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경직·과잉 경쟁에 무력감 심화(深化)

일자리 정보를 찾아보는 시민들. [뉴시스]
일자리 정보를 찾아보는 시민들. [뉴시스]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청년실업이 가중되는 가운데 구직 의사가 없는 이른바 ‘취포자(취업 포기자)’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고용 없는 성장과 기업의 인력정책 변화 등 노동시장의 침체로 인해 취업을 단념하는 것을 의미한다. 

‘취업 포기자’ 청년에게만 책임 물어서는 안 돼
고용노동부, 사회적 시선과 취포자 이해·분석 약속

소위 ‘취포자’는 취업 활동에 적극적이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구직자(또는 실업자)와는 달리 구직단념자로 구분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7년 48만여 명에서 2021년 63만여 명으로 급증했고, 절반이 20·30대라는 점에서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경제위기 이후 성장의 둔화와 기업의 구조조정 등으로 신규채용이 감소했다. 나아가 채용에 비정규직 및 경력직을 선호하면서 청년 취업의 문은 더욱 좁아졌다. 이에 높아진 경쟁률과 이력을 위해 늘어난 취업 준비 기간도 취포자로 돌아서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취포자들은 생계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청년창업’이다. 한국개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취업자 수 증가 전망은 2022년에 79만1000명이었으나, 2023년에는 8만4000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그러나 30대 이하 대표 사업체 수는 2018년 42만 개에서 2021년 87만 개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높아진 취업 문턱에서 자구책을 찾은 것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창업을 희망하는 이유 중 ‘원하는 일자리에 취업이 어려워서’의 선택 비중이 지난해 11.1%로 4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창업은 절대적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개인사업자 중 만 30세 미만의 폐업률은 20.1%로 50대 8.8%, 60대 8%를 크게 상회했다. 

과열 경쟁과 기약 없는 준비 … 피로감 호소

오는 2월, 4년제 대학을 졸업하는 김 모(27)씨는 대게 학생들이 마지막 학년을 ‘취준생(취업 준비생)’으로 보낸다며 강의 수를 줄이고 취직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김씨는 “먼저 졸업한 선배들도 아직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다”며 3년의 학업과 1년의 준비 이상으로 더 노력해도 비관적인 상황이 이어지는 것에 막연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나아가 청년층이 취포자가 되는 원인을 두고는 “취업의 폭이 좁아져 원치 않는 진로를 택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결국 아르바이트생으로 머물게 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오랜 준비 끝에 올해 입사한 노 모(27)씨는 준비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꼽았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비교 대상이 되는 것에 큰 압박감을 느낀 것이다. 이런 현상이 취준생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며, 이와 같은 부담감에 결국 취업을 포기하게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더불어 자신이 원하는 직업군에 종사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도 취업을 포기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씨는 “인문계열의 직업군을 원하지만, 이공계열이 취업 성공률과 높은 임금 등 더욱 유리한 현실에 있다는 것에 괴리감을 느끼더라”며 주변 경험을 공유했다. 

현재 여러 고용정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단기 일자리 창출처럼 미비한 성과를 낸다면 오히려 직업훈련 등 소모되는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산업 수요에 걸맞은 교육 개편과 이를 바탕으로 한 인력의 적재적소 분배가 중요하다.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구직의사를 북돋기 위한 계획 수립과 사회적 시선의 개선이 필요하다.

취포자 단순히 사회문제로 치부하는 건 위험

직장에 다니지 않고 교육이나 훈련을 받는 상태도 아닌 취포자 청년을 ‘니트(NEET)족’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히키코모리(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사람)’ 증가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실제 2019년 OECD에서 발간한 ‘한 눈에 보는 사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청년 니트족 비율은 18.4%로,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다.

‘비경제활동 인구’의 증가는 국가 경제나 생산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한국의 청년 니트 특징과 경제적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니트족 가운데 대학 교육을 마친 고학력자의 비율이 2015년 기준 42.5%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우수한 인적자원을 비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취포자에 대한 비판적인 단어들은 오히려 구직의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수년 동안 무직 상태를 유지한 원 모(27)씨는 자신을 ‘사회부적응자’로 보는 주변의 시선에 자존감이 낮아졌다고 호소했다. 원씨는 “12년의 학창시절과 4년의 대학생활 등 심화된 경쟁 사회 속에서 지치고 의욕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주변의 압박감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며 취포자가 되는 원인으로 사회적 시선을 꼽았다. 

취포자 증가의 원인을 단순히 청년의 노력과 의지에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악효과를 초래한다. 취업, 채용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2021년도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채용 공정성에 대한 불신’은 51.6%로 과반이었으며, 원인으로 채용인원·평가기준 미공개가 1위를 차지했다. 더불어 ‘공정채용 확산을 위한 정부의 역할’로 엄정한 법 집행이 22%로 가장 시급하다고 평가됐다. 

청년일자리 예산 축소, 고용노동부 해결책은?

지난해 10월26일 고용부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청년고용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는 “민간 주도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기조를 유지함과 동시에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투자 활성화 여건을 조성하고자 한다. 고용부는 이에 맞춰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청년고용이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맞춤형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취포자를 대상으로는 진로 찾기, 취업준비 등 상황에 맞춘 서비스를 민·관 협업해 확대 지원하고, 채용부터 입직 이후의 임금결정까지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고용문화를 확립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제도 개선에만 머물지 않고, 취포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문제점을 이해하고 이를 분석하기 위해 청년고용정책 구체화 및 집행, 평가 등 모든 과정에서 의견을 반영하기로 했다. 

나아가 기획재정부의 ‘청년도전지원사업’으로 취포자 구직의욕 고취 및 자신감 회복에도 나섰다. 청년에게는 최대 300만 원을 지원하고, 운영기관에는 50만 원 인센티브를 준다. 다만 사업 참여 청년이 성과를 내지 못해도 수당을 지급하도록 해 논란이 일었다. 반면 올해 청년 일자리 사업 예산은 전년 대비 20.2% 감소했다. 고용부는 고용장려금 등 사업주 지원이 축소된 것은 사실이나 원활한 노동시장 진입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 강화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취업 포기자를 위한 정부의 정책이 구체적 방안 없이 이른바 ‘돈 풀기’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 일부 시민단체에 따르면 이들을 향한 편견과 차별 없는 구체적 대안이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민간 주도를 언급한 정부가 관련 부처를 통해 ‘해야 하니까 하는’ 형식적 사업 추진을 이어간다면 취포자 여건이 더 나아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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