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광복절 특사 대상자에 경제인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이번 사면은 '경제 살리기'에 특사의 방점이 찍히면서 기업인들도 대거 사면·복권돼 경영 현장에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재계의 관심은 앞으로다. 사면 대상자들이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겠냐는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고령인 총수들이 대거 후계승계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14일 정부가 발표한 광복절 특사 대상에는 경제위기 극복 및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경제인 12명이 포함됐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명예회장과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이중근 부영그룹 창업주, 강정석 전 동아쏘시오홀딩스 회장,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이 사면받은 주요 기업인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사면 배경에 대해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서민과 우리 사회 약자들의 재기를 도모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부영그룹은 “그룹의 역량을 다해 고객을 섬기는 기업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금호석유화학그룹과 태광그룹은 각각 “본업에 더욱 집중하겠다” “함께 잘사는 국민의 나라를 위해 사회와 나누고 더불어 성장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중근 창업주는 경영 복귀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이 창업주가 1941년생으로 고령이고 2세 경영인들이 리더십을 내세울 기회도 적었던 만큼 이 창업주의 경영 복귀와 함께 2세 경영인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업이 함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영 복귀 이후 명예로운 은퇴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경영승계의 발판이 될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싣는다.

㈜부영의 소유 지분 현황을 살펴보면, 이중근 창업주의 지분율은 93.79%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다. 장남 이성훈 부영주택 부사장이 2.18%, 재단 우정학원이 0.79%, 자사주 3.24%를 보유하고 있다.

박찬구 명예회장은 현역에서 물러난 상태다. 현재 금호석유화학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장남 박준경 사장이 3세 경영인으로 입지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박 사장은 2021년 영업본부장(부사장) 승진 1년여 만인 지난해 말 사장으로 고속 승진한 뒤 기획조정본부를 포함한 그룹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지분율 역시 박 사장이 7.45%로 박 명예회장의 6.96%보다 앞선다. 최대 주주는 박정구 금호아시아나 전 회장의 장남 박철완 상무(8.87%)이며, 2대 주주는 국민연금공단(7.51%)이다.

박 명예회장이 이번 사면으로 취업 제한이 예정보다 일찍 풀리면서 경영 복귀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재계에선 법무부와의 소송이 박찬구 명예회장의 용퇴 결심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도 있는 만큼 명예 회복을 노릴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호진 전 회장의 경영 복귀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21년 10월 가석방 없이 만기 출소했지만, 취업제한 규정으로 발이 묶여있었다. 그룹 안팎에선 경영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 10년 넘게 이어진 오너 공백을 메우고 미래 비전에 힘이 실리게 될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이 전 회장이 흥국생명과 흥국화재 등 금융계열사를 이용해 골프장 회원권 매입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이들의 반발이 커진다면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가 순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태광그룹의 지주사격인 티알엔은 이호진 전 회장의 지분이 51.83%, 장남 이현준 씨가 39.36%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승계작업과 함께 이현준 씨의 본격적인 경영 참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 재계 "환영"… 경제시민단체 "우려"

한편 이번 사면과 관련해 경제단체들은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논평을 통해 "이번 사면·복권 조치는 어려움에 부닥친 우리 경제에 활력을 높이고, 나아가 미래를 대비해 기업인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며 "앞으로 경제계는 국가 경제 발전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이 8·15 광복절 특사를 통해 경제인들을 경영 현장에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을 크게 환영한다"며 "이번 사면을 계기로 경제인에게 주어진 사업보국의 소명을 되새기고, 민생안정과 경제회복이라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투자 활성화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원 등을 약속했다.

경총은 "세계 경제위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 주요국들의 패권 경쟁 격화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기업인들이 경영일선에 복귀해 국민경제 발전에 헌신할 기회를 준 대통령의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고 했다.

이어 "사면 당사자는 물론 경영계는 경제활력 회복과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뿐만 아니라 준법 경영에 힘쓰고 양질의 일자리가 더욱 많이 늘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또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원 등 국익에 기여하고, 국민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기업이 되도록 더욱 노력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번 특사로 경영 현장으로 복귀하게 되는 기업인들은 과거에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우리 경제 활력 회복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경제시민단체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고 조금의 반성도 없던 비리 기업인에 대한 특별사면을 강력히 비판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재계는 그동안 유죄 선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중근, 박찬구, 이호진 등 재벌총수에 대한 사면 건의를 꾸준히 제기해 왔고, 이번에 이들은 모두 사면⋅복권됐다"며 "이들은 특정경제범죄법을 위반하여 유죄를 최종 선고 받아 같은 법에 따른 기업체 취업제한의 대상자라는 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같은 법의 기업체 취업제한 규정의 취지는 범죄행위자가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서 일정 기간 영향력이나 집행력을 행사⋅향유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관련 기업체를 보호하여 건전한 경제질서를 확립하는 데 있다"며 "따라서 기업인에 대해 사면심사를 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점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마땅하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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