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강혜수 기자] 내년 4월 치러지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심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여야의 팽팽한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 제정안을 밀어붙이면서 정국이 시끌시끌하다. 여당과 보수층은 민주유공자법을 ‘셀프 특혜법’으로 규정하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같은 논리가 중도층으로까지 번진다면 총선에서 민주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리 만무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민주유공자법’이 민주당에게 독약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민주 ‘민주유공자법’ 재추진에 ‘보수와 진보’ 대립 팽팽
- 여권 “셀프특혜법” 맹공...중도층 호응시 총선민심 악영향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강행하고 있는 ‘민주유공자법’이 민주당에게 독이 될까 약이 될까. 국민의힘이 강력 저지 입장을 밝히고 있고, 법안 강행 시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법안 제정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유공자법’을 둘러싼 여야 충돌로 정국이 경색되고, 국민의힘의 반대 논리에 중도층이 호응할 경우 치열한 ‘표 전쟁’이 벌어지는 총선에서 민주당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1소위는 지난 4일 법안을 반대하는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과 국가보훈부 윤종진 차관 등이 퇴장하고 민주당 소속 의원들만 남은 가운데 민주유공자법을 의결했다.
‘셀프 특혜법’ 비판 의식 ‘멈칫’하던 민주, 재추진
민주유공자법은 이미 관련 법령이 있는 4·19, 5·18 이외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망·부상·유죄 판결 등 피해를 입은 이들을 예우하는 내용이 핵심 골자다. 민주당은 보훈의 사각지대에 놓인 민주화 운동의 피해자들을 합당하게 예우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같은 법안을 추진해왔다. 이 같은 취지의 법안은 지난 15대 국회부터 여러 차례 발의됐었지만 ‘운동권 특혜’ 논란에 부딪쳐 번번이 무산됐었다.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이 시도됐지만 정치권 안팎에서 ‘운동권 셀프 특혜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민심 악화를 의식해 법안을 철회한 일도 있었다.
지난 2021년 3월말 당시 법안을 대표발의한 설훈 민주당 의원은 “법안에 대한 논란 등을 고려해 오늘 오후 국회 의안과에 철회 요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당시 범여권 73명 동참으로 발의된 법안에는 유신 반대 투쟁, 6월 항쟁에 참여한 민주화 유공자와 그 가족에게 학비 면제‧취업 지원‧의료 지원‧주택 구입·임차 대부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내용이 담겼었다. 지원 대상으로는 민주화 운동으로 유죄 판결, 해직, 퇴학 처분을 받은 사람도 포함됐다.
2020년에는 우원식 의원도 ‘민주유공자법’을 발의했다가 특혜 논란에 휩싸였었다. 이후 21대 국회 후반기에 민주당은 다시 법안 재추진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지난 5월말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만나 “법안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7월에도 당시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광주를 방문해 “국회가 정상화되고 있으니 민주유공자법 통과를 위해 민주당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국힘‧보수층 저지기세 맹렬, 재차 ‘거부권 정국’
민주당이 법안 처리에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예상대로 법안 제정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법안 제정을 저지하기 위한 국민의힘과 보수층의 기세는 맹렬하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지난 12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산학연포럼’ 주최 특별강연회에 연사로 참석해 “시위 중에 돌멩이 하나 던지다가 한 번이라도 다친 사람도 유공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법”이라며 “법안 내용을 보면 기준이 제대로 돼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대단히 유동적”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의장은 “국민의힘으로서는 저지할 수밖에 없는 법”이라며 민주당이 강행 처리할 경우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 행사 건의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언급도 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 법에 따르면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언젠가 민주화에 대한 공만 추켜세워지다 민주화 유공자로 부활할지 모르는 것”이라며 “이것을 그냥 방관한다면 지대한 공을 세운 백선엽 장군과 같은 진짜 유공자는 좌파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집요하게 짓밟히고 죽이기를 당할 것이고, 가짜 유공자는 무한정 복제되어 득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도 한 언론 기고에서 “왜 민주당은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그토록 무리수를 두고 있을까”라며 “한때 이미 보상을 받았던 것만으로는 운동권 패밀리의 세습이 어렵기 때문에 아예 국가유공자로 둔갑시켜 세대를 이어가며 특혜를 줌으로써 자신들만의 패밀리로 만들겠다는 의도”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민주 ‘유공자법’ 정당성 부각 총력… 민심은?
민주당은 이같은 국민의힘과 보수층의 비판을 방어하며 법안 제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원식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박민식 장관의 비판 발언에 대해 “민주유공자법상 유공자 신청 대상자들은 이미 지난 2000년 제정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한 헌법 이념 및 가치 실현,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했다고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분들”이라고 지적했다.
우 의원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중 사망자, 행불자, 부상자 829명에 한해 민주유공자로 예우하게 되지만 이 법 72조에 따라 국가보안법, 내란·외환죄, 살인죄, 폭처법위반죄, 특가법위반죄, 특경법위반죄, 성폭범위반죄 등의 범죄는 유공자 적용 대상에서 원칙적으로 제외된다”면서 우려 불식시키기에 나섰다. 그러면서 우 의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자에 해당하는지 확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보훈심사위원회에서 심의할 수 있도록 했다”며 “희생이 큰 분들을 예우하겠다고 나서지는 못할망정 또 한 번 명예를 더럽히려 하는 게 보훈부 장관이 할 일인가”라고 거센 비판을 가했다.
김성주 의원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이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들은 박종철 이한열 전태일을 인정한다고 한다는데 그러면 이런 사람들을 (유공자로) 인정하는 법을 만들면 된다”고 주장했다.
여야가 이처럼 극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민심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이 여당의 강력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행 처리했던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제정안에 이어 민주유공자법까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중도층 민심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은 주요 쟁점 법안이 민주당 강행으로 통과될 때마다 민주당의 “입법 독주”라고 강력 반발하며 민심을 향해 총선에서 자신들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심의 향배를 쉽게 예단할 수는 없지만 최근 나타난 ‘민주유공자법’을 둘러싼 민심의 흐름은 민주당에게 그렇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지는 않다.
데일리안‧여론조사공정㈜이 지난 10~11일 전국 남녀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짜 민주화 유공자 유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62.2%가 “있을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없을 것”이라는 응답은 24.6%에 그쳤다. “있을 것”이라는 답변은 성별 무관하게 모든 지역, 모든 연령에서 과반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쿠키뉴스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데이터리서치가 지난해 7월 25일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민주유공자법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에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적극 찬성 24.1%, 다소 찬성 18.5%)’은 42.6%, ‘반대(적극 반대 27.7%, 다소 반대 12.9%)’는 40.6%로 집계됐다. 잘모름 또는 무응답은 16.9%였다. 해당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나 여론조사 기관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