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당헌80조 예외’ 적용에 비명(非明) 반발...민주 ‘교토삼굴’ 재점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뉴시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주요 사법리스크가 결국 사법부 판단에 맡겨졌다. 이 대표는 지난 22일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특혜 및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 4895억 원의 배임과 133억 원의 뇌물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지난해 20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몰랐다고 허위 발언한 혐의에 대해서도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내년 총선 등을 고려하면 ‘이재명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 속에 거침없이 당헌 80조 예외조항을 꺼내들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 사법리스크에 회의적인 비명(비이재명)계 등 소수 의견은 사실상 묵살됐다.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이 대표의 불구속 기소 당일(22일)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이뤄진 민주당 당무위원회의 이 같은 결정에 당내 비주류의 반발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때마다 등장했던 ‘포스트 이재명’ 담론이 재차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이에 본지는 이재명 대체재로 꾸준히 지명돼 온 이낙연‧정세균‧김부겸 전 총리 3인방을 바라보는 비명계의 시각을 재조명해 봤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앞서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내 후보 경선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는 우상향 끝에 검찰 불구속 기소로 방점을 찍은 상황. 숱한 설왕설래를 양산하며 여야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극도의 피로감을 안겼던 이재명발(發) 의혹과 혐의점들이 ‘사법부 판단’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새 국면을 맞은 셈이다.  

민주당 당무위는 이 대표가 기소되자 즉각 부정부패 혐의 기소 시 당직 정지를 규정한 당헌 80조의 예외조항인 ‘정치탄압’에 해당한다며 이 대표의 ‘당직 유지’를 의결했다.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된 기동민·이수진 의원에 대해서도 동일한 처분이 내려졌다. 이 대표의 포지션 보전을 위한 일종의 ‘포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의겸 의원은 당무위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이 같은 결정이 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의원이 그 이튿날 ‘비명 핵심’ 전해철 의원이 당무위 표결에서 기권했다고 뒤늦게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마치 이 대표의 당직 유지가 당 전체의 의견인 것 마냥 포장했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들끓는다.

특히 비명계는 “당내 소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한 처사”라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김 의원은 당초 만장일치 의결이라고 밝힌 것은 당 대변인으로서 “업계에서 통용되는 잔기술”이었다는 입장이지만, 이 같은 해명은 논란만 더욱 부추겼다는 평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생 4대 폭탄 대응단 출범회의'에 참석해 있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생 4대 폭탄 대응단 출범회의'에 참석해 있다. [뉴시스]

비명계, ‘이재명 당헌 80조 예외’ 속전속결에 “임계점 왔다”   

민주당 비명계와 중도 성향의 의원들 사이에서는 최근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사법방탄에 주력하고 있는 당내 주류의 행보가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보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 그간 당내 사법 이슈에 대해선 말을 아껴왔다는 한 수도권 의원은 본지에 “이제는 갈 데까지 간 것 같다”라며 “그 동안 그래도 이재명 체제가 아니면 대안도 없다는 당내 분위기가 있었고, 일단은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는데 (친명계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민주당에서 계파성이 옅은 것으로 평가되는 한 재선 의원도 이번 당무위 결정에 대해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었나”라며 “(이 대표) 당직 유지가 암묵적으로 결정된 사안이었다고 해도, 이번과 같이 개문발차 식으로 처리해서는 안 될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법 이슈는 결국 법원에서 털고 갈 문제이지, 탄압 프레임이 먹힐 시점은 한참 지났다”라며 “내년 총선 생각하면 그저 답답하다”고 탄식했다.

이에 일각에선 비명계가 4월 원내대표 경선을 터닝포인트 삼아 당 쇄신 행보에 박차를 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범친문(친문재인)계 수장 격인 이낙연 전 대표 귀국까지 100일가량 남겨둔 가운데, 친문 원내대표를 전초기지 삼아 비명계가 ‘반명’(反明) 움직임을 본격화할 것이란 관점이다.

현재 자천타천 거론되는 비명계 원내대표 후보군은 4선 안규백 의원, 3선 홍익표‧박광온‧이원욱 의원 등이다.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은 최근 원내대표 불출마를 선언한 만큼, 친문 박광온 의원의 경선 행보를 후면 지원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 반대로 친명계에선 원내대표 후보군 윤곽이 잡히지 않고 있다. 친명 원내대표까지 내세우기엔 ‘이재명 사당화’ 논란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세균 전 총리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사의재' 창립 기자회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정세균 전 총리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사의재' 창립 기자회견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커지는 회의론에 이낙연‧정세균‧김부겸 ‘前총리 트리오’ 재조명

비명계를 중심으로 이재명 체제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하면서, 이른바 ‘포스트 이재명’으로 줄곧 거론돼 왔던 이낙연‧정세균‧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다시금 여의도에서 회자된다. 지난 22일 민주당 출신 전직 의원은 본지에 “당헌 80조 문턱까지 넘은 마당에 이재명 대표가 자진 사퇴하는 일은 없겠지만, 당내 리더십 대체재 물색은 계속될 것”이라며 “내년 총선만 보면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前) 총리 트리오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최근 민주당 내부에선 비명계를 중심으로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심상찮다. 익명을 요구한 비명계 의원은 이 전 총리의 6월 귀국을 언급하며 “지금으로선 (이 전 총리의 귀국 후 행보에 대해) 뭐라 구체적으로 드릴 말씀은 없지만, 당내 인사들이 이 전 대표를 향한 모종의 기대심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 전 총리의 신중한 성격상 당장 귀국 후에도 현실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고 당분간 정중동 행보에 치중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당내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비명계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총리는 최근까지도 전화 통화 등으로 윤영찬‧설훈 의원 등 NY(이낙연)계 인사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당 안팎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지난 10일 민주당 총선 공천 TF(태스크 포스)의 요직을 이개호‧정태호 의원 등 이낙연계가 꿰찬 것은 이 전 총리의 당내 영향력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현재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 자격으로 미국에 머물고 있는 이 전 총리는 오는 6월 귀국할 예정이다.  

정세균 전 총리도 민주당 ‘교토삼굴’의 한 축을 맡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비명계 중진 이상민 의원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안 부재론’을 정면 반박한 것도 정세균 전 총리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파다하다. 실제로 최근 민주당 안팎에선 인지도와 합리성, 호남 적통성을 두루 갖춘 정 전 총리가 내년 총선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적잖다. 또 이재명 체제 출범으로 식어버린 민주당의 ‘호남 대망론’을 부활시킬 적임자로도 지목된다.

정 전 총리는 친문계와도 접점이 넓다. 지난해부터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사의재 소속 친문 인사들과도 교류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 [뉴시스]
김부겸 전 국무총리 [뉴시스]

김부겸 전 총리도 야권에서 꾸준히 리더형 자산으로 손꼽히는 인사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민주당 최대 험지인 TK(대구‧경북)를 돌파한 사례는 정치권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이색 커리어다. 문재인 정부 47대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보여준 균형감 있는 국무 역량도 김 전 총리가 민주당 차기 총선 리더십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정 전 총리와 더불어 민주당의 극심한 내부분열을 봉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체재로 평가된다.

김 전 총리는 최근 문 전 대통령과 회동을 가진 데 이어 문재인 청와대 출신 인사들을 비롯해 당내 비명계 인사들과도 접촉이 잦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당내 역할을 맡아 달라”는 주변의 숱한 요청에도 정당정치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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