스

대한민국과 달리 유럽은 국가 정상의 휴가에 대해 호의적이다. 대통령이나 총리도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탓이다. 여름휴가를 개인의 사생활로 보장해주는 것이다. 물론 긴급 상황 발생시 휴가지에서 복귀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유럽 여러 나라의 정상들은 적게는 보름 전후에서 길게는 3주 가량의 휴가를 챙겼다. 전후 독일 최장수 총리였던 메르켈 전 총리의 경우 16년 재임 기간 동안 여름 또는 겨울휴가로 매년 2·3주를 쉬는 걸로 유명했다. 휴가지 역시 해외여행을 선택하는 정상들도 없지 않았다.

한국적 현실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닷새간의 여름휴가마저 잔혹사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역대 대통령들의 여름휴가는 파란만장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주로 청남대에서 여름휴가를 즐겼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남대를 국민에 개방하면서 이후 청해대로 불리는 경남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는 대통령이 많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씨를 쓰는 사진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다만 크고작은 악재에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IMF 외환위기 극복문제로 여름휴가를 반납한 게 대표적이다. 단군 이래 최대 국난이라는 IMF 위기 상황 속에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솔선수범을 보인 것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름휴가와 유독 운이 없었다. 2004년에는 대통령 탄핵사태의 여파로, 2006년에는 대규모 수해로, 2007년에는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태 탓에 예정된 휴가를 취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비슷했다. 2014년은 세월호 참사, 2015년은 메르스 사태 문제로 여름휴가 없이 관저에서 휴식을 취했다. 여름휴가 복이 없기는 문재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문 전 대통령은 워라밸을 강조하며 휴가에 진심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취임 첫해에는 북한의 ICBM 발사에도 여름휴가에 나섰다가 극심한 비판에 시달렸다. 이어 2019년에는 일본 정부의 반도체 장비 수출규제, 2020년 집중호우, 2021년 코로나19 문제로 여름휴가를 아예 가지 못했다.

반면 여름휴가를 정국 반전의 계기로 활용한 경우도 많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여름휴가 직후 이른바 청남대 구상으로 불린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금융실명제는 공직자재산공개, 군부 하나회 숙청과 더불어 YS3대 치적으로 불리는 핵심사안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취임 첫해 여름휴가에서 복귀한 이후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 4명을 교체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 역시 여름휴가 복귀 이후 어떤 식으로든 정국 반전을 위해 인적쇄신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휴가구상은광복절 경축사 통해 베일벗나

윤 대통령은 여름휴가 기간 동안 특별한 일정 없이 서초동 자택에서 정국구상에 매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공개된 일정은 휴가 중 서울 대학로에서 부인 김건희 여사와 연극을 관람한 것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과 전화통화를 가진 게 유일하다.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은 위기에 빠진 정국상황 돌파를 위해 수습책 마련에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대통령실 인적쇄신이다. 물론 대통령실은 출범 80여일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인적쇄신에는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다만 국민의힘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접어드는 가운데 대통령실 책임론이 속출하고 있는 것은 부담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인적쇄신 요구에 선을 긋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대기 비서실장을 비롯한 정무·홍보라인 고위 참모들을 향한 인적쇄신 요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조수진 전 최고위원은 당은 물론 대통령실과 정부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며 당정의 쇄신과 더불어 윤핵관의 2선 후퇴를 촉구했다.

휴가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충남 계룡대에서 독서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닷새간 취임 두번째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다. 2018.08.03.  뉴시스
휴가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충남 계룡대에서 독서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닷새간 취임 두번째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다. 2018.08.03. 뉴시스

야권도 인적쇄신 총공세에 나섰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정부의 총체적 난국을 돌파하려면 윤석열 대통령의 전면적 인적쇄신이 불가피하다며 구체적 대상으로 김대기 비서실장과 윤재순 총무비서관, 복두규 인사기획관, 이원모 인사비서관, 주진우 법률비서관,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강의구 부속실장 등 검찰출신 측근 인사를 겨냥했다. 정치9단으로 불리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도 최소한 교육부총리,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질해야 하며 보건복지부 장관에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앉히는 등 역발상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광우병시위의 여파 속에서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의 요구를 수용, 류우익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전원을 교체하는 인적쇄신을 단행한 바 있다.

또 윤 대통령의 8.15 구상도 관심을 모은다. 핵심은 광복절 특멸사면과 8.15 경축사에 담길 내용이다. 광복절 특사카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다수의 경제인을 비롯해 이명박 전 대통령,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을 거론되고 있다. 경제인 특사에는 여론이 우호적이지만 정치인 특사에는 부정적인 여론도 적지 않아 윤 대통령의 고심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대통령 취임 첫해 광복절 경축사는 역대 대통령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연설문이다. 대내외적인 경제위기는 물론 코로나19 재유행 상황 속에서 남북관계 재정립, 한일관계 정상화 등 산적한 현안을 풀어낼 청사진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은 매를 맞아도 너무 일찍 맞았다. 취임 초 별다른 대형악재 없이 국정수행 지지율이 20%대 초반으로 추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여권에서조차 선상반란이 일어나면서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 5년 내내 식물 대통령 논란에 시달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역대 대통령 역시 여름휴가 구상을 통해 내놓은 히든카드로 정국반전에 성공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도어스테핑, 대국민 담화, 광복절경축사, 취임 100일 기자회견 등 어떠한 형식이든지 간에 윤 대통령이 휴가 중 고민해온 정국구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베일을 벗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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